“오, 사, 삼, 이, 일, 영!” 6월19일 낮 12시 정각, 경기 고양시의 동양인재개발원 강당에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크린 속 숫자가 0을 가리키는 순간, 강당에 모인 젊은이 60여 명 사이에서는 환호성과 한숨 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왔다.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도 내려놓았다. 36시간이 끝났다. 제한된 시간 안에 ‘세상을 바꾸는’ 웹·모바일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행사 ‘2011 소셜 이노베이션 캠프 36’이 막을 내린 것이다.

캠프는 6월17일 밤 12시부터 시작됐다.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에 자원한 참가자 8~10명이 각각 6개 팀을 이뤄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에 돌입했다. 책상은 노트북과 서류로 어지러워지고, 화이트보드엔 아이디어와 구현 방안이 빽빽하게 적혀나갔다. 그 36시간 동안 참가자들의 얼굴은 퉁퉁 부어가고 머리카락은 기름기를 더해갔다. 


ⓒ시사IN 조우혜‘소셜 이노베이션 캠프’에 참가한 젊은 IT 전문가들이 공익 웹·모바일 서비스를 만들었다.

누나와 함께 캠프에 참가했다는 대학생 김민환씨(26)는 “소프트웨어 작업에 평소 관심이 많아서 참가했는데 평소에 혼자 일하다가 이렇게 팀을 짜서 일하니 업무 방식이 달라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금요일 퇴근 후 밤 12시부터 36시간 동안 캠프에 참여했다는 IT 계열 직장인 문지애씨(31)는 “똑같이 개발 업무를 하는데 회사에서 하던 것과 느낌이 많이 달랐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프로그램을 구현하기에, 이 캠프는 이렇게 대학생과 직장인 가릴 것 없이 밤잠을 포기하며 고생하게 만들까? 1등 팀에게 돌아가는 상금은 300만원 수준. 한 사람이 받는 돈은 많아야 30만원이다. 참가자들이 잠 안 자고 만든 웹·모바일 서비스는 접속도 공짜, 다운로드도 공짜. 비영리 목적이라면 누구든 이용하고 수정할 수도 있다.

돈도 명예도 기대하지 못하는 참가자들이 이 캠프에서 얻을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바로 ‘협업을 통한 사회적 가치 확산’에 따른 보람이다. 6개 팀이 각각 맡아 구현한 아이디어 6개는 지난 5월부터 시민들에게 받은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 145개 가운데 전문가·누리꾼 심사를 통해 선정한 것이다. 각지에서 개별로 모인 개발자·디자이너들이 그 아이디어를 구심점으로 한 팀으로 모여 각종 사회적 기업과 활동가의 조언을 받아 구체화하기를 한 달, 6월17일부터 36시간은 시민의 아이디어를 직접 눈에 보이고 손으로 쓸 수 있는 웹·모바일 서비스로 만들어내는 마지막 장정이었다. ‘집단지성’이 만들어낸 그 결과물 6개 가운데 3개를 소개한다.


 내가 만드는 길거리 스타 ‘길스타’

여기저기 숱한 곳에서,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만 알 수 있게 벌어지는 거리예술가들의 공연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받을 수 있다면? 거리 공연을 즐기던 부산의 대학생 현북진씨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이철혁씨를 비롯한 10명이 꾸린 ‘하이웨이스타’팀이 구현했다. 길을 지나다 우연히 혼자 보기 아까운 길거리 공연을 만나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길스타(www.gilstar.com)’에 접속해 위치와 공연 내용 정보를 직접 올려보자. 더 널리 퍼뜨리고 싶다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전파할 수도 있다. 운영자를 따로 두지 않고도 정보를 올리고 받는 사람들만으로 충분히 자생할 수 있는 ‘길스타’가 정착되면, 우리나라의 길거리 공연 문화도 튼실하게 뿌리 내릴 것이라는 게 개발팀 ‘하이웨이스타’의 생각이다.


‘길스타’(왼쪽), ‘스마일 핸즈’(오른쪽), ‘고래고래’(위) 모두 유용한 정보를 나누면서 공익적 실천을 도와주는 서비스이다.

 봉사하는 청소년들의 사랑방 ‘고래고래’

“봉사활동을 (무조건) 하긴 해야 하는데, 찾기도 어렵고 혼자 하고 싶지도 않다”라며 울상 짓던 청소년에게 봉사활동 커뮤니티 웹페이지 ‘고래고래(www.gorae.kr)’를 추천한다. 일손이 필요한 사회복지기관이 등록한 봉사활동 거리를 찾을 수 있고, 함께 갈 친구를 구하거나 다녀온 뒤 후기를 남겨서 뒤에 올 친구들에게 봉사 관련 정보를 전할 수 있다. 원하는 봉사활동이 없으면 뜻이 통하는 또래들과 힘을 모아 스스로 기획할 수도 있다.

시민단체인 관악사회복지의 이주희 활동가가 이 사이트의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앞으로 직접 운영을 맡는다. 36시간 동안 ‘고래고래’ 개발자들과 함께 캠프에 참여한 이씨는 “사실 IT 분야 종사자들은 차갑고 정이 없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이들이 사회참여와 변화에 관심이 뜨겁다는 걸 알고 매우 놀랐다”라고 말했다.


 친절하고 예의바른 손 ‘스마일 핸즈’

시각장애인 영화감독 임덕윤씨의 명함 뒷면에는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이 빽빽이 적혀 있다. “무조건 붙잡지 마세요.” “헛기침이나 ‘안녕하세요’라는 인기척을 내고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씀해주세요.” 장애인을 만나면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나서고 보는 사람들에게 이런 부탁은 다소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안다. 깜깜한 밤길에 누군가 내 팔을 덥석 잡으면, 그 사람이 날 도와주겠다는 의도를 가졌든 아니든 일단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지 않을까. 갑자기 누가 옆에서 큰 소리로 “피하세요!”라고 소리치면 잘 걷고 있던 길에서도 기우뚱거리기 십상일 것이다.


도서관 문화 정보 사이트 ‘라이프러리’(위), 사회적 기업 투자 플랫폼 ‘소셜스탁’(오른쪽), 윤리적 소비 정보 서비스 ‘바른쇼핑’(맨 오른쪽)은 모두 시민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만들어졌다.

장애인을 대할 때도 에티켓이 필요하다. 비장애인이 그 에티켓을 알기란 쉽지 않다. 장애의 종류에 따라서도, 언제 어디에서 만났는지에 따라서도 지켜야 할 에티켓이 다르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 활동가 이성희씨가 ‘장애인 에티켓 공유 서비스’를 제안한 까닭도 그래서다. 이씨는 처음 알기가 어렵지 한번 접하고 나면 당연하고 간단한 장애인 에티켓을 스마트폰으로 간편히 익힐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그 취지에 공감해 모인 ‘그래요’팀이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었다. 장애인 에티켓 서비스 ‘스마일 핸즈(www.smile hands.co.kr)’를 컴퓨터와 모바일 환경에 맞도록 구현한 것이다. 이들이 사용한 에티켓 설명 방법은 ‘이미지 카드’. 다양한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한 카드를 뒤집으면 그에 상응하는 에티켓 텍스트가 나타난다. 사용자들은 그 내용에 댓글을 달아 의견을 추가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공유할 수도 있다. 고래고래 팀은 “특히 장애인 시설 등에 봉사활동을 가는 사람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길스타, 고래고래, 스마일 핸즈 외에도 ‘2011 소셜 이노베이션 캠프 36’에서는 사회적 기업의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온라인 플랫폼 ‘소셜스탁(www.socialstock.or.kr)’과 윤리적 소비 정보를 제공하는 ‘바른쇼핑(www.barunshop.co.kr)’, 전국의 도서관 문화 정보를 취합해 전달해주는 ‘라이프러리(www.liferary.kr)’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실제 사용 가능한 서비스로 구현됐다.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스코틀랜드에서 동시 개최된 소셜 이노베이션 캠프 참가자들과 화상통화를 하고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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