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 평생 강정마을 ‘중덕바당’ 구럼비 해안 곁을 떠나본 적 없는 고병현 할머니는 지난 4년간 많이 외로웠다.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긴급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이 마을에 울리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난해 겨울에는 난생처음 경찰서 신세를 졌다. 할아버지·할머니 할 것 없이, 강정마을 노인 60여 명이 무더기로 잡혀 들어갔다. “우리 부락, 우리 바당(바다) 지켜서 후손들 물려주겠다고 싸우는데 왜 잡아 가뒀는지 모르겠어. 이 예쁜 것, 요 아까운 것….” 할머니는 바다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지난한 세월이었다. 그런 고 할머니에게도 요즘 ‘재밌는’ 일이 생겼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싸움이 다시금 활력을 되찾은 건 지난 4월6일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이날 강정 주민을 지원하는 ‘외부 세력’ 중 한 사람이던 영화평론가 양윤모씨가 구속됐다. 죄목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지난 30년간 서울에서 영화학에만 매진했던 학자는 그렇게 투사가 되었다. 투옥된 그의 단식은 무려 60일을 넘겼다. 양씨는 6월1일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나 현재 제주대학교 병원에 입원 중이다.


홍성담의 〈강정 앞바다에서1〉. 종이에 먹과 수채. 2011년.

김세리·조성봉(영화감독) 씨 부부는 양씨가 구속되던 날, 그 현장을 목격했다. 제주 4·3항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레드헌터〉를 강정마을 주민과 나누고 돌아가려던 부부의 발목을 양씨가 붙잡은 셈이다. 그날 이후 이들은 아예 짐을 꾸려 강정마을에 주저앉았다.

“양윤모씨가 구속되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구럼비 해안을 걷는데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걷는 내내 울었어요. 문득 여기 이곳을 기록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씨는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해 강정마을을 전국적 이슈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이 부부뿐 아니라 양윤모씨 구속 이후 강정마을을 찾아 뭍에서 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특히 문화예술인들이 문학으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마음을 포개기 시작했다. 6월16일 강정마을 앞 중덕바다에서는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이날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김근·황규관·김혜자·홍기돈 씨 등)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짱 유명한 할아버지’로 강정마을 아이들에게 소개된 신경림 시인은 마을 아이들을 따로 불러모아 일일이 눈을 맞췄다. “싸움이 오래되다보니 아이들의 마음도 다쳤을까봐 위로해주고 싶었다.” 시인은 아이들에게 마을을 잘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도 말했다.

강정마을은 대추리이고 용산이다

강정마을은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야생동물 2급인 붉은발말똥게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연산호 군락지이기도 하다. 강정마을이 문화재청 지정 문화재 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421호 및 제442호)이자, 해양수산부(현 국토해양부)가 지정한 ‘생태 보전지역’이 된 이유다. 그뿐 아니라 강정마을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자, 제주올레 7코스 구간으로 ‘올레꾼’ 사이에 풍광이 유려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이들을 지키기 위해 소설가 현기영씨는 〈지상에 숟가락 하나〉의 오래된 육필 원고를 한지에 담아 내놓았고, 화가 강요배씨도 기꺼이 자신의 그림 ‘달 실은 배’를 내놓았다. 이 밖에도 모두 37명의 문화예술인이 나서서 그림·사진·도자기·판화 등을 기증했다.

강정 주민 고영진 시인은 시 낭송 중 해녀였던 어머니를 추억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내 기억의 몸부림으로 이곳을 지키고 싶다”라는 시의 마지막을 그는 결국 명확히 읽지 못했다. 지금 제주 강정마을은 대추리이고, 용산이고, 두리반이다. 이곳을 지키기 위한 ‘외부 세력’의 연대는 계속될 예정이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