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해도 결혼은 싫다! ‘요새 젊은것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결혼이 그렇듯 노인에게도 연애와 결혼은 또 다른 문제이다. 연애를 하되,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비혼(非婚)’을 선택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남편과 사별한 지 3년째인 이남희씨(가명·72)는 요즘 적극 인연을 찾고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주최한 ‘황혼 미팅’에도 참가했다. 미팅에서 짝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가볼 생각이다. 색안경과 립스틱으로 멋을 내고 다니는 이씨는 “필(feel)이 오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나고 싶다”라며, “단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4년간 암 투병을 한 남편 곁을 지켰던 터라 또 누군가와 같이 살며 수발할 생각은 없단다. 그보다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자식들은 대개 부모의 연애 안 좋아한다”

결혼을 원치 않는 이유는 남녀 차이가 나는 양상이다. 여성 노인 중에는 이남희씨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또다시 가족이라는 굴레에 엮이기보다 나만의 삶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반면 남성 노인들은 이성 교제를 할 때 경제적인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여자 친구를 사귀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물며 결혼을 하려면 더 많은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다보니 가난한 남성 노인들은 종종 “돈 없으면 연애도 어렵지만 결혼은 더 힘들다”라고 푸념한다.

 

ⓒ조우혜여성 노인은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남성 노인은 재산 문제 때문에 결혼을 피한다.

 


우원호씨(가명·76)는 “혼자 산 지 20년째이다. 그 사이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서 ‘대시’도 해봤지만, 몇 번 만나고 나서는 돈 이야기를 하더라. ‘누구는 (결혼 대가로) 통장을 받았다더라’ ‘누구는 차를 받았다더라’는 식이었다. 결국 헤어졌다”라고 말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정신숙 팀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운영하는 성상담센터에 외로움을 호소하면서 쓸 만한 성 보조기구가 있느냐고 문의해온 할아버지가 계셨다. 때마침 황혼 미팅이 있어서 그러지 말고 행사에 나오시라고 했더니, ‘돈이 없어 못 나간다’는 답이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나이·건강 따위도 노인으로 하여금 결혼을 꺼리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자녀들의 반대다. 공사를 다니다 퇴직했다는 한 70대 후반 노인은 “나는 지는 태양이지만, 아들과 딸은 뜨는 태양이다. 내가 포기해야 한다. 공무원 하는 며느리와 공장장인 아들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 행여나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고 해도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만나기만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결혼은 당연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성경원 한국성교육연구소장은 “노인들의 사랑이 다른 연령대와 크게 다를 게 없지만 딱 하나, 자녀 문제가 걸려 있다. 대개 자녀들은 부모가 연애한다고 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부모에게 ‘어머니(아버지)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러냐’와 같은 말로 반대 논리를 편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는 ‘그 사람이 아버지(어머니) 재산 가지고 도망 갈 거다’ 하는 식으로 재산 얘기를 꺼낸다. 아무래도 사랑이 결혼으로까지 이어지면 상속 문제가 있다보니 반대가 많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편견도 비혼을 선택하게 만든다. ‘다 늙어서 웬 주책이냐’라는 힐난 섞인 목소리가 그들의 사랑을 움츠러들게 한다. 박현선씨(64·서울 성북구)도 지금껏 연애하는 노인이 ‘헤퍼 보인다’고 여겨왔다. ‘나이 들어 점잖지 못하다’고도 생각했다. 40대 초반에 혼자가 된 그녀는 20년 넘게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다. 자녀를 잘 키우는 데만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다 큰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혼자 살게 된 지금 박씨는 외롭다. 얼마 전 보건소에서 하는 성교육 강의를 듣고 그녀는 “생각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시선에 구애되어 자기 행복을 적극 찾아 나서지 못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누구든 마음에 맞는 사람과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것이 박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