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을 깨뜨리는 것, 그 가운데서도 ‘권력 기관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다. 권력 기관의 독립을 보장하면 권력 기관도 특권을 내려놓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노무현의 꿈이었다. 그래서 그는 권력 기관을 놓아주는 길을 택한다. 취임 이후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의 독대 정보 보고를 받지 않았다.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정보기관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이 되기를 바랐다. 국세청을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데 이용하지도 않았다. 정적에 대한 세무조사도 없었고, 후보 시절 대척점에 있던 재벌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도 사라졌다.

노 전 대통령이 권력 기관 중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검찰 개혁이었다. 검찰·경찰 수사권을 조정하고,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를 만들고자 했다. 첫걸음은 인사 개혁이었다.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기용해 사법고시 기수 위주의 인사 관행을 흔들었다. 하지만 검사들의 저항은 즉각적이고 강력했다. 검사들은 연판장을 돌리고, 평검사회의를 열었다. 2003년 3월9일 노 전 대통령은 ‘검사와의 대화’ 자리를 마련하고 직접 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대통령과 검사가 서로 얼굴을 붉히며 끝났다.

ⓒ사진공동취재단2009년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가운데)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소환되어 청사 입구를 향하고 있다.

검찰, 독립을 소외로 받아들여

이후 노 전 대통령과 검찰은 긴장 관계에 돌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검사들을 철수시키고, 2004년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도 밀어붙였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 등을 통해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견제하고 공판중심주의를 도입했다. 하지만 검찰은 꿈쩍하지 않았다. 국정원과 경찰청 등 권력 기관은 물론 군까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었지만, 검찰은 과거사 정리와 반성을 끝까지 거부했다. 검찰은 과거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죄를 만들어 기소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임기 내내 참모와 측근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검찰 개혁은 구석에 처박혔다. 대통령에서 멀어지는 것을 검찰은 권력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범계 청와대 전 민정비서관은 “노무현 청와대가 검찰에게 지시하는 일은 없었다. 청와대가 검찰을 풀어주자 검찰은 소외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한 전직 고검장은 “청와대는 호랑이를 거꾸로 올라탔고, 호랑이는 우리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2008년 2월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자 권력 기관은 노골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이명박 정권은 감사원·국세청·금융감독원 등 권력 기관을 총동원해 노 전 대통령 주변을 뒤졌다. 특히 검찰은 이에 ‘올인’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서울지검 특수부 등 전 검찰이 총출동했다. 론스타 사건 이후 2년 만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직접 칼을 빼들고 석유공사와 강원랜드 수사에서 뛰어들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벌인 KT·KTF 비리 수사, 신성해운 세무조사 로비 수사, 서울 서부지검의 프라임그룹 비자금 수사, 서울 남부지검의 애경그룹 수사, 대전지검의 VK 수사…. 촛불집회가 시작되자 검찰 사정의 칼날은 더욱 매서워졌다. 하지만 의도하던 전 정권 실세 정치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한 친노 진영 인사는 “이명박 정부는 촛불집회 배후를 노무현으로 의심했다. 검찰은 노란색 옷만 봐도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었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측근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했다. 

‘검찰이 형평성을 잃고 이명박 정권에 아부한다’는 국민의 비난이 높아졌다. 보수 언론에서는 일제히 검찰의 수사력을 비판하고 나섰다. 여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감장에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임채진 검찰총장을 삼성의 ‘떡값 검사’로 지목하고 마구 흔들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청와대에서 후임 총장 이름이 거론됐다. 총장 부인이 나설 정도로 검찰총장은 외로운 처지였다”라고 말했다.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오른쪽)이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 당일인 지난해 4월30일, 식사를 하러 가고 있다.

2008년 6월12일 마침내 검찰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공격이 시작되었다. 청와대는 사저로 가져온 대통령 기록물을 모두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보수 언론은 국가기록물 불법 유출 사건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도둑이 장물을 돌려줬다고 절도죄가 없어지느냐’고 비난했다. 국가기록원과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대통령 기록물을 무단으로 외부에 빼돌린 혐의(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노 전 대통령과 비서진 10명을 고발했다. 검찰은 신속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조사하겠다고 나섰고, 이에 노 전 대통령은 “문제가 있다면 자진 출석하겠다”라며 정면 대응하기도 했다. 검찰은 투신자살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유족이 낸 명예훼손 소송도 수사에 나섰다. 봉하마을 사저의 한 관계자는 “기록물 사건 때부터 대통령이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때부터 담배를 많이 피우셨다”라고 말했다.

2008년 7월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시작된 ‘박연차 게이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대검 중수부는 2008년 12월 노 전 대통령의 ‘아버지 같은 형’ 건평씨를 구속했다. 검찰의 시선은 이미 노 전 대통령에게 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와 가까운 동아일보는 2009년 3월1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50억원을 받은 정황을 대검 중수부가 잡았다”라고 보도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박연차 수사의 마지막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이인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잔인한 4월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3월25일자 조선일보에 의미 있는 내용이 실린다. “작년 11월 초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박연차 회장 소유의 태광실업·정산개발 등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민정수석실을 건너뛰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 … 특히 박 회장이 빼돌린 수백억원 가운데 ‘괴자금’ 50억원의 실소유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일 가능성이 언급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국세청이 결론을 유보한 이 ‘괴자금’의 실소유주가 노 전 대통령인지에 대해 집중 조사 중이다”라고 보도했다. 청와대와 검찰·국세청의 삼각 커넥션을 정권과 가까운 조선일보에서 확인한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수렁이었다. 정상문 전 비서관이 긴급 체포되었다. 오래된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구속되었다. 권양숙 여사가 검찰 조사를 받았다. 조카사위가 체포되었다. 아들 건호씨는 여섯 번이나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딸과 사위·처남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썼다. “저는 사실대로, 그리고 법리적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검찰의 공명심과 승부욕입니다. 사실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한 피의자의 권리를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검찰만큼 깨끗한 데가 어디 있냐고?

2009년 4월30일. 노 전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외출을 했다. 검찰 출두였다. 서울로 가는 5시간여 동안 방송용 차량과 방송 헬기가 따라붙었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갈 필요도 없었다. ‘핵심 관계자’라고 이름이 붙은 청와대와 검찰 고위 관료 그리고 언론은 여론재판을 끝낸 상태였다. 노무현은 뇌물 600만 달러를 받은 사람이고, 잘못을 아내에게 떠넘기는 사람이고, 생일 선물로 명품시계를 받은 사람이고, 모든 것이 땅에 떨어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5월23일. 권양숙 여사의 두 번째 검찰 조사가 예정된 날 새벽,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몸을 던졌다.

대통령 서거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물러났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맡았던 검사들은 예외 없이 영전했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주임검사 우병우 중수 1과장은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으로 영전했다.

지난 9월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물 유출 의혹 사건을 불기소 종결했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명예훼손 건도 끝이 났다. 지난 1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로 고발된 대검 중수부 수사팀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노 전 대통령의 진술과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의 미국 주택 구매 사실 등을 밝힌 것은 피의 사실 공표에 해당하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서 ‘죄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은 정권에 밀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명박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수사는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 지난해 말부터 진행한 한명숙 전 총리 검찰 수사는 노 전 대통령 수사의 재판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결국 1심에서 한 전 총리는 무죄를 받았다. 그러자 다른 검사들이 한 전 총리를 잡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정치 검사의 부활을 자성하는 검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에 참석했던 한 부장검사는 “우리가 대통령과 대화하자고 할 수는 없다. 권력에 충성하는 게 검찰 조직의 생리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제일 잘나가는 정치 검사로 지목되는 한 검사는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천성관 전 검찰총장은 스폰서에게 명품 핸드백을 받고, 15억원을 빌려서 물의를 일으켰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한 검찰 최고위 간부의 스폰서는 “천성관이 스폰서 비용을 터무니없이 올려놓아 부담스럽다”라고 말했다. 〈PD 수첩〉 보도로 검사들이 룸살롱에서 회식을 하고 성접대를 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김준규 검찰총장은 “검찰만큼 깨끗한 데가 어디 있느냐”라고 큰소리를 낸다. 그리고 파마 논쟁에 ‘몰두’하고 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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