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패를 꺼내보니 공(攻)과 수(守)가 바뀌었다. 3월11일 법정에 선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은 한명숙 전 총리에게 돈을 준 경위를 검찰 조사 때와 다르게 진술했다. ‘5만 달러를 직접 한 전 총리 손에 쥐여줬다’는 말을 ‘의자에 두고 왔다’로 바꿔버렸다. 곽 전 사장의 ‘폭탄 발언’은 이뿐이 아니었다. “한 전 총리에게 인사 청탁을 한 적이 없다” “검찰이 이미 (한 전 총리 건에 대해) 다 아는 상황에서 나에게 말을 하라고 했다”와 같이 검찰 측에 불리한 말을 쏟아냈다. 3월15일 곽 전 사장의 부인은 법정에서 “남편이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라는 말도 했다. 한 전 총리의 유죄를 확신하던 검찰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공판이 진행될수록 한명숙 전 총리(가운데) 측은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재판을 지켜보던 여야의 표정도 바뀌었다.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내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뭔가 있으니까 검찰도 저러는 거 아니겠느냐’라는 분위기 속에서 ‘만일’에 대비한 ‘비상 카드’ 물색도 은밀히 진행됐다. 민주당 지도부는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엄기영 전 MBC 사장, 정동영 의원 등을 염두해 두고 직·간접으로 접촉했다고 알려졌다.

판도가 바뀐 건 재판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부터다. 이대로 재판이 진행된다면 4월9일 선고 때 무죄가 나오리라고 확신하는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대세론’을 확산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 전 총리는 재판이 시작되기 이틀 전인 3월6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서울시 마포구로 이사했다. 한 전 총리 쪽 관계자는 “지금은 재판 대응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무조건 무죄라고 보기 때문에 판결이 나면 이번 재판의 의미를 부각시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까지 몰아간 ‘정치 검찰’ 문제를 선거 이슈로 집중 제기 하겠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X맨 곽 전 사장과 검찰의 무리한 수사 덕에, 이대로라면 서울시장 승리까지 간다”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제3 후보론,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상황이 이쯤 되자 한나라당에서도 서울시 선거는 ‘한명숙 후보’와 상대하는 걸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미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한나라당 경선 후보들은 “내가 한 전 총리 대항마로 최고 적임자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3월17일 출마선언을 한 나경원 의원은 검찰 수사에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며 “한 전 총리의 재판이 무죄가 나면 여권이 유리하지 않다. 이때 경쟁력 있는 사람은 나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과연 지금의 후보들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느냐 하는 회의가 드는 것이다.

한 전 총리 재판 일주일 전까지 나돌던 민주당의 ‘제3 후보론’은 이제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정두언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무죄가 난다면 (선거가) 쉽지 않다. 제3 후보론은 고육책인 측면이 있지만 현재 뚜렷한 사람이 있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최근 안철수 카이스트(KAIST) 석좌교수, 엄기영 전 MBC 사장 등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대선 후보급이 서울시장 후보로 차출되어야 한다며, 정운찬 총리와 정몽준 대표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선거판의 기세를 잡힌 모습에 정병국 사무총장은 “제3 후보론은 논할 가치가 없다. 내외부의 경쟁자들이 퍼뜨린 말에 불과하다. 현재 나와 있는 후보들의 경쟁력은 황금과 같다”라며 제3 후보론에 선을 그었다.

공수가 또다시 바뀔 수 있을까? 전망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검찰이 ‘반전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면 진작에 꺼내놓지 않았겠냐는 말이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한 전 총리 서울시장 만들기의 일등공신 자리를 검찰이 차지할지도 모른다”라는 얘기도 나온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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