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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감정노동 ‘선거’의 한복판에서

지난 3월 광주로 간 한승태 르포 작가는 정의당 소속 나경채 광주광역시장 후보의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취재의 일환이었다. 그의 6·13 지방선거 참관기를 전한다.

한승태 (르포 작가·<고기로 태어나서> 저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7월 02일 월요일 제5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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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식용 고기’ 농장 아홉 군데를 잠입 취재했던 <고기로 태어나서>의 저자 한승태 르포 작가의 다음 타깃은 ‘지방선거’였다. 지난 3월 광주로 내려간 그는 그곳에 머물며 정의당 소속 나경채 광주광역시장 후보의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취재의 일환이었다. 그의 6·13 지방선거 참관기를 전한다. ‘유력 후보’ 중심의 정치 기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선거판의 단면을 그만의 시각으로 ‘클로즈업’했다.

선거 현수막을 다는 모습은 얼룩말들이 악어가 숨어 있는 강을 건널 때와 비슷하다. 물속에 포식자가 있다고 의심하는 말들은 다른 말이 강물에 뛰어들 때까지 기다린다. 야생에서 이런 유의 인내심은 언제나 보상을 받는 법이다. 악어들이 성질 급한 동료의 목과 다리를 물어뜯는 동안 다른 말들은 우르르 강을 건넌다.

ⓒ연합뉴스
6·13 지방선거 선거운동 시작일인 5월31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정의당 광주시당 출정식에서 정의당 후보들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같은 상황이 이번 지방선거 기간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은행 양산동지점 사거리에서 펼쳐졌다. 5월30일 저녁 9시경, 사다리를 든 남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선거법상 선거 관련 현수막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하는 5월31일 자정 이후에 게시할 수 있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일찍 나오기는 했는데 자정까지 기다리기엔 좀이 쑤신다. 모두가 똑같은 기대를 품고 서로를 바라본다. 그렇지만 누군가 선관위에 신고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선거판에서 이런 유의 의심은 언제나 보상을 받는 법이다. 밤 11시쯤 사거리 한쪽에서 회담이 성사된다. 지금, 모두 같이 현수막을 달자는 합의에 이르기 직전에 4번 친구들이 거부권을 행사한다. 시간이 흘러, 밤 11시50분 누군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외치며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한다. 모두가 일제히 그 뒤를 따른다. 6·13 지방선거의 막이 올랐다.

김밥은 괜찮지만 누드김밥은 안 돼…

“광주가 어떤 덴지 아시고 왔소? 광주에서 민주당 안 찍고 기아 타이거즈 응원 안 하는 사람은 살기 고달픈데….” 정의당 선거운동을 도와주러 왔다고 하자 택시 기사가 내게 해준 말이다. 나는 지난 3월부터 정의당 광주시장 후보 선거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선거에 대한 책을 써볼 생각이었다.

내가 광주에서 처음으로 한 일도 전남대 후문에서 현수막을 다는 거였다. “소수 정당은 현수막에 아주 민감해요. 어찌 보면 이게 우리의 비애여. 큰 정당처럼 언론 조명을 못 받잖아요. 우리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알릴 방법이 저 현수막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작은 정당 사람들은 저거 거는 데 목숨을 거는 거예요.” 내가 도착했을 때는 예비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후보는 이미 2월에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선거운동을 해오고 있었다. 나경채 후보는 올해 46세로 광주시장 후보 중 가장 젊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금까지 후보로서 치른 많은 선거의 흔적이 검게 그을린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것도 선거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헤어스타일은 그를 정치로 이끌었던 노회찬 의원을 닮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출정식. 이용섭 후보가 80% 넘는 지지를 받으며 광주시장으로 당선됐다.
예비 선거운동 기간에는 후보자의 명함을 나눠주는 것 이외의 방식은 금지되어 있다. 한국의 선거법은 당선되고자 하는 욕망, 즉 권력을 얻고자 하는 욕망을 마구잡이로 팔다리를 휘두르는 미치광이로 간주한다. 그래서 선거법은 이 미치광이에게 뒤집어씌우는 구속복 같은 형태를 취한다. 법은 후보자가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할 수 없다는 규정들로 가득하다. 그러면서 각각의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서로 모순될 때가 많다. 선거법이 자신의 광기를 최고조로 드러냈던 건 선거 사무소 개소식에 내놓을 음식을 준비할 때였다. 후보자는 유권자에게 식사나 술을 대접할 수 없다. 대신 간단한 다과나 음료는 허용한다. 김밥은 괜찮다. 누드김밥은 안 된다. 밥이 밖으로 보이기 때문이란다. 농담 아니다.

선거운동은 노골적인 감정노동이다. “사람들이 무시하고 안 받아줄 때마다 상처받고 그러면 이거 못해요. 이거 할 때는 매크로가 됐다 생각해요.” 사무장이 말했다. 내가 선거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하자 다른 직원 하나가 이 얘기를 꼭 좀 써달라고 했다. “이 명함을 돌리다 보니까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싹 보이더라니깐요. 돈도 좀 있고 여유가 있어야 다른 사람한테 친절할 것 같잖아요? 전혀 안 그래요. 딱 정반대예요. 누가 제일 친절한지 알아요? 동네 할머니들, 노점상들, 꼬마들. 젊고 옷 잘 입고 좋은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처럼 거칠고 말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제일 힘없는 사람들이 제일 친절해요. 이런 건 좀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명함이 선거라는 전쟁에서 사용하는 총알이라면 광역단체장처럼 규모가 큰 선거에서는(광주는 인구가 150만명이다) 대포가 필요하다. 문제는 선거 캠프는 포탄만 만들 뿐 대포는 언론사가 가지고 있다는 거다. 후보 팀이 직접 시민들을 만나는 동안 사무실에선 보도 자료라는 포탄을 만들어 언론사에 전달했다.

ⓒ연합뉴스
나경채 광주시장 후보는 5.9%를 얻었다. 위는 6월13일 광주의 한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시민.
3월24일에는 기아 타이거즈 개막전이 열렸다. 우리도 야구장을 찾아 명함을 돌릴 계획이었다. 야구장처럼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에선 선거운동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분위기가 날카로워서 장소를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기아 개막전은 꼭 가야 돼요.” 사무장이 말했다. “사람들이 명함을 안 받아주고 반응이 어떤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광주에서는 기아 타이거즈가 가지는 상징성이란 게 있단 말이죠. 기아는 호남의 상징, 여기 광주에서는 어떤 절대적인 것이니까. 시장 후보가 개막전에 함께해서 기아의 12번째 우승을 기원했다, 이런 걸 시민들에게 보여줘야죠. 또 야구장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있잖아요. 주차 문제, 소음 문제, 그 주변 사람들은 경기장 이전하면 좋겠다고 그래요. 시장 후보가 이런 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겠다고 제시해야 하잖아요. 그런 얘기를 무등산 가서 하겠어요? 아님 양동시장 가서 하겠어요? 기아 개막전 때 해야죠.”

우리는 매주 한 분야씩 정책을 발표하고 지역에 이슈가 있으면 1인 시위도 하고 기자회견도 열었지만 언론에 소개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4월 말까지 언론의 관심은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용섭 후보와 강기정 후보의 대결에 쏠려 있었다. 강 후보는 이 후보의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근무 경력과 측근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을 문제 삼았고, 이 후보는 강 후보의 재산 증식 과정을 공격했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이용섭 후보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4월20일 이용섭 후보는 본 경선에서 52%를 획득하며 광주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연합뉴스
6월14일 선거 벽보를 거둬들이는 한 주민센터 직원들.
선거운동 하는 사람들은 “선거 끝나면 병이랑 빚만 남는다”라고 말한다.
언론사의 카메라가 이용섭 후보를 비추는 동안 우리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후보 소개 동영상을 촬영했다. 청년 당원이 후보를 인터뷰하는 형식이었다. 둘이 나눴던 대화 한 토막이 기억난다. “당직자로 활동하시다가 2006년 민주노동당 구의원으로 직접 출마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저한테 귀감이 됐던 김혜경이란 분이 계셨는데, 신림동에서 아주 오랫동안 빈민운동 하신 분이에요. 이분이 저한테 뭐라고 했냐면, ‘야, 맨홀 뚜껑 하나도 정치다. 세상에 정치 아닌 게 없다.’ 가난한 동네의 맨홀 뚜껑은 차가 지나가면 덜컹거려요. 그 바로 옆 반지하에 사는 사람은 그 소리를 밤새 들어야 돼요. 이거 바꿔달라고 해도 안 바꿔줘요. 이것도 우선순위가 있거든요. 그 얘기를 하시면서 김혜경 선생님이 그러셨죠. ‘맨홀 뚜껑 하나도 정치다. 그래서 더욱 이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이 힘을 가져야 한다.’ 그 말이 맞아요. 청와대만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작은 동네에서부터 고쳐야 할 게 수두룩 빡빡해요. 그래서 출마했어요.”

이번 지방선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광주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98%까지 오른 적도 있다. 광주 시민들이 들려주는 민주당 사랑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번은 내가 다시는 민주당 안 찍는다고 하고 갔어. 가서 투표용지 딱 받아들었는데 진짜 투표용지에서 김대중 선생 얼굴이 보이는 거야. 그래서 또 민주당 찍고 왔지.”

아이고 불쌍한 우리 후보, 여기선 김대중 전 대통령하고도 경쟁해야 하는구나. 그분을 무슨 수로 이기나…. 나 후보는 광주에서 학교를 마치고 (오늘날 많은 광주 젊은이들이 그러듯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정치 활동을 시작한 곳도 서울이다. 기초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정의당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2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목표는 자유한국당이 없는 광주에서 정의당을 민주당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시켜 그 구도를 전국으로 전파하는 것이다.

5월31일 아침이 밝았다. 현수막 업체들이 사투를 벌였던 사거리에서 또 다른 대결이 펼쳐진다. 코너마다 유세차들이 자리를 잡고 ‘간 때문이야’ ‘옹헤야’를 개사한 노래들을 틀어댄다. 정당 색깔별로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든다. 이날부터 6월12일까지 지구를, 그중에서도 한국을 방문한 외계인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들은 지구인이 예술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종족이라는 확신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시민의 대표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춤과 노래에 그토록 열심이었으니 말이다.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선거운동원뿐 아니라 시민들의 피로도 치솟고 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마트의 장난감 진열대 앞을 지나갈 때면 자신과 아들 사이에 인질-협박범 관계가 성립된다고 말이다. 아이가 ‘트랜스포머’ 로봇 안 사주면 여기서 드러눕고 울고 불며 떼를 쓸 거라고 ‘협박’을 하면 결국엔 장난감을 건네주고 만다고. 그걸 읽고 나니 현재의 선거 방식에도 나름의 미학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보들은 저마다 우편물, 문자 메시지, 인터넷 광고, 확성기까지 사용해서 13일 동안 한 표 달라고 떼를 쓰고 유권자들은 ‘흐이구 저노무 시키를 아주 그냥…’ 하는 마음으로 투표소에 들어간다(이번 선거 결과만 놓고 보자면 민주평화당 부모가 가장 엄격한 것 같다).

12% 득표 얻어 ‘제1 야당’ 되었다

6월13일, 우리는 사무실에 모여 개표 방송을 봤다. 이용섭 후보는 80%를 넘는 지지를 받으며 시장으로 당선됐다. 나경채 후보는 5.9%를 얻어 2위로 낙선했다.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는 정의당 광역단체장 후보 중에선 가장 높은 득표를 했다. 광주에서 정의당은 12%의 정당 득표를 얻어 제1 야당이 됐다. 4년 전보다 3배 이상 오른 결과다.

우리는 투표 바로 다음 날 사무실을 정리했다. 지역, 정당에 상관없이 선거 사무실을 정리할 때 골치를 썩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다. 박카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들 손에는 언제나 박카스가 들려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지지자들이 건네는 것도 박카스다. 더 이상 마실 수도, 나눠줄 데도 없는 박카스 상자가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그 주위로 지난 5개월 동안 격렬한 전쟁을 치렀다는 증거 역시 비슷한 높이로 쌓여갔다. 미처 다 돌리지 못한 수천 장의 명함, 반송되어온 개소식 초대장, 각종 홍보물, 포스터, 피켓, 현수막, 선거운동 옷, 거기다 선관위에 제출해야 했던 수많은 서류들까지. 한때는 밤을 새워가며(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새웠다) 만들고 준비했던 것들이지만 이제는 투명한 비닐봉지 속에서 재활용 쓰레기로 처리되길 기다리는 신세였다. 그것들이 쓰레기봉투에 담겨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선거운동을 오래 해본 사람들이 ‘선거뽕’ 맞았다고 말할 때가 있다(우리가 실제로 복용한 ‘마약’은 박카스뿐이었다). 선거운동만큼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것도 없다. 나는 허리가 줄어서 벨트 구멍을 다시 뚫어야 했다. 그런데도 투표일이 가까워지면 이상하게 힘이 난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해보자면, 다 같이 올림픽 응원을 할 때처럼 도취된 분위기, 열망에 휩싸인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열망 같은 것 말이다. 어떤 때는 그것이 바로 손에 잡힐 듯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가 우리가 질 거라고 이야기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선거운동 하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선거 끝나면 병이랑 빚만 남는다.” 그만큼 이 일은 힘들다. 보상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사무실 식구들에게 내가 다시 선거운동을 하면 그땐 묻지 말고 ‘싸대기를 날려달라’고 부탁했다. 벌써부터 뺨이 얼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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