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만 보면 ‘예상대로였다’는 평도 나온다. 쏟아져 나온 ‘TK(대구·경북) 제외 여당 싹쓸이’ 보도에서 방점은 TK가 아니라 싹쓸이에 찍혔다. 20년간 대구시장은 자유한국당 계열 후보가 독식해왔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얻은 김부겸 후보(현 행정안전부 장관)의 40.3%가 민주당 계열 후보의 최대치였다. 이 기록은 이번에도 깨지지 않았다. 임대윤 후보는 39.8%를 얻어, 53.7%의 권영진 후보에게 16만 표 차이로 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열린 2017년 대선에서조차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 두 배 이상 득표했다. ‘불모지’ 선거치고는 선전이라 볼 수도 있다.
임 후보 측 기대와 달리, 마지막 3일간 대구 분위기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선거 전날인 6월12일, 임대윤·권영진 두 후보는 불과 300m 떨어진 곳에서 총력 유세를 펼쳤다. 임 후보 유세 현장에서 파란 옷을 입은 청년들이 격한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웠으나 서서 구경하는 시민은 50여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반면 권영진 후보 쪽 광장에는 300명 이상이 모였다. 많은 시민들이 권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젊은이들은 멋쩍게 “대구는 원래 좀 그렇다”라고 덧붙였다.
10.6%포인트 차이 낙선을 점치는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캠프에 담담해 보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오랜 민주당 지지자 한 명은 무력감을 호소했다. “앞으로 기회가 또 올까? 평생 대구에 살았지만 정말 대구가 싫다.”
‘대구라서 졌다’라고만 요약하기에 이번 선거에는 찜찜한 대목이 있다. 선거운동 기간 막판, 투표를 앞둔 야당 지지자들은 이렇게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부겸이 나왔다면 찍었을 것이고, 내가 안 찍어도 당선은 됐을 것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구 시민 다수는, 후보들 대신 선거에 출마하지도 않은 김부겸 장관을 찾았다. ‘묻지 마 투표’의 온상으로 묘사되는 TK의 노년층 박근혜 지지자까지 그랬다. 6월11일 문재인 대통령과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 전라도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하던 한 택시 기사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임대윤과 권영진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50대 50이라고들 한다. 근데 김부겸이 나왔으면 모른다. 당장 나도 찍었을 거니까….”
대구 시민들이 꼽는 김부겸 장관의 장점은 크게 ‘인지도’와 ‘스킨십’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12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할 때 그는 이미 3선 의원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익히 보던 인물이 고개를 숙이고, 낙선하고, 다시 출마하는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주민 한 사람은 “처음에는 와서 뭐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고, 명함 찢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도 (김부겸 후보는) 안 가고 가만히 듣는 기라”라고 회상했다.
김부겸의 강점은 곧 임대윤의 약점이었다. 임 후보의 유세 차량 앞에 선 사람들은 서로 “임대윤이 누군데? 뭐 하던 사람인데?”라고 물었다. 바글대는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의 유세 차량 앞에 비해 한적한 모습이었다. 후보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도 쉽게 지지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수성구에 거주하는 홍 아무개씨(34)는 “대구에서 외롭게 진보 세력을 대변해왔다고 하는데, 정작 이력을 보면 한나라당 당적으로 구청장 두 번 했다. 설득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대구가 많이 아픕니다. 대구를 바꿔야 합니다”라는 그의 말에는 공감하면서도 임대윤이라는 ‘수단’에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캠프에는 후보 개인의 약점을 메울 믿는 구석이 있었다. 문재인 마케팅이었다. 임대윤 캠프는 대구에서도 ‘친문’을 강조하는 게 최선의 카드라고 판단했다. 웹페이지·현수막·공보물 등 거의 모든 홍보 수단에 문재인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는 사진을 썼다. 임 후보의 블로그 자기소개란에는 ‘#문재인#노무현#문파#김부겸’이라고 적었다. 박정희·박근혜 마케팅을 감행했던 4년 전 김부겸 후보와는 정반대 행보였다(〈시사IN〉 제353호 ‘대구를 그렇게 보면 안 되구 말구’ 기사 참조).
대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50~60% 정도다. 전국 평균보다 약 10~15%포인트 낮다. 보수적 지역 특성에 맞춰 임대윤 캠프는 안전장치를 하나 걸었다. ‘경제’를 내세우는 것이다. 공보물에 “이제 평화는 돈이 됩니다”라는 슬로건을 적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화해 국면을 주도하면, 여당 시장이 대구 섬유·안경 산업 등의 북한 진출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대구공항 국제화를 선행해 향후 동남권 항공물류 거점으로 거듭난다.” 유세를 지원하는 이들은 “여당 시장이 되면 정부에서 ‘예산 폭탄’을 받고 북한에 대구 물건 수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론에서 문재인 마케팅으로 ‘친문’ 지지자를 투표소로 끌어오고, 각론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내세워 무당파층을 공략한다는 전략이었다. 이 캠페인 기조는 전국 여당 후보들 사이에서 유행했고, 그 효험도 입증됐다. 당장 대구 이상의 격전지로 꼽힌 경남에서 김경수 후보가 민주당 깃발을 꽂았다.
대구에서는 왜 실패했을까? 인지도와 스킨십 부재에 따른 임대윤 후보 개인에 대한 불신이 첫 번째 이유로 꼽힐 수 있다. 정부나 타 지자체와 갈등 소지가 있는 이슈, 가령 K2 공군기지 이전 문제를 두고 의구심을 드러내는 유권자가 있었다. 이 문제는 임대윤 캠프의 핵심 공약이었다. 소음 피해가 심한 K2 공군기지만 타 지역으로 이전하고 대구공항은 남기겠다는 게 임 후보의 공약이었는데, 예천 등 이전 목표지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높다. 한 시민은 “텔레비전 토론회를 보니 정부와 확실히 협의된 게 없는 것 같았다. 그 정도 힘이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임대윤보다 힘센 후보’였다고 해도…
‘임대윤보다 힘센 후보’라면 당선됐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첫째, 이념형 보수가 상수로 남아 있다. 확실히 대구는 달랐다. 유권자들의 입에서는 놀랄 만큼 ‘센’ 발언이 자주 나왔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민주당을 찍지 않는 첫째 이유로 ‘종북’이나 ‘빨갱이’를 들었다. 주로 노년층인 이들은 대북 화해 정책으로 얻을 경제적 이익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설령 경제적으로 더 궁핍해지더라도 북한을 응징하는 게 선(善)이라고 믿었다. 이들이 김부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오로지 순한 태도와 박정희·박근혜 마케팅 전력 때문이다. 이들은 친문·무당파 유권자들을 겨냥한 선거 전략이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유권자들이다. 그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컸을 수 있다.
둘째, 지역주의다. 일부 연구자들은 지역주의를 지역감정과 구분한다. 이들은 지역주의를 정치권력이 지역화된 상황에서 유권자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고 본다. ‘김대중’ ‘전라도’를 증오하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에게 도움이 되기에(또는 된다고 여기기에) 자유한국당만 찍는다는 것이다.
대구·경북에서 활동해온 한 정당인은 이렇게 말했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국회의원이고 장·차관이었다. 그쪽으로 전달하면 웬만한 민원은 다 해결되는 걸 봐왔다. 탄핵은 분명 큰 사건이다. 하지만 중앙정치가 변한다고 모든 시민이, 얽히고설킨 관계와 30년 된 경험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나?” 대구처럼 당 하나가 오랜 기간 지방권력을 독점해온 지역에서는, 시민들이 이해타산을 충분히 따지더라도 ‘묻지 마’식 투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같은 당은 꾸준히 재당선되고, 계속해서 ‘경험’은 재생산된다. 세대가 바뀐다고 정치 지형이 간단히 바뀌지 않는 이유다.
2014년 김부겸과 2018년 임대윤의 득표율은 0.5%포인트 차이지만 그 배경과 내용은 전혀 달랐다. 민주당이 대구에 깃발을 꽂으려면 전국구 인물의 정치 생명이 담보로 필요할지도 모른다. TK 외 모든 지역을 접수한 여당이 다음 선거에서 그런 모험을 감행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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