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한반도의 운명, 낙관과 비관과 회의 사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지형이 빠른 속도로 변화 중이다. 정상회담은 항구적 평화로 가는
긴 여정의 서막에 불과하다. 한반도의 갈등을 단칼에 해결하기는 매우 어렵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4월 13일 금요일 제551호
댓글 0

놀랍다. 지난 한 달의 반전 드라마는 전문가 눈으로 보아도 분명 놀랍기 그지없다. 불과 석 달 전 위기 상황을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새 지평을 여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남북 정상회담 하나만 열린다 해도 고무적일 텐데 이제는 북·미 정상회담에다 남·북·미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열려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관계 정상화는 또 하나의 시그널이다.

관점은 낙관과 비관, 회의론을 크게 오간다. 낙관론자들은 앞으로의 연쇄 정상회담이 핵무기 없는 북한과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오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의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정책 목표로 설정해 노력해왔고 이제 그 열매가 부분적이나마 영글어가는 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체제, 관계 개선에 대한 선언적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가 이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의 과정을 거쳐 우리 모두가 안심할 만하다고 느낄 때, 그때서야 비로소 평화는 찾아들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서양 경구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북한의 비핵화를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실행해나가고 이를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의거해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 연동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비관론이 옳은가. 상당수 비관론자들은 남북 정상회담의 궁극적 성패가 북·미 정상회담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재 완화와 체제 보장을 담보해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기 때문이다. 비관론자들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일뿐더러, 열린다 해도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걸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인 북핵 폐기(CVID)’의 즉각적 이행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자 그대로 수락할 리는 만무하다는 것이다. 결국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되고 그에 따른 파국이 미국의 군사행동으로 이어져 한반도 전쟁까지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묵시록적 전망도 어김없이 뒤따른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5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8.4.11

설득력이 있을까. 역사를 되짚어보면 정상회담이 실패하는 경우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아무리 예측불허의 성격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 해도 정상회담 결렬이 몰고 올 국내·국제정치적 파장을 모를 리 없다. 견해 차이가 있어도 외교적 노력을 통해 봉합하려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비관론과는 또 다른 차원의 회의론도 있다. 이들은 일련의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미국 정부가 평양의 농간에 놀아나 오히려 손해나는 협상 결과를 떠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려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 주한 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평화체제의 대가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연방제’ 제안을 수락할 것이다. 셋째, 평양이 소위 분리(decoupling) 전략을 구사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만을 검증·폐기하는 조건으로 주한 미군 철수를 들고 나오려 할 것이라는 전망까지다.

지나친 기대는 금물, 맹목적 비관론과 냉소적 회의론도 역시 금물

이 세 가지 주장 모두 뚜렷한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주한 미군 위상에 대해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이후의 국내정치적 혼란과 전략적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연방제 수용 주장은 아예 ‘픽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싱턴이 아직 실전 배치도 제대로 안 된 북한의 ICBM이 무서워서 그 폐기를 전제로 핵을 용인하고 주한 미군을 철수한다? 문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남북관계에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더불어 맹목적 비관론이나 냉소적 회의주의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밋빛 환상이든 회색빛 우울이든, 섣부른 예단을 버리고 대안과 전략을 만들어간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그것만이 우리가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어갈 유일한 길이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