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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안태근 성추행’ 사건에서 보듯 여성은 지위와 환경을 막론하고 젠더 폭력에 쉽게 노출된다. 페미니즘이 수면 위로 끌어올린 문제들을 둘러싼 격렬한 싸움에 사회는 어떤 답을 들려줄까.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2018년 02월 08일 목요일 제5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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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낳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했다. 그날 이후, 밝은 옷과 치마를 즐겨 입던 사람은 사라졌다. 검은색 바지를 유니폼처럼 입었다. 치마가 조금만 짧아도, 옷 색상이 조금만 밝아도 ‘이러니까 그런 꼴을 당했지’라고 누군가 수군대고 손가락질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파마를 한 게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시사IN 조남진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에 비해 5~10% 이상 높지만 교문 밖 세상에서 여성은 여전히 ‘2등 시민’이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OECD 1위다.

15년 전 검사 임관과 동시에 예상했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2차 술자리를 주도하던 해병대 출신 부장검사가 말했다. “나는 술 안 먹는 검사는 검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대생을 싫어한다. 나는 여검사를 싫어한다. 너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 갖추었으니 완전 악연 중의 악연이다. 너같이 생긴 애치고 검사 오래 하는 애 못 봤다.” 술을 못 마시는 것도, 이대 나온 것도, 여성인 것도 모두 사실이라 그저 입술만 깨물었다. 

부임 첫날, “나는 여성은 남성의 50%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한테 인정받으려면 너는 여기 있는 애들보다 2배 이상 더 열심히 해야 해!”라는 부장검사의 이유 모를 호통에 옆자리 선배는 “새겨들어”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여자는 웃음이 헤프면 안 된다”라고 해서 웃지 않으면 “여자가 웃지도 않는다”라고 나무랐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알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는 동안 자기들끼리 ‘좋은 곳’을 다녀온 선후배 검사들은 여자 종업원 팬티를 머리에 거꾸로 쓰고 있었던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술도 못 마시는 게 분위기도 못 맞춘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 노래방에서 열심히 탬버린을 흔들면 “덕분에 도우미 비용 아꼈다”라는 말을 들었다.

“여검사가 100명이 넘었다니, 회사 앞날이 큰일이다.” 혀를 차는 선배 앞에서 ‘내가 잘못하면 여검사 전체가 욕먹는다’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열심히 일하는 걸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다짐했다. 2013년 한 해만 따져봤다. 검사 한 명이 평균 1733건(2245명)에 대한 사건을 배당받는 동안, 2215건(3046명)을 배당받았다. 주요 송치사건만 따져도 평균 9.5건에 비해 10배 이상 많은 134건이었다. 많은 배당 건수와 중요 사건 배당에도 불구하고 4개월 이상 장기 방치 사건 없이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했다. 한 번 받기도 힘들다는 법무부 장관 표창을 두 번 받았다. 몇 달에 한 번씩 우수사례와 미담사례에 선정됐다. 검찰 최초로 원거리 거주자를 위한 ‘화상 형사조정’을 실시했고, ‘장애인 조사 매뉴얼’을 만들었다. 이런 실적은 인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시사IN 조남진
2월1일 여성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친정엄마 없이 애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여자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여자’라는 우스갯소리에 “나는 나라를 최소 3개는 팔아먹었다 보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일에 치이고 육아에 치이며 일하는 와중에도 8년 전 일은 어제 일처럼 또렷했다. 장례식장이었다. 하필 무리 중 여성은 혼자였다. 검찰에서 ‘높은 양반’ 양옆으로 여성을 앉히는 일은 흔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떠미는 대로 옆자리에 앉았다.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안태근 검사(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이후 검찰국장 역임)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눈이 많은 자리였다. ‘환각’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옆에 장관이 있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고 떠들었다. 

사과를 받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잊으려고 노력했다. 용서했다고 되뇌곤 했다. 복수는 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한 번씩 숨이 죄여오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곤 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라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성 현기증이,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시신경유두부종이 차례로 몸을 방문했다. 왔다 가지 않는 병 사이에 아이는 머물지 않고 가버렸다.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했는데….

1월29일 서지현 검사는 위와 같은 내용의 200자 원고지 220장 분량의 글을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자신이 당한 성추행을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증언했다.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지나도 세상은 변하긴 영영 글렀”다고 썼던 서 검사는 체념하는 대신 다른 차원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날 방송에서 서 검사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제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음에도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을 당한 건 아닌가 자책감에 굉장히 괴로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와 범죄 피해자분들께,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 나왔습니다. 제가, 그걸 깨닫는 데, 8년이 걸렸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경험은 특별하지 않다. 여성은 지위와 환경을 막론하고 젠더 폭력에 쉽게 노출된다는 걸 증명했을 뿐이다. 법을 직업으로 다루는 사람도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젠더 폭력은 가해자를 처벌하기도 어렵지만, 가해자를 처벌하는 차원에서 수습되지도 않는다. 드러난 성범죄조차 처벌하지 않는 ‘강간 문화’ 자체를 처벌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서 검사는 1월31일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사건의 본질은 제가 어떤 추행을 당했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제가 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지에 주목해달라.”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만인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야지만 움직이는 야만 사회”라고 한국 사회를 정의했다.

야만 사회를 넘어서려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2016년 10월 중순 SNS상의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는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번지면서 파문을 낳았다(<시사IN> 제478호 ‘변화를 위한 행동은 계속된다’ 기사 참조). 당시 문제가 불거진 곳이 문화예술계였을 뿐 성폭력이 만연한 문화는 일상화되어 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그리고 이번 서 검사의 폭로는 그 점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서 검사는 글 마지막에 ‘#미투’와 ‘#검찰내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 밖에도 서 검사는 글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여러 차례 인용한다. 이번 폭로가 한국 사회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와 자장 안에서 비로소 도착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전 그리핀은 “혼자라고 느끼는 상태에서는 억압을 알고 있어도 침묵하게 된다”라고 썼다(<The Way of All Ideology>, 1982).

페미니스트 비평가 손희정씨는 2015년을 전후한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붐을 페미니즘 ‘리부트(reboot)’로 정의한다. 기존 페미니즘 운동과의 단절 속에서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부당함이나 어려움을 설명할 언어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여성들이 다시 페미니즘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로 시작한 이 움직임의 분기점은 2016년 5월 벌어진 강남역 살인 사건이었다(<시사IN> 제455호 ‘페미니즘에 귀 기울일 시간’ 기사 참조).

ⓒ시사IN 신선영
2017년 5월17일 강남역 살인 사건 1주기 추모제에서 한 참가자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이후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이 수면 위로 끌어올린 문제들을 둘러싸고 격렬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제기되는 이슈를 묵살하거나 밟아버리려는 움직임도 거세다. ‘메갈리아 옹호 작가’의 웹툰을 검열하겠다는 예스컷 운동이나 웹툰 업체 레진코믹스의 블랙리스트 의혹,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신상 털기와 조직적인 민원 제기, 여성 BJ에 대한 살해 예고 방송 등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1992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는 <백래시>를 통해 이 싸움에 이론적인 틀을 제공한다. 페미니즘이 불러오는 변화에 대한 반발에 ‘백래시(backlash·반격)’라는 이름을 붙여 분석을 시도한 책이다. 출간 26년 만에 한국에 도착한 <백래시>(아르테 펴냄)는 미국의 사례를 다루고 있는데도 강력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인사에 불만을 품은 문제 있는 검사였다’ ‘정치계에 입문하려 한다’ 등 검찰 내부 반응부터, 서 검사의 외모로 사건을 ‘품평’하는 장삼이사의 반응까지 폭로 이후 여론 역시 전형적이고 예상 가능한 반격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은 쉽게 ‘꽃뱀’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백래시’는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교문 밖에서 여성은 여전히 ‘2등 시민’

실제 남녀평등 현실은 어떨까. 한국 사회는 2000년 이후 적어도 고등교육에 있어서만은 남녀평등을 이뤘다. 특히 2011년부터는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에 비해 5~10% 이상 높다. 2016년에는 여학생 73.5%, 남학생 66.3%가 대학에 진학했다(교육통계연보). 그러나 남녀평등은 학교 안에서 멈춘다.

교문 밖 세상에서 여성은 여전히 ‘2등 시민’이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OECD가 관련 통계를 작성해 발표한 2000년 이래 매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남성의 임금을 100으로 놓았을 때 여성의 임금수준은 64.1%에 불과하다(2016, 고용노동부). 그나마도 전년보다 증가한 수치다. “20대는 여자들이 월급을 더 많이 받는다”라는 안티페미니스트 그룹의 주장도 틀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남성의 초임 월급을 100으로 했을 때 여성 노동자의 초임 월급은 2012년 73.0%, 2014년과 2015년 각각 72.1%와 69.9%로 성별 임금격차가 더욱 벌어졌다가 2016년 71.3%로 다소 줄었을 뿐이다.

2016년 3월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식을 전제로 한 직업의 경우 오히려 남성이 차별받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여성이 너무 조급하다”라고 말했다. 시험 결과로 당락이 판가름 나는 고시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었다. 서복경 교수(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는 “임용고시를 비롯한 일부 시험에서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는 게 사실은 가슴 아픈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각종 고시는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안정된 일자리다.

지식을 전제로 한 직업에서 정말 ‘남성’은 차별받고 있는가. 한국에서 경제활동 가능 인구는 대략 3500만명이다. 중앙과 지방의 공무원 수를 합치면 대략 100만명에 불과하다. 그렇게 따지면 아주 제한된 직종에 여성이 몰리고 있는 셈이다. 2015년 여성 공무원 비율은 44.6%이고, 4급 이상 관리자 비율은 10.6%에 그쳤다.

대표적인 ‘여초’ 집단으로 불리는 교육 공무원도 관리자 비율을 따지면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2016년 기준 초등학교는 77%, 중학교는 68.8%, 고등학교는 50.8%가 여성 교원이지만 여성 교장 비율은 각각 34.5%, 24.3%, 9.9%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여성 교장 비율이 처음으로 30%대를 넘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그렇다(교육통계연보).

공공기관과 500인 이상 사업장도 사정이 비슷하다. 고용노동부는 2006년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를 통해 공공기관과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여성 노동자 및 관리자 비율을 조사하고 있다. 그 결과 2016년 공공기관 및 대규모 사업장의 노동자 중 여성 비율은 37.8%, 관리자 중 여성 비율은 20.1%였다. 관리자 비율은 2006년(10.2%)에 비해 2016년 2배 정도 증가한 수치다.

서지현 검사의 ‘선배 검사’는 “여검사가 100명이 넘었다니, 회사 앞날이 큰일”이라고 말했지만 2015년 기준 여성 법조인 비율은 24.1%이고 그중에 검사는 겨우 27.7%이다(판사는 27.6%, 변호사는 23.2%). 법조계와 더불어 의료계 역시 여성 의사 비율은 24.7%로 전체 4분의 1 수준이다.

수전 팔루디는 묻는다. “대체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전투에서 여성이 정확히 어떻게 ‘승리’했다는 것인가?” 팔루디는 여성의 불행은 여성들이 아직 손에 쥐어보지 못한 ‘평등’ 때문이 아니라, 평등에 대한 여성의 탐색을 중단시키고 심지어 역전시키려는 압력이 점점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백래시는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 여성들이 결승선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여성들을 멈춰 세우는 선제공격이다.”

반격은 여성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데 집중된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가족 임금 전체를 벌어오는 생계부양자이던 시기는 1970~1990년대로 중산층에 한해 부분적으로 가능했던 매우 찰나적 현상이었다. 여성은 언제나 일하고 있었다. 1990년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던 시기를 지나 IMF 구제금융(외환위기)을 거치면서 한국의 노동시장은 다시 남성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거쳤다. 외환위기가 터지자 대기업은 가장 먼저 직장 내 탁아시설을 없앴다.

어느 나라나 사회적 위기가 닥치면 국가나 가족과 같은 전통적 가치에 기대곤 한다. 이는 여성에게 다시 모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쉽게 나타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만성화된 장기 불황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0년 프로라이프의사회는 임신중절 시술 의사를 고발하고, 헌법재판소는 낙태죄를 합헌으로 승인했다. 페미니즘 이슈 중에서도 ‘출산의 자유’는 언제나 가장 거센 공격의 대상이 된다. 여성의 학력 상승과 권익 증진을 곧 국가 위기로 인식하기도 한다. 2017년 3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휴학이나 해외 연수처럼 불필요한 스펙을 쌓게 해서 채용에 불리하게 하기’ ‘하향 선택 결혼을 하도록 문화적 콘텐츠를 만들되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진행하기’ 등을 저출산 대책으로 내놓았다.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출산과 육아는 여성의 몫으로만 남겨진다.

ⓒ시사IN 신선영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를 위한 사진 프로젝트 Battleground 269’ 전시회.

남자는 국가 안보, 여자는 목숨을 걱정한다

<조선일보>는 2018년 신년기획으로 ‘아이가 행복입니다’를 선보였다. 출산과 육아 소식을 전하는 지면을 주 1회 신설하고, 탄생 소식을 알려오는 독자 중 일부를 선발해 케이크 쿠폰과 아이 생일 날짜에 맞춘 <조선일보> 1면을 별도 편집한 PDF 파일을 제공하고 있다. 1월1일자 <조선일보>는 출산 및 육아 세대인 25~45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1면에 발표했다. ‘아이가 행복입니다’라는 기사의 중제는 “아이 키우는 25~45세, 97% ‘아이 있어 행복하다’ 78% ‘삶의 질 안 나빠졌다’”로 뽑았다. 여론조사 결과는 ‘우려’를 깨뜨리는 것이었으며, 부모들에게 아이는 역시나 ‘귀한 선물’이자 ‘행복’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같은 날 5면에 실린 설문조사 결과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온도차가 느껴진다.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성별 차이가 확연했는데 ‘행복하다’라고 답한 남성은 73%인 데 비해 여성은 49%였다. 출산 이후 삶의 질에 대한 질문에서도 성별 차이가 났다. ‘좋아졌다’는 남성은 52%였지만 여성은 36%였다. 수전 팔루디의 말마따나 “데이터는 여성의 인생 경로에서 핵심 구간에 떡 버티고 선 사회의 검문소가 되어 잔소리를 늘어놓는 자문단을 파견”한다.

모성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비혼’을 유도한다.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미혼 여성의 비율은 2010년 46.8%에서 2016년 31%로 크게 감소했다(통계청).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현실세계의 공포로 이어진다.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부)는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에서 “혐오와 차별은 쉽게 확산되고 공고해진다”라고 말한다. 유럽에서 혐오 표현을 ‘표현’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금지한 이유는 혐오가 표현되는 순간 언제든지 구체적인 행위, 즉 차별과 폭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시사IN 윤무영
1월30일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은 의정부지방법원 앞에서
데이트 폭력 가해 남성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6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50.9%는 전반적인 사회 안전에 대해 ‘불안하다’라고 응답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20~30대 여성은 60% 정도가 불안함을 느낀다. 남성이 사회 불안요인 1순위로 국가 안보(22.2%)를 꼽은 데 비해, 여성은 범죄 발생(37.3%)을 1순위로 꼽았다.

여성 대상 범죄는 일정 부분 여성혐오 문화 안에서 자란다. 2015년 살인·강도·방화·성폭력 등 강력범죄를 당한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은 88.9%다(대검찰청). 범죄 유형별로 보면 성폭력 피해자의 비중이 94.1%로 가장 높다. 언론은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면서 “순간 격분해서” “나를 무시해서” 같은 가해자의 주장을 합당하다는 듯 실어준다. 이 같은 가해자의 주장은 법원에서 감경 사유가 되기도 한다. 이런 사례가 쌓일수록 폭력을 당하는 여성은 ‘내가 애인을 화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1월30일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은 애인을 살해한 가해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의정부지법 앞에서 ‘여성 살해가 집행유예면 판사도 공모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 내 젠더 감수성 교육 의무화와 남녀 동수 판사제 실시 등을 요구했다.

사법부 내 여성혐오 분위기는 서지현 검사의 글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을 모텔로 떠메고 가 강간한 사건에 대해 ‘여성들이 나이트에 갈 때는 2차 성관계를 이미 동의하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강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부장이나, ‘내가 벗겨봐서 아는데’ 식으로 강간 사건에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부장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국 여성의 ‘오늘 이후’는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사회는 여성 권리 진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 혹은 백래시에 부딪혀 후퇴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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