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근의 〈타병지형(打餠之形)〉, 오스트리아 빈 민족학박물관 소장.

무엇을 그렸는지 두말 필요 없다. 오른쪽 위의 화제(畵題)만 좀 어렵다. ‘타병지형(打餠之形)’, 곧 ‘떡메질 하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그 아래 붉은 낙관이 그림 그린 이를 드러낸다. 기산(箕山). 19세기 말 화가 김준근의 호다. 기산의 그림에서, 사람은 산수와 풍경의 일부가 아니다. 사람이 하는 구체적인 일과 일하는 사람의 몸짓이 그림의 초점이다.

마주 선 두 사내가 너 한 번, 나 한 번 메질한다. 사내 둘만으로는 안 된다. 메질이 고루 먹도록 메질 먹는 덩이를 잘 뒤적여 메질 떨어질 자리로 재빨리 몰아주고 손을 빼야 한다. 기산다움의 완성은 떡판 위 사람들의 몸짓·손짓 건너에 무심히 자리한 자배기에 있다. 동이만 한 부피에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질그릇을 자배기라고 한다. 떡메질은 떡판의 떡과 떡메가 붙지 않도록 물을 떡이나 떡메에 먹여가며 이루어진다. 작업자 세 사람, 떡메, 떡판, 완성을 향해 가는 흰떡, 그리고 자배기까지 더해져 떡메질의 모습이 완결된다.

오늘날에는 대개 멥쌀가루를 익반죽(뜨거운 물로 반죽하는 것)해 송편 빚을 준비를 하지만, 예전에는 그림처럼 멥쌀 고두밥을 쳐 흰떡을 내고, 그 흰떡에 소를 박아 찌기도 했다. 소의 재료도 다양했다. 곶감, 대추, 고구마, 깨, 녹두고물, 팥고물, 밤고물이 다 쓰인다. 껍질 깐 팥에 꿀을 섞고, 계피·후추·생강가루를 더해 풍미를 화려하게 한 소도 있었다.

송편만이 아니었다.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 지역 음력 8월의 떡으로 17세기 문헌 〈도문대작(屠門大嚼)〉은 두텁떡, 국화떡, 곶감밤찰떡을 꼽았다. 19세기 문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송편과 함께 무시루떡, 호박시루떡, 세 가지 고물의 인절미, 밤단자, 토란단자를 꼽았다. 두텁떡의 화려함이야 더 보탤 말이 없다. 찹쌀가루를 쪄 밤 또는 토란을 버무린 부재료로 모양을 내고 맛을 더한 떡이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단자다.

명절은 일상에서 벗어난 즈음이다. 휴식이 있고 만남이 있는 날이다. 이날의 분위기를 북돋우는 데에는 일상식을 벗어난 별식이 와야 한다. 때마침 자연이 농익은 과일을 선물해주어도 좋다. 여기다 사람이 조금 손을 보태 곶감을 말리거나 대추고를 만드는 수가 있다. 여기서도 더 나가면, 사람은 아예 안간힘을 써서 과자를 만든다. 일상식에서는 드문 과자의 색상과 조형미, 일상식의 짠맛과 감칠맛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단맛에 수렴하는 풍미를 상상해보라.

추석의 송편이며 떡은 일상식을 대신하는 에너지바(energy bar)가 아니다. 출근길 정류장에서 후딱 먹어치우는 간편식이 아니다. 주식을 벗어난 곳에 자리한 별식이다. 프랑스 제과에서 말하는 ‘앙트르메’와 ‘데세르’에 준하는 호사이다. 이 호사는 딱 한입거리이다. 식료를 동원할 수 있는 한 동원해서 공들여 만들되, 누구나 한입은 맛볼 수 있는 행복이다.

‘앙트르메’와 ‘데세르’가 울고 갈 떡의 호사를 누려보자

그러므로 제안하고 싶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자고. 송편을, 떡을 다만 에너지바로 두지 말자고. 쌀가루의 질감, 입자의 차이를 섬세하게 분별한 떡 재료를 고민하는 것만도 태산만 하다. 송편의 멥쌀 피와 소는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정말 데세르 못잖은 먹을거리 동아리를 만들 수 있을지. 여기 얽힌 상상력 또한 갱신에 갱신이 필요하다. 아서라, 당장은 먼 얘기다. 당장은 이런 제안을 해야겠다. 하던 대로 밥상 위에 벌여놓고, 언제 먹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 먹을거리로 방치하지는 말자고. 차례상에서 치운 다음 냉동고에서 얼어 죽는 떡은 만들지 말자고. 이를 송편상, 떡상으로 다시 차려보면 어떨까. 내 마음에 드는 접시에 따로 차려, 정말 내가 만든 휴식의 순간에 입속에 넣는 보석 하나 만들어보면 어떨까.

기자명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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