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미·중·러·북의 치열한 ‘사드 셈법’

북한 미사일 피하려다 십자포화 맞을라

한국의 변명이 안 통하는 이유

 

 

한·미 양국이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발표한 7월8일 유럽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열렸다. 7월9일까지 이틀간 열린 이 회의에서 나토 정상들은 발트 3국과 폴란드에 각각 1개 대대씩 4개 대대, 모두 4000명의 나토군을 파병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무력으로 개입한 데 이어 발트 3국과 폴란드를 압박해온 러시아에 맞선 파병 결정이다. 이로써 1997년 러시아 국경 주변에 나토군을 상주시키지 않겠다던 러시아와 나토 간 기본협정이 무력화됐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유럽이 신냉전에 접어들었다는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7월8일 서울에서는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발표했다. 나흘 뒤인 7월12일,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쐐기를 박는 판결을 내렸다. 중국의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로 험악해진 미·중 갈등이 이 판결로 더욱 증폭되었다.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신냉전의 전선이 활활 타오르는 와중에 한국이 섶을 지고 그 한복판으로 뛰어든 형국이다. 사드 배치 선언을 계기로 최대 안보 현안이었던 북한 핵과 미사일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대신 여태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중국과 러시아의 핵공격 위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덮쳐오고 있다.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굴과 사자굴 속으로 뛰어든 셈이다.

ⓒ록히드마틴미국 록히드마틴 사가 개발한 사드 미사일 발사 장면.

유럽과 한국에서 거의 동시에 벌어진 사태들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는지는 확정할 수 없다. 다만 사드 배치 선언과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은 하나의 패키지로 엮여 있다.

사드 배치부터 짚어보자. 사드 배치 발표 전, 미국 국무부와 재무부는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 인사 15명을 인권유린 혐의로 첫 제재 대상에 올렸다. 사드 배치가 군사적 의미를 넘어 일련의 대북 압박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사안의 성격상 북한뿐 아니라 중국에 대한 충격요법의 의미도 동시에 띠었다. 북·중 대화 과정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사드 배치는 지난 6월 이래 양측으로부터 파상공격을 받아온 미국이 수세를 공세로 바꾸기 위한 ‘게임 체인저’로 꺼낸 카드라 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북·중 양국의 공세란, 〈시사IN〉이 그동안 보도해온 6월 초 베이징 북·미 군사회담 무산과 관련이 있다(〈시사IN〉 제461호 ‘무수단 보고 놀란 가슴 사드 놓고 달래나’). 북·미 군사회담이 무산된 지 열흘 뒤인 6월17일, 중국 수호이30 전투기 두 대가 일본 측 방공식별구역(ADZ)과 겹치는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순찰 비행했다. 이 비행 전에도 중국 함선의 긴급 출동이 있었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6월9일, 15일, 16일 세 차례에 걸쳐 중국 함선이 센카쿠 열도 근방의 일본 영해나 접속수역에 접근했다. 당시 일본 열도는 영문을 몰라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 6월9일이면 미국이 북·미 군사회담을 최종 거부한 6월3일로부터 약 일주일이 지난 시점, 즉 베이징 미·중 전략경제대화(6월7~8일)를 한 다음 날부터 행동에 돌입했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북한대로 6월22일 무수단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해 미국에 충격을 주었다.

ⓒ연합뉴스7월8일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토머스 벤달 미8군 사령관이 ‘사드 배치’ 발표를 하고 있다.

북·중 양국이 왜 그러는지 미국이 모를 리 없었다. 4월부터 두 달이나 끌어온 북·미 군사대화 제안을 막판에 틀어버린 데 대한 반발이었다. 정부 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북·미 군사회담을 무산시킨 미국으로서는 사과하고 다시 시도해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강공책으로 치고 나가 협상의 공간을 노려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 강공책이 바로 사드였다. 수세 국면을 일거에 공세로 전환해 판을 주도할 게임 체인저로서 사드 조기 배치 카드가 떠오른 것이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미국도 막상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았다. 사드 배치야말로 북한과 중국 양쪽을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다”라고 밝혔다.

2014년 6월 스캐퍼로티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사드 배치 문제를 공식 거론한 이래 미국은 배치와 관련한 실무 준비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국이나 러시아를 압박하는 협상용 카드로만 톡톡히 활용했다. 즉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의 대북 제재에 이들을 동참시키는 협상용으로 쓴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실제 배치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엄포용이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후 진행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제2270호에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 동참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요구대로 무작정 대북 압박의 강도를 높일 수만은 없었다. 북한이 반발해 사고를 치는 일이 없도록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유엔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대신 민간 기업을 통해 북한을 지원하는 ‘이중 플레이’를 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위한 6자회담을 조속히 개최해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미국 처지에서는 어느 선 이상으로 대북 제재의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협상용 사드 카드로는 대중국 압박도 한계에 봉착했다.

미국은 사드 실전 배치라는 강공책을 현실화했는데, 그 뒤의 전개가 영 매끄럽지 않았다. 먼저 북한 반응부터 살펴보자. 미국은 사드 배치를 선언하면 북한이 강력 반발하며 시끄럽게 굴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북·미 사이 티격태격하다 보면 의외의 접촉 공간이 열리고 협상의 여지도 생길 거라고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이 예상 밖의 행동을 취했다. 아예 미국과의 접촉 채널을 끊어버린 것이다. 바로 북·미 간 뉴욕 채널의 폐쇄다.

ⓒEPA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반발하고 있다. 위는 6월25일 정상회담을 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북한과 미국은 그동안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 채널은 유지한다는 불문율을 지켰다. 베이징 채널과 뉴욕 채널을 통해서다. 특히 뉴욕 채널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가동됐고 6자회담 국면이나 북한에 억류된 미국 시민 석방, 하다못해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사전 통보 채널로도 가동되어왔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에 대미 대화를 전담하는 팀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 6월 북·미 군사회담 무산으로 베이징 채널이 폐쇄된 데 이어 최근에 뉴욕 채널까지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북한이 아예 대미 대화 전담요원을 전부 철수시켰다는 말도 들린다.

이 같은 폐쇄는 미국이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해 15명을 인권유린 혐의로 제재 명단에 올린 데 대한 항의 표시로 보인다. 7월8일 북한 외무성은 성명에서 ‘미국의 조치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미국과 관계되는 모든 문제를 공화국의 전시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이미 북한의 제재 명단 철회 요구를 미국이 거부할 경우 ‘조·미 사이 모든 외교적 접촉 공간과 통로는 즉시 차단될 것’이라고 통고했다. 실제로 북한이 유엔 주재 상임대표부를 통해 미국 정부에 뉴욕 채널을 폐쇄하겠다고 통보한 시점은,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선언이 나온 뒤였다. 사드 배치 선언을 하면 의외의 대화 통로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던 미국으로서는 뜻밖의 일격을 당한 셈이다.

사드 배치에 따른 최대의 수혜자는 북한?

그렇다면 북한은 왜 대화 채널 폐쇄로 응답했을까? 외교 소식통은 몇 가지 이유를 거론한다. 첫째 한·미 당국의 사드 배치 선언으로 북한이 불리할 게 없다는 점을 들었다. 당장 그 이후 전개된 상황을 보자. 사드 배치로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에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미국 역시 사드 배치라는 카드를 써버린 이상, 중국과 러시아를 통제할 지렛대가 사라졌다.

이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유엔의 북한 제재에 동참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드 배치 이후 조성될 한·미·일 관계 강화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지원과 협력을 강화하고 북·중·러 간의 대응 체제 구축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드 배치에 따른 최대 수혜자가 북한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한 상황인 셈이다. 사실 약간의 셈법만 있다면 충분히 예견 가능한 상황이었다. 또 사드 배치 선언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흥분해 있는데, 북한이 대화 채널을 유지하며 미국과 따로 만날 경우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었다. 북한이 매우 주도면밀하게 상황을 읽고 행동에 나섰다는 얘기다.

사드 배치 카드를 실행에 옮긴 미국이 정작 아쉽게 됐다. 현재 북한에 억류된 미국 시민 두 명을 송환하게 할 뾰족한 수가 없다. 북한은 두 사람을 전시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으로서는 속이 탈 노릇이다. 그렇다고 중국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사드 배치 이전이라면 모를까 일단 사드 카드를 써버린 이후 중국을 통한 북한 통제는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무리 패권국이지만 모든 카드를 한꺼번에 쓰지는 않는다. 상황을 통제해가며 순차적으로 쓴다. 이런 점에서 사드 배치를 먼저 발표하고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을 연기시키는 것이 원래 구상이었다고 한다. 중국과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기 위해서다. 이미 지난달 필리핀 두테르테 정부를 통해 중국에 대화로 해결하자고 제안함으로써 협상 사인을 보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뜻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져, 재판이 연기되지 않고 중국의 영유권을 부정하는 판결이 곧바로 나온 것이다.

대북 제재에 협조하면 미국이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던 중국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로 잇달아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다. 판결은 물론 재판관들이 했지만 이번 재판 이면에는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이 놓여 있다. 패소한 중국으로서는 분노가 끓어오를 상황이다. 사드 배치와 이번 판결로 당분간 미국은 동북아 상황에 대해 중국의 협조를 구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

중국뿐 아니라 나토와 대치 전선을 벌이는 러시아도 극동에서 제2 전선이 형성되었다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러시아 처지에서 보면 이번 사드 배치를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비교해 ‘역지사지’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소련은 미국 턱밑인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구축했다. 이번에는 미국이 러시아의 턱밑인 한국에 사드를 들여놓은 것이다. 러시아 처지에서는 미국의 최전선 국가인 한국에 자신들의 극동 군사기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레이더가 세워진 것이다. 중국이 느끼는 위기감도 러시아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양국의 대응 강도를 예상할 수 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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