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강물은 되돌릴 수 없다. 국가 간 관계도 그렇다. 6월 초 중국이 중재했던 베이징 북·미 군사대화를 미국이 거부한 것은 실수였다. 그 뒤 워싱턴이 후회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리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방중(5월30~6월2일)과 미·중 전략경제대화(6월6~7일) 직후가 기회였다. 리수용과 함께 중국을 방문한 북한 국방위원회 측과 미국 국방부 측이 군사대화를 갖도록 하겠다는 게 중국의 복안이었다. 그대로 되었다면, 북·미 양측이 핵 비확산을 위한 구체적 방법에 합의하고 향후 비핵화 전망도 세울 수 있었을 터이다(〈시사IN〉 제457호 ‘베이징 데이트는 왜 엎어졌을까’ 기사 참조).

그러나 미국이 최종적으로 북·미 군사대화를 거부하면서 모든 일이 뒤죽박죽되었다. 무엇보다 중국의 충격과 분노가 컸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주선을 부탁한 4월 초부터 미국이 최종 거부한 6월 초까지 두 달여간 접점을 만들기 위해 기울여온 중국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거부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미국이 말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비확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상황 관리를 위해서라도 만나는 게 상식이었다. 결과적으로 리수용 부위원장을 부른 중국은 체면만 구겼다. 미국에게 뺨을 맞은 셈이다. 즉각 베이징에서 “미국이 왜 저러는지 원인을 분석한 뒤, 대응책을 내놓을 것이다”라는 소리가 나왔다.

향후 중국이 택할 대응 카드는 세 가지다. 첫째는 중국 군부의 보복 행동이다. 당시 협의 채널이 미·중 양국의 군부였기 때문에 영유권 분쟁이 일고 있는 남중국해 등지에서 중국군이 군사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점쳐졌다. 두 번째는 대북제재 완화이고, 세 번째는 북한과의 우호관계 강화이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지난 6월22일 북한은 괌 미군 기지까지도 공격할 수 있는 ‘무수단’ 미사일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북한도 북·미 군사회담 불발에 반발하리라 예상됐다. 무수단 미사일 발사가 실패하자 미군이 얕잡아본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던 만큼, 북한은 무수단 미사일 발사부터 성공시킬 것이라고 예상됐다. 실제 그 뒤의 상황 전개는 예상했던 대로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6월30일자 일본 〈산케이 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센카쿠 상공에서 중국과 일본 전투기 간에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그 시점을 역순으로 추적해보니 6월17일이다. 바로 북·미 군사회담 무산으로부터 10일쯤 지난 뒤다. 이날 중국 수호이30 전투기 두 대가 전례 없는 비행에 나섰다. 일본 측 방공식별구역(ADZ)과 겹치는 동중국해 중국 측 방공식별구역에 대한 순찰 비행이었다. 항공자위대 전투기의 스크램블(긴급 발진)을 예상한 의도적 도발이라 할 수 있다. 이 상황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사흘 뒤인 6월20일 중국은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에 A4 용지 3~4쪽짜리의 대북제재 이행보고서를 제출했다. 제재나 단속 결과는 하나도 없이 선언적 내용만 잔뜩 담긴 무성의한 것이었다. 말미에는 민생 목적의 교역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등 제재가 목적이 아니라 6자회담 재개가 목적이라는 내용까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틀 뒤인 6월22일, 이번에는 북한이 행동에 나섰다. 바로 무수단 미사일(북한 명칭으로 ‘지상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케트 화성-10’)의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발사이다. 그중 여섯 번째 발사에서 고각 발사라는 난이도 높은 발사 실험을 통해 상승 고도 1200㎞,  사정거리 400㎞라는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미군 당국에 충격을 주었다. 대기권 재진입 실험까지 겸해 핵탄두 장착 및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능력까지 근사치로 보여준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2013년 4월의 ‘무수단 공포’가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당시 한·미 합동군사훈련에서 미국이 F22 등 전략 자산을 동원해 북한에 핵공격 위협을 가하자, 북한은 4월5일부터 이동식 차량에 무수단 미사일 두 대를 각각 싣고 맞대응 태세에 나섰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이 미국 공군기 발진 기지인 괌을 공격할 경우 방어수단이 없다는 판단 아래 군사행동을 접고 4월11일 대화를 제의했다.

ⓒ연합뉴스7월8일 미국은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서로 축전 보내며 ‘우정’ 회복하는 북·중  

당시 선보인 무수단 미사일은 실험을 거치지 않은 것이었지만 이제 실험을 통해 완벽하게 위력을 보여줬다. 미국 군사 전문가인 브루스 벡톨 국제한국학회(ICKS) 회장에 따르면, 북한은 50개 발사대에 무수단 200여 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한 발이라도 핵탄두를 장착하고 괌에 떨어지면 미군 8만명이 사망한다.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국내 한 전문가는 “무수단 미사일 성공 이후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미국의 내부 평가가 상향 조정됐다. 사실상 건드려서는 안 되는 핵 국가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자극을 멈추지 않는다. 7월8일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또 7월6일(현지 시각) 김정은 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 내 핵심 인사들을 인권유린 혐의로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이는 북한을 자극해 한반도 긴장을 유도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국제정치에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이기 위한 책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구체적으로 사드 문제를 들 수 있다. 최근 들어 사드 배치가 공론화된 시점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중국이 대북제재에서 벗어나 북한과 관계를 강화하려 할 때이다. 지난 6월1일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을 만난 직후 수면 아래 있던 사드 배치 문제가 수면 위로 솟구쳤다. 이번에는 북·중 정상 간의 축전 외교로 북·중 협력구도가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시점과 관련돼 있다. 6월30일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 공산당 창건 95주년 기념 축전을 보내자, 시진핑 주석이 그다음 날인 7월1일 김정은 위원장의 국무위원장 추대를 축하하는 축전으로 화답했다.

양 정상의 축전은 북·중 관계 회복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1차적으로 주목할 날짜는 7월11일, 북·중 우호협력조약 체결 55주년 기념일이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양측은 베이징과 선양 등에서 양국 고위층이 참석한 가운데 상당한 규모의 기념행사를 연다. “미국에 뭔가 보여줄 좋은 계기다. 그냥 흘리면 북·중 관계에 대한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라는 것이다. 7월에 예정된 또 하나의 행사는 양측이 전승절로 부르는 7월27일, 신압록강대교 개통식 겸 북측 접속도로 착공식이다. 2010년 말 건설비 22억2000만 위안(약 3837억원)을 중국이 전액 부담해 착공한 신압록강대교는 2014년 10월 교량을 완성했다. 그러나 당시 북측 접속도로 공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북측 구간까지 중국 자본으로 다 하겠다는 뜻이다. 그 주변에 보세 창고와 물류 창고를 지으면 신의주국제경제지대 공사로 이어진다. 이렇듯 북·중 우호 관계가 본격 회복되려 하고 있다. 그러자 어김없이 미국은 사드 배치로 중국에 경고장을 날렸다. 과연 그것으로 막을 수 있을까?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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