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초 이경호 언론노조 전 수석 부위원장으로부터 해직 언론인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받았다. 당시는 EBS를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다소 번잡한 상황이었고, 개인적으로 EBS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반민특위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어 선뜻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모든 언론인이 그러하듯 ‘해직 언론인’이란 다섯 글자가 주는 부채감은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을 위한 일을 찾아서는 못하더라도 내게 주어지는 걸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결국 ‘영화 상영을 전제로 한’ 해직 언론인 다큐멘터리 제작을 수락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참 겁 없는 생각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그래 딱 1년만 고생하자’고 다짐했다.
1년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한 이유는 당시의 상황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받았던 2014년 초는 공중파 방송과 종편 등 언론이 권력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장악되었던 때였다. 공정 언론을 위한 새로운 싸움이 발생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취재는 거의 없을 것이고, 지난 투쟁 과정에 대한 해직 언론인들의 소회를 담아내는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이라면 1년이면 충분하리라 판단했다.
내 안이한 생각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후 YTN 노조로부터 자체 촬영 영상이라며 하드디스크 하나를 받았는데, 대부분 저화질 저용량의 동영상이었는데도 용량이 무려 2.3테라바이트였다. 용량도 용량이지만 내용이 더 문제였다. 2008년부터 꼼꼼히 기록한 투쟁 영상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는데 처음 접하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곧이어 받은 MBC 노조의 하드디스크도 YTN 것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휴먼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역사 다큐멘터리였던 셈이랄까?
결국 그 수많은 클립을 하나씩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분노하고 훌쩍거리고 다시 분노하기를 반복하는 일상이 시작된 것은. 열심히 투쟁한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싸운 줄은 미처 몰랐다. 이런 모욕을 견뎌가며 싸운 줄은 더욱 몰랐고. 기사로 가끔 접했던 것과 영상으로 직접 확인하는 투쟁의 강도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난 클립 속 언론인들의 감정에 동화되고 말았다. 분명 ‘공정방송 투쟁’이란 관념적인 말을 외치고 있는 장면인데, 내 눈에는 몸뚱이에서 피를 흘리며 스러져가는 걸로 보이기 시작했다. 클립을 확인해나가는 순서만큼 그들의 얼굴에서 사라져가는 젊음도 눈에 들어왔다. 영상을 보고 나면 매번 코가 시큰해지곤 했다.
“해직 언론인들의 소회가 아니라, 투쟁을 다루자.” 이게 클립들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소회에 앞서 관객이 내가 봤던 영상들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회는 그런 다음이었다. 투쟁에 대한 평가, 실패한 결과에 대한 평가, 향후 투쟁에 대한 방법… 역시 그다음이었다.
그 현장에 해직 언론인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던 차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언론은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를 터뜨렸다. 아니나 다를까,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리포터 옆에서 누군가가 거짓말하지 말라며 쌍욕을 했다. 그 쌍욕이 고스란히 리포터의 마이크를 타고 안방의 텔레비전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곧이어 현장에서는 언론인들이 세월호 가족들에게 쫓겨나기 시작했고, 쫓겨난 자리엔 언론인 대신 ‘기레기’라는 말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때 해직 언론인들이 원래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100% 완벽한 보도를 했을 거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전원구조 오보 같은 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속보 경쟁에 눈이 멀어 현장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를 무시하는 식의 잘못을 저지르진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해직 언론인들의 담담한 소회를 담아내려던 다큐멘터리는 결코 담담하지 않은 그들의 투쟁을 최대한 날것으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로 바뀌고, 그들의 해직 후를 보여주려던 다큐멘터리는 오히려 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로 다시 바뀌게 되었다. 제목도 ‘해직돼도 언론인’이란 가제에서 〈7년-그들이 없는 언론〉으로 바뀌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많다. 해직 언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세밀한 사연과 감정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게 특히 그렇다. 나중에 어떻게 하든 모든 해직 언론인을 다 인터뷰하겠다던 처음 계획은 공정언론 투쟁의 흐름에 맞춰 선별적인 인터뷰를 하는 걸로 바뀌었고, 이미 인터뷰를 한 내용 역시 그 흐름에 맞게만 사용했다. 이 부분은 아쉬운 동시에 해직 언론인들에게 두고두고 미안한 대목이기도 하다.
이제 2년 넘게 만들어온 다큐멘터리가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막 설레고 떨리고 그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느낌이 아니라, 해직 언론인들 스스로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내가 완성 편집만 해서 소개하는 기분이다. 정성스럽게 잔치를 준비하긴 했는데 내가 잔칫집 주인은 아닌 느낌이랄까? 제작하는 동안에도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든 적이 없을 만큼 다큐멘터리 속 해직 언론인들의 존재감은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감이 투사의 근엄한 표정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어떤 중요한 순간에 내린 상식적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아주 오랜 기간 감당해가며 사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다.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감당해내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으로서의 위대함, 그런 위대함을 다큐에 담으려 애썼다.
그 위대함을 지난 2년간 곁에서 지켜보며 개인적으로 많은 위로와 희망을 얻었듯, 관객도 해직 언론인들로부터 위로와 희망을 얻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