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자리를 함께한 라이스 국무장관·부시 대통령·체니 부통령(왼쪽부터).

지난 4월24일 미국 의회에서 열렸던 북한-시리아 핵 협력 관련 청문회는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미국 정부 내 강온파 대립의 최후 결전장이었다. 이스라엘 강경파의 지원을 받는 딕 체니 부통령 및 네오콘 일파와, 이스라엘 온건중도파와 손을 잡은 국무부 협상팀의 창-방패 대결이 지난해 말부터 중동과 한반도 양대 전선에 걸쳐 전개됐다. 지난 2월을 경과하면서 이미 국무부 협상파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따라서 4월24일의 상·하원 정보군사외교위원회 청문회 현장은 체니파의 마지막 저항의 장이었고, 결과적으로 국무부 팀의 승리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워싱턴 소식에 정통한 전문가 및 소식통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국무부 협상팀에 결정적 승리를 안겨준 것은 바로 북한-시리아 핵 협력 과정에서 대북 협상을 담당했던 시리아 측 협상 창구의 증언이었다. 이스라엘 온건중도파의 주선으로 이뤄진 이들과의 면담에서 국무부 팀은 북한-시리아 핵 협력에 대한 체니파의 주장이 침소봉대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 북한 측이 자신들에게 설명한 내용과도 부합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북한에 대해서도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2월을 지나면서 국무부 협상팀이 이같은 외교 성과를 얻게 됨에 따라, 부시 행정부 내에서 북한-시리아의 핵 협력 위험성을 과장했던 체니와 네오콘의 입지가 줄어들었고, 국무부는 북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3·13 제네바 회담, 4·8 싱가포르 회담 등 일련의 대북 협상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체니 등 네오콘과 국무부 간의 대립은 국무부 측이 한때 체니 쪽에 자신들이 취득한 정보를 확대 과장함으로써 중동 및 한반도 정세를 위태롭게 하려 한다고 언론에 폭로할 것을 검토했을 정도로 첨예했다고 한다.

ⓒAFP4월26일 시리아를 방문한 에르도간 터키 총리(왼쪽)를 영접하는 시리아의 알 아사드 대통령(오른쪽).
북한 핵 과학자 사진 입수하자 환호 작약

워싱턴 및 중동 현지 사정에 밝은 전문가의 증언을 토대로 지난해 말 이후 최근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을 넘나들며 전개된 강온파 대립의 실상을 정리해본다.

체니의 마지막 도전이 시작되다: 지난해 11월 워싱턴에서 열린 아나폴리스 국제회의(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을 위한 것)가 별 성과 없이 끝난 뒤 중동에는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또한 부시 정부 임기 말이 다가옴에 따라 체니를 중심으로 한 네오콘 진영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체니는 부시 임기가 이대로 끝날 경우 자신이 이라크 전쟁의 과오를 영원히 뒤집어쓰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뭔가 이라크전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했고, 또한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후보의 승리를 위해서도 중동에서 새로운 전기가 있어야 했다.

이때 이스라엘 정보기관(모사드)과 체니 등 네오콘이 이스라엘을 거점으로 활용해온 비공식 정보조 직으로부터 북한-시리아 핵 협력에 대한 새로운 ‘증거(evidence)’들이 입수됐다. 이 증거들은 지난 2007년 9월6일 미국 측이 제공한 정보에 따라 시리아 시설(미국 전문가들은 이를 BOE, 즉 Box on the Euphrates라고 부르며 최근까지도 원자로라는 표현을 쓰기 꺼려함)을 파괴한 뒤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추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폭격기에 의해 파괴된 시리아 측 시설물의 사진뿐 아니라 ‘북한 원자로 책임자’로 알려진 전지부라는 인물이 시리아 원자력위원회 인사와 만나는 것을 찍은 사진, 북한 핵 기술자들의 시리아 출입국 관련 기록, 기타 물자이동 관련 정보 따위가 포함됐다. 전지부 등 북한 핵 과학자 사진이 입수되자 당시 체니 등 네오콘은 박수를 치며 “이거면 한 방에 끝낼 수 있다”라고 환호했다고 한다.

북.시리아 핵 협력은 중동 전쟁 뇌관

한편 그 당시 체니 쪽에 협력한 정보조직으로는 모사드 같은 공식기관 외에도 미국 측의 비공식 정보조직도 있다. 중동 현지의 한 전문가가 제시한 정보를 참고해보면, 2006년 펜타곤 안에 조직된 대이란 정보전담기관(Iranian Directorate)이 가동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 중동 전문가에 따르면, ‘Iranian Directorate’는 2002~2003년 존재했던 펜타곤 소속 OSP(특별계획국, 월포위츠가 조직한 대이라크 정보전 전담부서, 정보조작으로 악명을 떨침)에 대비되는 기관으로 시리아 시설의 폭격 및 그 이후 사태 등에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위기에 빠진 북한 핵 협상: 북한-시리아 간 핵 협력 실상에 대해 체니 쪽이 사진 증거 등을 제시하며 국무부의 대북 협상에 제동을 걸면서 지난해 연말 이래 북·미 관계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체니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공화당 의원까지 들고 일어나자 부시 대통령도 철저한 조사를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 연말까지 핵 신고와 테러지원국 해제를 맞교환하고, 1월에 6자회담을 열며, 늦어도 4월께 라이스 방북을 실현하려던 국무부 계획이 모두 순연됐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핵 협상의 판도 자체가 뒤집어질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북한 원자로 책임자인 전지부(왼쪽 사진 왼쪽)와 시리아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이 다마스쿠스에서 만난 모습. 오른쪽은 공사 중인 시리아 시설.

국무부 협상팀의 반격:
국무부 협상팀 역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체니 쪽에서 제시한 증거에 대한 검증 작업에 들어갔다. 이때 국무부 측에 도움을 준 라인이 바로 이스라엘의 ‘외교 평화세력’, 즉 외교부 라인이었다. 지난해 11월 아나폴리스 국제회의 이후 이스라엘은 야당인 리쿠드당 등의 우익 강경파 및 강경 성향을 노골화해온 바라크 국방장관 등의 주전파와 9·11 이후 중도파로 돌아선 샤론 전 총리 후계자 리브니 외무장관이 주도하는 중도파로 팽팽히 나뉘었다. 그동안 중동 평화회담을 이끌어오다시피 한 노동당은 이미 영향력을 상실해 이들 강경파와 중도파의 향배에 따라 이스라엘의 운명이 좌우될 판이었다.
2008년 1월 가자 지구의 무장 조직 하마스가 이집트와의 장벽이 열린 틈을 이용해 이스라엘 공격용 무기를 대량 확보했다. 2월12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이란 시리아 하마스 헤즈볼라 군사 담당자들의 비밀회의 직후 헤즈볼라 대표인 이마드 무그니야가 모사드에 의해 폭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2월20일 이스라엘 내각회의에서 하마스 거점에 대한 공습과 대규모 지상군 파견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군부의 가자지구 침공안 승인 등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계속돼 왔다.

특히 체니 부통령이 리브니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회동한 다음 날인 3월11일, 그동안 미군 최고 지휘관 중 이란과의 전쟁을 반대해온 대표 인물인 윌리엄 팰런 미국 중부군 사령관이 전격 사퇴하는 일이 벌어져 워싱턴이 술렁이기도 했다. 한때 워싱턴에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공격하면 미군이 이란을 치는 식의 양동작전을 체니가 획책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체니가 구상해온 대 이란전이 성립되려면 최소한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고, 배후에 이란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 북한 -시리아 간 핵 협력 문제는 단순히 북한의 핵 확산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미국·이스라엘 대 이란·시리아·헤즈볼라·하마스 간의 대 중동전의 뇌관이 될 수도 있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었다. 자국의 생존을 위해 이같은 전쟁을 반대해온 이스라엘의 온건중도파 처지에서도 사활을 건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무부 협상팀과 연계된 이스라엘 중도파 역시 북한-시리아 핵 협력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2007년 9월6일 폭격 이후 북한이 시리아에 대해 파괴된 시설의 복구를 위해 일체의 지원을 하지 않았고 또한 다른 형태의 군사협력 등도 없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스라엘로서는 폭격 이후 북한-시리아의 추가 협력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일체 추가 움직임이 일절 없어서 오히려 의아해할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좀더 실상에 대해 접근한 결과 북한-시리아 간 협력이 그동안 네오콘 등이 주장해온 것처럼, 핵 확산을 위한 본격 군사협력이 아니라 북측이 “자금 마련을 위해 시리아가 요구한 범위 내에서 협력한 1회성 상업 거래에 불과하다”라는 점을 파악하게 됐다고 한다. 거래가 한 번에 그쳤고 북한이 이미 돈을 챙긴 상황이기 때문에 관련 시설이 폭격을 받았어도 북측으로서는 자기들과 상관없는 일이었던 셈이다. 또한 관련 시설 역시 본격 핵물질 생산에는 이르지 못한 초보 단계였다. 따라서 “양국 간 협력이 이미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에 대북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라는 체니 등의 주장이 설득력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시리아 대북 협상 담당자 증언이 결정적 역할

9월6일의 폭격 이후 이스라엘 외교부와 시리아 간에 외교 접촉이 오히려 활발하게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시리아 측의 대북 협상 담당자와 미국 국무부 협상팀의 면담을 주선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시리아 담당자는 북한의 핵 과학자들이 시리아에 와서 과연 어떤 활동을 했는지 상세하게 증언했다고 한다. 바로 이 담당자의 증언을 통해 북한과 시리아 협력의 실체가 좀더 분명하게 드러났고, 그의 증언은 체니 등 네오콘의 주장이 과장됐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또한 북한 측이 미국에 설명한 내용과 그의 증언 내용이 일치한다는 점이 확인됨으로써 미국 행정부 내에서 북한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한반도와 중동의 동시 해빙: 전화위복이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체니 등의 문제 제기로 인해 북·미 관계 및 이스라엘-시리아 관계가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다. 미국에 대한 불신 때문에 뻣뻣한 태도를 유지하던 북한 측도 미국 협상팀이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자 협조 자세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북·미 관계가 극적 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스라엘 역시 시리아가 하마스나 헤즈볼라 등에 대한 무력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지난 1967년 중동전쟁 때 빼앗은 골란고원을 돌려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평화협상을 본격 추진했다. 의회 청문회가 열렸던 지난 4월24일은 바로 터키의 에르도간 총리가 평화협상에 대한 이스라엘 올메르트 총리의 메시지를 들고 시리아 다마스쿠스를 방문하기 이틀 전이며, 바로 이날 가자 지구의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앞으로 6개월간 휴전할 것을 제안했다. 또 부시는 백악관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압바스 수반과 만나 올해 연말까지 중동 평화협정을 성공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이처럼 중동 평화의 기운이 무르익는 가운데 체니가 자파 의원들을 동원해 의회 청문회를 개최했지만, 이미 국무부 측에 선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누가 보기에도 맥 빠지는 내용만 나열해 체니 쪽의 마지막 안간힘에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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