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통신2007년 12월1일 북한군 1159부대를 시찰하는 김정일 위원장.

“지금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밑에서는 지금 화산 폭발 일보 직전이다.” 지난 3월27일 불거진 개성공단 경협사무소 요원에 대한 북한 측의 추방 조처, 그리고 28일 연거푸 터진 북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 시위를 지켜보면서, 대북 소식통이 한탄했다. 이 조처들은 시작에 불과하며, 아직 본게임은 멀었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요원에 대한 철수 요구는 이미 알려진 대로 지난 3월19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개성 공단 확대는 어렵다’고 한 게 발단이었다. 북한 측은 이에 대해 3월24일 구두로 3일 내 공단 사무소 요원 철수를 요구했고 3월27일 자정을 기해 전격 철수가 단행됐다. 또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원래 3월25일로 예정했다가 26, 27일의 남북 에너지 회담 이후로 연기했던 일이라고 한다.

북한 정보통이 이같은 조처에 대해 ‘시작’ 또는 ‘양념’에 불과하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뒤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한 대응이 남았기 때문이다. 요원 철수 문제가 불거지기 하루 전인 3월26일, 김하중 장관 발언은 유가 아닐 정도의 대형 사건이 서울발로 두 건이나 연달아 터졌다. 바로 3월26일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부 업무보고 현장에서 행한 모두 발언과 같은 날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행한 발언이다. 이 두 사람의 발언 내용에 대해 북한 측은 즉각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발언 내용이 알려진 3월26일부터 27일 사이, 북측 고위 인사들이 나와 있는 중국의 베이징과 선양 등에서는 평양 내부의 ‘격렬한’ 분위기가 속속 전달됐다. 결국 개성의 요원 철수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외에도 이들 발언에 대해서도 각각의 고강도 대응이 이어질 상황인 것이다.

 

이 대통령, '김정일의 존엄' 훼손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마치 작심한 사람처럼 대북 정책에 대한 소신을 쏟아냈다. 그동안의 흐름으로 볼 때 사실 그 자리는 남북관계의 앞날을 가늠할 분수령과 같은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한 측 수뇌부의 심경은 기대에서 실망으로, 의구심을 거쳐 배신감 내지는 모멸감과 분노로 악화돼 왔다(00쪽 기사 참조). 특히 열린 민족주의를 강조한 지난 3·1절 발언으로 6·15와 10·4 합의에 대한 이 대통령의 부정적인 태도가 감지된 이후 3월 중순께 북한 측은 더 이상의 기대를 접고, 내부적으로 유사 사태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를 구축해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나마 자제를 해왔던 것은 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얘기를 듣고 판단하자는 생각이었다. 바로 3월26일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마지막’으로 이 대통령의 입에 귀를 기울이며 기대했건만 이 대통령은 이날의 모두 발언으로 북한 측 수뇌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버렸다. 사실 서두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동안 ‘남북 지도자들이 통일을 늘 부르짖었는데, 그것이 가슴에서 우러난 것인지, 지도자들의 전략적 의미에서의 구호로 해석해야 할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한 것은 남쪽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까지 모두 통일 문제를 전략적으로 이용한 지도자 취급한 것이다. 그뒤에 바로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앞의 얘기와 연결해보면 6·15 공동선언과 10·4 합의는 바로 전략적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북한 측이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존엄’을 정면으로 부인한 셈이다.

한반도 비핵화니, 인도적 지원에서의 상호주의니, 납북자와 국군포로, 지금까지 대북 협상 자세를 바꿔야 한다느니, 통일부 없다고 통일이 안되는 것 아니라는 식의 이어지는 말들 하나하나가 역시 온통 북한 측을 ‘쑤시는’ 말들이어서, 이미 첫머리에서부터 사실상 대화가 불가능한 상대가 돼버린 셈이다. 이 대통령의 모두 발언에 대한 베이징과 선양 등에 전달된 평양의 반응은 ‘격분’ 그 자체였다.
 

ⓒ연합뉴스지난해 11월 남한 측 물자를 실은 운송 트럭이 파주 지역 통문을 통과해 개성공단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대형 사건을 김태영 합참의장 후보자가 터뜨렸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내정자는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의 질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적(북한군)이 핵(무기)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이 기사에는 익명의 군 관계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김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 “북한이 핵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우리 군이 정밀유도 무기로 선제 공격을 해야 한다”라면서 사실상 ‘예방적 차원의 선제공격’ 개념을 언급했다.

남북 최고 지도자· 군부 자존심 대결?

이 대통령이 북한 최고 책임자인 김정일 위원장을 겨냥한 것이었다면 김 합참의장 후보자는 북한 군부를 직격한 셈이다. 따라서 3월19일의 김하중 장관 발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평양의 분위기가 험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북 소식통이 “지금 평양은 말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미 베이징 등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이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뒤통수를 맞은 북한 군부 역시 선제공격론에 대해 광분한다고 한다. 그동안 남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한 적도 없고, 어쨌거나 미국과 핵무기 폐기를 둘러싸고 협상을 벌이는 상황에서 남한 군부의 총지휘관 후보자가 느닷없이 선제타격론을 들고 나왔으니 북한 군부가 어떤 심정일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동안 북한 내부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취임 이후 지금까지 보여온 태도에 대해 4월 총선 또는 미국 방문 같은 사정이 있어 저러는 게 아니냐며 신중하게 지켜봐온 면도 있다. 또 김하중 통일부 장관에 이은 최근의 도발적 발언에 대해서도 북한을 자극해 남한 총선에 끌어들이려는 일종의 ‘북풍 유도성 책략’으로 보고 경계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북쪽 내부의 분위기는 더 이상 자제하자는 얘기가 통하기 어려울 정도로 남쪽이 너무 나갔다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모멸감을 느끼고 군부가 흥분한 상황에서 원로 그룹이 내부의 강경파를 제어하는 것도 이미 한계에 봉착해, 사실상 통제 불능 상황이라는 얘기마저 나오는 형편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 3월 중순께 이미 북한이 만들어 두었다는 유사시 대응 시나리오 대로 착착 움직여갈 것이라는 얘기다. 서해상에 단거리 미사일이 발사됐던 3월28일 북한 방송에 느닷없이 북한의 이산가족을 주제로 한 동영상 프로그램 등장했다는데, 이 역시 이산가족 상봉이 좌절된 데 대한 남한의 이산가족에 대한 심리전의 일환이라고 한다. “북한은 남한의 약점을 겨냥해 다양한 심리전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총선에서 역이용될 가능성을 고려해 방법에 대한 고민은 하게 될 것이다”라는 게 대북 전문가의 지적이다.

총선을 겨냥해 북풍 유도?

이명박 대통령이 자극적 발언을 하고 김태영 합참의장이 느닷없이 선제공격론을 입밖에 낸 배경에 대해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총선에 임박해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북풍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우선 두 사람의 발언 시점이 너무나도 공교

ⓒ연합뉴스1999년 6월15일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남북 해군의 무력 충돌 모습.

롭다. 두 사람의 발언이 있었던 3월26일 다음 날인 3월27일부터 4·9 총선을 위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바로 공식 선거운동 개시 전날에 맞춰 대북 강경 발언이 터져나온 것이다.

북한이 개성공단 사무소 요원 철수를 요구한 시점이 3월24일이므로, 이때는 이미 정부가 북한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를 무마하기는 커녕 거꾸로 도발을 한 셈이 됐다.

국군의 최고 통수권자와 군의 최고 지휘관인 두 사람의 대북 발언은 남북 간에 최소한의 위기관리 채널조차 없는 상태에서 진행됐다는 점에서 충격이기도 하다. 국정원의 조직 개편과 인사를 앞두고 일부 언론과 국정원 내부에서는 그동안 남북 대화를 주도한 3차장실 산하 대북 전략국을 사실상 없애거나 인원을 대폭 줄일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북대화를 총괄해온 서훈 3차장만 그만두는 선에서 마무리됐고, 오히려 전략국 출신인 한기범 실장이 3차장이 돼 과거의 위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를 통해서 기존의 대북 라인을 살려두어 언젠가는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중이 드러난 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다. 이미 지난해 당 조직지도부가 주도한 내부 검열로 당 통일전선부가 쑥대밭이 되면서 국정원 전략국의 대화 파트너가 더 이상 존재하게 않는다. 마지막까지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이 남았으나 최근 그마저 지방 농장으로 쫓겨난 상태이다. 3월26일의 대북 발언이 있기 한두 주 전에 국정원 주도로 북한의 파트너를 수배했으나 북한 측에서는 일절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현재 남북 간에는 공식이건 비공식이건 정부 간 대화 채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비상 사태시 위기관리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국가 안보를 책임진 남쪽의 최고 책임자들이 비록 말뿐이긴 하지만 북한의 최고 지도부에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형님 공천, 친박연대, 소장파의 반란, 돈다발 살포 등 온갖 악재가 터져 나온 이번 총선에서 ‘써먹을 건 북풍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일일까.

1980년대 '겨울 공화국'으로 돌아가나

 

또 한편에서는 4·9 총선에만 한정하지 않고 4월 방미와 그 이후의 ‘대한민국 호’의 향방까지 염두에 둔 중장기 포석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라이스 장관과 회담한 직후, 워싱턴에서는 미국이 MD와 PSI에 대한 한국의 참여를 요구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중국이 입수해 북한에 전달했고, 북한은 3월28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시리아로의 핵확산을 원천 부인해버리는 형태로 강경하게 치고 나왔다. 현재 동북아에는 한·미 동맹과 북·중 동맹 사이에 긴박한 대결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4월15일부터 시작되는 이명박 대통령 방미는 따라서 한·미 동맹의 틀을 넘어 미국이 구상 중인 새로운 아·태지역 지역안보 틀 안에 한국이 편입된다는 점에서 안보 환경 자체가 변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지역안보 체계의 하위 파트너로서 MD와 PSI 참여, 미국제 최신 무기 수입, 주한 미군 주둔비 증액 등 온갖 군사적 의무와 천문학적인 비용 지출을 감당해야 할 상황이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미국으로부터 반대급부로 얻을 것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갑자기 한국이 경제적 반대급부도 신통치 않은 상태에서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동북아 신냉전의 한복판에 끌려들어가게 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도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북한의 위협을 확대하는 상황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갑자기 세월이 1980년대의 ‘겨울 공화국’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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