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위구르 독립운동가 리비야 카디르(가운데 여성)는 ‘위구르의 달라이 라마’로 불리며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

3월7일 오전 10시30분 중국 남방항공 CZ6901 여객기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중심 도시 우루무치 공항을 이륙했다. 승객 200여 명을 태운 비행기는 오후 2시5분 베이징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낮 12시쯤 비행기는 웬일인지 방향을 바꿔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시 중촨 공항에 긴급 착륙했다.

이틀 뒤인 3월9일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당국은 남방항공 항공기 폭파 테러 기도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왕러치안 자치구 당서기는 “올림픽을 방해하려는 분리주의자들의 활동이다”라며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을 언급했다. ETIM은 위구르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 조직이다.

중국 내 소수민족 분쟁이라고 하면 흔히 티베트를 떠올린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게 위구르 독립 운동은 티베트보다 더 위험하다. 티베트  주민은 적어도 총과 폭탄을 들고 무장 항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반면 위구르족 독립운동 단체는 자살 폭탄 공격과 요인 암살도 서슴지 않고 있다. 중국 공안부 발표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신장위구르 독립운동 단체가 벌인 이른바 ‘테러’가 260여 차례 있었고 160여 명이 사망했다.
 

 

10년간 무력 충돌 260여 차례

최근 들어 위구르 무장 단체와 중국 당국 간의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 1월27일 우루무치 공안은 주택가 아파트 단지 안 테러 조직 아지트를 덮쳐 두 명을 사살하고 15명을 체포했다.  2007년 1월5일에도 중국 공안이 신장위구르 파미르고원 산악지역의 ‘테러 훈련 기지’를 소탕한 적이 있었다. 그때 공안은 테러리스트 18명을 사살하고 17명을 체포했으며 와중에 중국 공안 한 명이 피살되었다.

중국 북서쪽 변방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사는 위구르인들은 터키어를 쓰는 모슬렘(이슬람교도)이다. 외모부터 중국 본토인과 확연히 다르다. 위구르인은 1933년 동투르키스탄이라는 독립국을 건설했지만 1949년 중국에 점령됐다. 신장위구르 성 1800만 인구 가운데 절반인 900만명이 위구르인이다. 1949년 6%였던 한족 인구는 이주 정책을 업고 최근 40%까지 늘었다.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중국의 비밀 핵실험 기지였다. 이곳 ‘롭노르’ 지역에서 50여 차례 핵폭발 실험이 있었다. 중국 당국이 보안을 이유로 국경 무역을 통제해 이 지역 경제는 낙후되어 있다.

인권 단체 엠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위구르인들은 단지 독립을 지지하는 평화 시위를 하는 것만으로도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찍혀 체포되거나 사형 위협을 받고 있다.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중국 공안이 체포한 이른바 ‘테러’ 용의자가 1만8000명에 이른다.

이 지역 독립운동가 중 노벨평화상 후보 반열에 오르는 유명인으로 리비야 카디르(61)가 있다. 그녀는 ‘위구르의 달라이 라마’로 불리는 인권 운동가다. 중국은 1999년 반체제 운동을 빌미로 그녀를 체포해 수감했으나 2005년 서방의 압력으로 석방했다. 리비야 카디르는 지금 미국에 망명해 세계위구르대표회의(WUC) 의장으로 있다.

 

 

 

ETIM이 빈 라덴 돈 받았다?

리비야 카디르의 비폭력 노선과 달리 무장 폭력을 외치는 조직도 많다. 가장 강력한 무장단체는 ETIM이다. 중국 정부는 1990년대 잇달아 발생한 차량 폭탄 테러와 2002년 키르기스스탄 중국 외교관 피살 사건 배후로 ETIM을 지목했다. 2002년 9월 유엔은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ETIM을 테러 단체로 규정했다. 또 다른 무장 조직으로 동투르키스탄 해방기구(ETLO)가 있는데, 1990년대 후반 터키에 본부를 두고 세워졌으며 2005년 10월 중국에 대해 무장투쟁을 선포했다.

티베트가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과 달리 위구르인의 희생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97, 1999, 2001년에 대규모 주민 시위가 있었지만 현장 사진 한 장 구하기도 힘들다. 위구르가 티베트보다도 더 오지 변방이라는 이유가 있겠지만, 이곳 독립운동이 이슬람 무장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서방의 고개를 돌리게 한 듯하다. 미국 국무부는 2005년 ETIM이 알카에다로부터 훈련을 받고 있다고 보고했다. 1999년 ETIM 지도자 하산 마숨이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나 지원금을 받았고, 빈 라덴이 요원 수십명을 중국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료는 중국 측이 과장해 미국에 흘린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위구르인 망명자 20명이 덩달아 미군에 체포돼 관타나모 수용소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

2003년 이들이 알카에다와 관련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갈 곳 없는 이들은 그냥 관타나모에 남았다. 미국은 이들 망명자를 받아줄 나라를 찾았지만 다들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수용을 거절했다. 후에 다섯 명이 알바니아 난민 수용소로 보내졌으나 관타나모와 다를 바 없는 열악한 구속 상태에 묶여 있다. 중국 위구르→키르기스스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미국→알바니아로 이어진 이들 망명객의 유랑은 2차 세계대전 때 일제에 징병되었다가 러시아를 거쳐 독일·미국 포로가 된 조선인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소외된 위구르인은 독립 이전에 먼저 세계가 자기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란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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