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3월18일 폐막한 제11기 전인대(위)에서 확정된 상무위원 161명 중 25명이 소수민족 출신이다.
최근 티베트 시위 유혈 진압 사태를 보며 중국의 분열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예컨대 56개에 이르는 소수민족이 티베트 사태에 자극돼 분리 독립운동에 나설 경우 옛 소련처럼 중국이 쪼개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미국 의회조사국(CRS) 같은 싱크탱크는 20여 년 전부터 이런 중국 분열 시나리오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이 옛 소련처럼 분열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국 중앙정부가 지난 60여 년간 이용해온 ‘당근과 채찍’ 정책이 나름으로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티베트와 위구르·내몽고에서 크고 작은 소요가 있지만, 나머지 53개 소수민족은 중국 중앙정부에 적대적이지 않다. 여기에는 조선족도 포함된다.

중국 내 소수민족이 쉽게 중화 사회에 포섭되는 데는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당근’이 한몫 한다. 흔히 외신을 통해 접하는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탄압’과 ‘폭력’으로 일관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체첸과 무력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를 비롯해 다른 다민족 국가와 비교했을 때, 중국이 소수민족을 가혹하게 억압한다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중국의 소수민족 배려 정책 중에는 소수민족 출신 엘리트를 발탁해 등용하는 것이 있다. 3월18일 폐막한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확정된 인사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우선 상무위원이 그렇다. 총 정원 161명 중 25명(15%)을 소수민족으로 충원했다. 소수민족이 중국 전체에서 차지하는 인구 비율 8%의 두 배에 가깝다.

고위층 간부 분포 역시 소수민족 출신이 전체 인구 비율보다 많다. 새로 선임된 국무원 부총리와 국무위원 9명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후이량위(回良玉)가 부총리에, 다이빙궈(戴秉國)가 국무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후이 부총리는 소수민족인 후이(回)족, 다이 위원은 투자(土家)족이다. 3월14일 폐막된 중국 정책 자문기구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는 상무위원 298명을 새로 뽑았는데 그 중 소수민족이 37명(12%)에 이른다. 이런 소수민족 인재 육성 정책은, 각 지방의 소수민족 엘리트로 하여금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기보다는 권력에 편입되는 쪽이 낫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소수민족 배려 정책 중에서 또 다른 예로 가족정책이 있다. 중국은 현재 한 자녀 정책인 계획생육(計劃生育)을 30여 년째 실시 중이다. 이 가족 정책은 많은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 하지만 소수민족에게 이 정책은 적용되지 않는다. 소수민족은 따라서 두 자녀까지 출산하는 것이 기본으로 가능하다. 심지어 변방 오지 소수민족들은 무제한 출산 권유까지 받는다. 부모 중 한 명이 소수민족일 경우 본인의 선택에 의해 호적상 민족이 결정되는 현실 역시 비슷한 혜택이라고 볼 수 있다.

총칼보다 효과 높은 문화 통합 정책

대학 진학 때 특혜도 소수민족 우대 정책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대학 입학시험에서 한족보다 총점의 최고 10%까지 가산점을 받는 것이 기본 관례다. 최근 대학 입시 경쟁이 점점 과열되는 풍조에서 10% 가산점은 부러움을 살 만하다. 소수민족 교육을 위해 설립한 중앙민족대학도 있다.

물론 당근 정책의 이면에는 ‘채찍’이 있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1989년 티베트 당 서기 재임 시절 터진 라싸 유혈 사태를 현장에서 진두지휘해 진압한 경험이 있다. 당시의 활약상이 덩샤오핑(鄧小平)의 눈에 들어 고속 출세의 길을 달렸다는 설까지 있을 정도다. 그가 겉으로는 온화하고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무골(武骨) 못지않은 강력한 지도자라는 얘기는 티베트 강경 진압에서도 알 수 있다. 체제에 순응하는 소수민족에게는 의도적인 특혜를 주고 우대 정책을 실시하지만,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에 대한 탄압에는 일말의 관용도 없다. 이는 꼭 소수민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희생자는 이번 티베트 진압 희생사 수를 웃돈다.

중국은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을 막기 위해 총칼보다 더 효과적인 무기를 쓴다. 바로 문화 통합 정책이다. 중국 표준어인 푸퉁화(普通話)의 반강제적 보급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신문·방송 등의 언론과 학교에서 푸퉁화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가르치다 보니 고유의 소수민족 언어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소수민족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푸퉁화의 적극적 보급으로 중국 소수민족 언어의 약 50%가 소멸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족 이주 정책은 악명이 높다. 한족을 대량으로 소수민족 지구로 이주시켜 인구 분포 비율을 바꾸는 것이다. 소수민족은 인구에서 중국 본토인에 비해 절대 열세에 놓여 있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인구 500만명이 넘는 민족은 티베트의 짱(藏)족을 비롯해 후이(回)족, 먀오(苗)족, 위구르족 등 9개 민족에 불과하다. 이들 대다수는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하다. 중국 전체 인구의 92%인 12억명을 차지하는 한족이 이 지역에 진출하면 인구 구성 비율 자체가 바뀌어버린다.

때때로 민족 융합을 위한 이주정책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이주 한족이 대부분 현지 정치와 경제 이권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유혈 사태가 발생한 티베트의 경우에도 전체 인구의 3.3%에 불과한 한족이 상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Reuters=Newsis외교 담당 국무위원에 뽑힌 다이빙궈(위)는 소수민족인 투자족 출신이다.
올해 중국 소수민족의 봉기가 세계의 눈길을 끄는 이유는, 아마도 8월8일 개최되는 베이징 올림픽 때문일 것이다. 일각에서 소수민족 탄압을 문제삼아 베이징 올림픽 보이코트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코트 같은 사태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을 견제하는 데 가장 앞장서온 미국조차 올림픽을 보이코트할 가능성은 없다.

현재 상황에서 볼 때 서방 세계의 움직임과는 달리 올림픽은 예정대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성화 봉송을 비롯한 관련 행사 등도 일부 차질은 있을지 모르나 순조롭게 거행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중국이 올림픽 개최를 결심하게 된 데는, 소수민족 문제 처리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티베트 소요 사태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물론 중국의 소수민족 통제가 효과적으로 진행된다고 해서, 티베트나 위구르 독립 움직임이 영원히 소멸한다는 뜻은 아니다. 티베트는 역사적·문화적 고유성이 워낙 강한 지역이어서 상당 기간 독립·자치 운동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들 지역은 독립도 안 되고, 중국으로의 완전 통합도 안 된 상태에서 수십 년을 더 끌 가능성이 높다. 1980년대 말 옛 소련의 소수민족이 독립한 것은 소련 체제가 붕괴된 것이 계기였다. 티베트·위구르 문제 해결은, 결국 중국 중앙집권 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되느냐에 달려 있다.

기자명 베이징=김민선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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