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3개월 동안 계절노동자로 일한 캄보디아인들이 귀국하기 위해 음성군청에 모였다

5인승 1t 트럭 한 대가 이른 새벽 텅 빈 군청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트럭 뒷자리에서 내린 캄보디아인 둘이 20인치 캐리어 가방을 짐칸에서 꺼내들었다. 뒤이어 속속 모여든 다른 차량에서도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가 차례차례 얼굴을 드러냈다. 각자 다른 차량에서 내린 이들이 반가운 얼굴로 안부를 물으며 손을 부여잡았다.

7월31일 충북 음성군청 앞. 음성군 농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캄보디아 계절노동자 18명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음성군은 농번기 농촌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캄보디아 정부와 MOU를 체결했다. ‘계절노동자 제도’를 통해 약 석 달간 노동 기간이 끝난 이들은 이날 새벽 5시30분 군청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떠나는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군청 담당자와도 기념사진을 찍으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이들의 손에는 캐리어 외에도 한국산 과자나 기념품 등이 들려 있었다.

농촌의 노동 불균형 현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책이 계절노동자 제도다. 법무부는 2017년부터 계절노동자 제도를 확대 시행해(2015~2016년은 시범운영) 농번기 농가를 위한 90일짜리 단기 노동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각 기초자치단체가 필요한 인력을 법무부에 요청하면, 법무부가 검토 후 지자체별로 배정 인원을 정하는 식이다. 올 상반기에만 전국 41개 기초자치단체에 배정된 계절노동자는 모두 2597명이다.

ⓒ시사IN 이명익계절노동자로 일한 캄보디아인들이 군청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계절노동자로 일한 캄보디아인들은 인천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농촌 외국인 노동자 2만6000명 부족”

일할 사람을 섭외하고, 한국으로 안내하며, 각 농가에 배치한 뒤 관리·감독하는 일은 기초자치단체에 일임했다. 음성군청 관계자는 모여든 캄보디아인들을 일일이 점검하며 이탈자가 없나 확인했다. 군청이 인천공항까지 이들을 한꺼번에 수송하는 것도 혹시 모를 이탈자를 막기 위해서였다. 음성군의 경우 2019년 상반기에는 외국인 노동자 94명이 입국했다. 하반기에는 약 50명이 배정될 예정이다.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 없는 농촌은 이제 상상하기 어렵다. 그동안 농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허가제에 의존해왔다. 농촌에 3년간 취업할 수 있고, 추가로 1년10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한 방식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6월 기준 전국 농촌 지역에서 일하는 등록 외국인(E-9-3 비자)은 총 3만645명이다. 하지만 이 인력으로는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지난 3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만6000여 명이 추가로 더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그동안 농가에서는 사설 용역업체를 통해 암암리에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자)를 알선받기도 했다. 농가에서 용역회사에 하루 일당으로 지급하는 돈은 약 7만~12만원 선이다. 합법 여부나 성별에 따라 일당이 다르다. 농촌 노동의 특성상 광역자치단체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며 멀리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7월22일 오전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도 농번기 인력 부족 문제가 원인이었다. 이날 60~70대 한국인 7명, 30~40대 타이(태국)인 9명 등 총 16명을 태운 15인승 승합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4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이들은 충남 홍성군에서 인력을 태운 뒤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농가로 가던 길이었다.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고 추정되는 타이인 3명은 사고 뒤 종적을 감췄다. 이 차에 타고 농가로 향하던 타이인은 모두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가 난 승합차도 등록된 영업용 차량이 아닌 일반 자가용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숙정 박사(경북대)가 지난 4월 발표한 논문 〈계절적 미등록 이주노동자 유입 현황과 사회적 묵인〉에는 이처럼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조직적으로 이끌고 있는 조 아무개 대표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200명이 넘는 타이인 작업단을 운영하는 조 대표는 계절에 따라 전남·충북·경북 지역을 오가며 농번기 일손을 공급했다. 특산물마다 바쁜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전국을 돌며 단기 인력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정 박사는 이 논문에서 “합법적인 단기 계절노동자가 조직적 불법 인력 공급 업체를 대체하는 정책적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기초자치단체의 도입 의지와 역량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시행 주체를 광역자치단체나 공공기관으로 이전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계절노동자 제도는 음지에 있던 불법 단기 노동을 양지로 끌어올린다는 명분으로 도입되었지만, 농가의 불만은 여전하다. 충북 음성군 금왕읍에서 시설재배 농업을 운영하고 있는 박 아무개씨는 500㎡ 비닐하우스 40동에서 각종 쌈 채소를 재배한다.

ⓒ연합뉴스7월22일 삼척시에서 발생한 사고(아래) 당시 차에 탔던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3명은 종적을 감추었다.

 

상시 인력은 박씨를 포함해 총 7명이다. 내국인은 박씨뿐이다. 나머지는 캄보디아 출신 3명과 베트남 출신 3명이다. 7월31일 캄보디아로 돌아간 계절노동자 2명까지 합치면 지난 석 달간은 9명이 함께 일했다. 농사도 결국 숙련도가 중요하다. 똑같이 상추를 수확해도 능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존재한다. 계절노동자가 머무는 기간을 많은 농가가 아쉬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일이 손에 익을 즈음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상추·근대·청경채·적근대·고추 등 박씨가 기르는 작물 대부분은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자란다. 박씨는 그날그날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락시장)에 올라온 작물 가격을 확인하며 수확 물량을 정한다. 채소 경매 가격은 변동 폭이 워낙 커서 예측하기 어렵다. 박씨가 스마트폰 화면을 열어 상추 가격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3~4일 전까지만 해도 상추 가격은 1박스(4㎏)당 3000원 선까지 떨어졌지만, 전날부터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었다.

박씨는 “가격이 올랐으니 (상추를) 더 따야 하는데, 이럴 때 계절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 버렸네”라며 한숨을 쉬었다. 비쌀 때에는 품질에 따라 상추 1박스에 약 7만원까지 오르는 게 경매 시장이다. 농가 처지에서는 소득을 결정하는 매출 구조 자체가 불안정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적정 수준의 고용 규모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도 스트레스다. 박씨는 “매출과 인건비 모두 변동이 클 수밖에 없다. 둘 중 하나라도 좀 안정적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농촌에 외국인 노동력이 본격적으로 확대된 시점은 2000년대 초·중반이다. 내국인 인력 부족 때문이다. 농촌 임노동은 전형적인 3D 업종이라 내국인이 기피했다. 같은 3D 업종이라도 농촌 임노동은 농촌 마을에서 고립된 채 살아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노지 작물 재배와 자영농 중심이던 농업이 시설 작물 재배(하우스 농업 등)와 경영농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품앗이’ 같은 전통적인 인력 공급 방식으로는 인력 수요를 맞추기도 어려워졌다. 농업 규모화가 진행됐다지만 농번기와 농한기가 정해져 있고, 농번기라 해도 작물 가격 변동이 심하다. 농가 처지에서는 ‘바쁠 때’만 내국인 인력을 쓰고 싶지만 내국인 인력은 귀하다 보니 언감생심이다.

ⓒ시사IN 김동인현재 농촌은 고령의 내국인 여성 노동자와 상대적으로 젊은 외국인 노동자(위)가 두 축을 이뤄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계절노동자, 산재·건강 보험 적용 안 돼

박씨 같은 대규모 시설 농가는 과거에 주로 중·노년 여성 노동력을 썼다. 남성에 비해 여성 임금이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농촌 지역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여성 노동력을 임시로 고용하는 것도 한계에 봉착했다(36~37쪽 딸린 기사 참조). 현재 농촌은 고령의 내국인 여성 노동자와 필리핀·베트남·캄보디아·우크라이나 등에서 온 상대적으로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두 축을 이뤄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도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최장 4년10개월까지 일할 수 있는 이들보다는 계절노동자가 더 환영받기도 한다. 퇴직금 때문이다. 계절노동자는 단기 노동이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이 지점이 일이 손에 익을 만하면 돌아가버리는 90일 단기 노동의 맹점으로 농가에 작용한다.

계절노동자에게는 건강보험, 산재보험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계절노동자가 근무 중 다칠 경우,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음성군에서는 예산을 통해 농가에 산재보험을 지원하고 있다. 제도 시행 초기에만 해도 기초자치단체는 계절노동자의 항공료(최대 40만원)를 지원했는데, 음성군처럼 이제는 제도의 맹점을 보완하는 식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기초자치단체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 취약한 주거 환경 등에 노출되어 있는 계절노동자는 각종 노동 권리 구제망에서 비껴나 있다. 체류 기간이 짧다 보니 권리 주장을 하기도 어렵다. 농가와 계절노동자 사이 갈등 조정자 구실은 결국 기초자치단체가 해야 하는데, 지자체의 역량에 따라 이들의 처우는 지역별로 얼마든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기자명 음성·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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