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7월31일 아침 7시께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 수납 해고 노동자들이 출근길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발밑으로 왕복 20차선 도로가 펼쳐졌다. 과속을 하거나 경적을 울릴 때마다 캐노피(톨게이트 옥상) 바닥이 함께 흔들렸다. 김미이씨(46)는 이제 진동에 익숙하다. 김씨는 하루 두 번 캐노피 한복판으로 향한다. 서울에서 안성으로 출퇴근하는 딸이 탄 고속버스가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곧 도착한다’는 딸의 문자를 받고 김씨가 도로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지상에서 10m 높이 캐노피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한 달째, 모녀는 아침저녁으로 짧은 인사를 나눈다. 집을 이렇게 오래 비우게 될 줄 몰랐다. ‘오늘은 좌석 안쪽에 앉아서 잘 안 보였어.’ 딸이 아쉬워하며 사진 하나를 메시지로 보내왔다. 사진 속에서 김씨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허울뿐인 정규직화 1500명 집단해고 청와대가 책임져라’ ‘한국도로공사 직접고용 이행하라’라고 쓰인 현수막만은 선명했다.

ⓒ시사IN 자료같은 날 캐노피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가 빨래를 하고 있다.

자회사 전환 거부한 1400명 계약 해지 

김씨가 서 있는 곳은 원래 ‘7월1일 한국도로공사서비스(주) 출범-최고의 서비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던 자리다. 지난 6월30일 새벽 3시30분,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조원 41명이 한국도로공사(이하 도로공사)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에 올랐다. 도로공사는 7월1일자로 수납원 6500여 명 중 5100여 명을 한국도로공사서비스 소속으로 전환했다. 6월30일까지 전환을 거부한 총 1400여 명이 계약 해지를 당했다. “월말에 항상 다음 달 근무표가 나오는데 제 이름이 없더라고요. 그게 제가 받은 해고 통보였어요.” 부산 물금 톨게이트에서 9년간 일한 임봉근씨(57)가 말했다.

다른 이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민주노총 소속 민주일반연맹(민주연합노조·공공연대노조·경남일반노조·인천일반노조)과 한국노총 소속 톨게이트 노조를 중심으로 한 1400여 명은 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7월1일부터 농성을 시작했다. 서울 톨게이트 바로 옆 도로공사 서울지사와 청와대 앞에, 전국에서 모인 500여 명의 수납원들이 천막을 쳤다.

한 달 사이에 캐노피 위 철근 구조물 사이로 천막 3개와 텐트 8개가 생겨났다. 사방에 연결된 빨랫줄에는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7월31일 현재 이곳에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32명이 살고 있다. 적게는 30대부터 많게는 60대까지 모두 여성 노동자들이다. 농성이 이렇게 장기화될 줄 모르고 들고 온 것은 옷가지 몇 개를 넣은 배낭뿐이었다. 지난 한 달간 날씨와 전쟁을 치렀다. 뙤약볕에 달아오른 바닥은 최고 50℃까지 올라갔다. 열기 탓에 슬리퍼가 쪼그라들어 발에 맞지 않았다. 고무 합판 재질의 바닥을 잘못 디뎌 화상을 입기도 하고 일부는 탈진 증세를 보였다. 피할 그늘조차 없는 곳이었다. 결국 처음 캐노피에 올라왔던 41명 중 9명은 이석증, 혈변 증상, 저혈압 등 건강이 악화돼 캐노피에서 내려갔다.

“생존력이 확실히 늘었어요. 어떻게든 적응을 하더라고요.” 김미이씨가 비닐 장막이 나부끼지 않도록 돌을 고정하며 말했다. 구멍이 뚫린 곳은 능숙하게 테이프를 붙였다. 장마철이라 비바람에 대비해야 했다. 얼음물부터 음식, 약, 담요, 핫팩 등 필요한 물품은 밑에서 밧줄에 매달아 하나씩 올려주면 전달받았다. 그사이 간이 샤워장과 화장실도 생겼다.

화장실 뒤처리는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용변 후 봉투에 담은 뒤 종량제 비닐에 모아뒀다가 당번을 정해 반대편 밧줄로 내렸다. 이나은씨(60)는 “매일 미뤄둔 숙제를 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더워도 잘 참던 엄마들인데 배변 처리가 매번 고역이네요.” 오래도록 참다가 방광염과 변비에 걸리기도 했다. 화장실 가기가 두려워 하루 두 끼만 먹는다.  

ⓒ시사IN 신선영7월31일 새벽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장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있다.

김미이씨는 서안성 톨게이트에서 16년간 수납원 생활을 했다. “데모 같은 건 나랑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어요. 사는 게 너무 바빴으니까요.” 20년 전 남편과 이혼한 후 딸 둘을 혼자 키웠다. 처음에는 마트에서 일했지만 양육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톨게이트 수납원은 3교대 근무인 데다 앉아서 하는 업무라 체력 부담이 덜하더라고요.” 요금수납원을 하며 주말에는 식당에서 서빙 알바를 병행했다. 한 달 내내 쉰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3교대라는 장점 때문에 수납원 중에는 김씨처럼 집안의 가장이 많았다. 육아나 조부모 보살핌 등 돌봄 노동을 해야 하거나 신체적인 질환이 있어 육체노동을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경력 단절 후 일을 새로 시작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수납원 중에는 여성과 장애인의 비율이 높았다.

김씨가 2003년 서안성 톨게이트로 출근할 때는 도로공사의 정규직 직원이었다. 당시에는 도로공사가 영업소를 직영으로 관할했다. 그러나 이듬해 용역업체가 들어오면서 1년 만에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 됐다. 이후 15년 동안 1~2년마다 재계약을 했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어요. 비정규직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던 거죠.”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늘 있었다. 특히 하이패스가 확대되면서 해마다 해고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김씨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 구조조정을 시행하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기억했다. 도로공사의 퇴직자들이 영업소 운영권을 넘겨받아 용역업체를 운영하는 곳이 많아졌다.

계약 연장 여부는 오로지 소장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수납원들은 퇴근 후에도 화장실을 청소하고, 소장이 가꾸는 텃밭을 대신 관리했다. 도로에 난 잡초를 뽑고 식당이 닫힌 주말에 식사를 준비하는 등의 잡일도 비공식적인 업무가 되었다. 모두 무급 노동이었다. “싫어도 해야죠. 바른말 하면 잘리니까요.” 일부 영업소 소장들은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겠다’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아침마다 소장 밥 차려주고 김장까지 해다 바쳤다” “주말에 만나서 술 먹자며 성희롱하기도 했다” 등 수납원들이 겪었던 ‘갑질’ 피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비슷했다.

동시에 수천 대의 차량 운전자를 상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였다. 하이패스 미납금을 징수하거나 과적 차량을 단속할 때면 기사들이 욕설을 퍼부을 때도 있었다. 여성 요금수납원들은 바지를 입지 않은 남성 운전자도 여럿 만났다. 성폭력이었지만 화를 내거나 신고할 수는 없었다. 6년간 순천 톨게이트에서 수납원 일을 한 백분옥씨(55)는 남성 운전자들이 돈을 건네는 척하며 손을 잡을 때가 많다고 했다. 화를 내면 민원이 제기됐다. 민원을 ‘발생시킨’ 수납원이 민원인에게 다시 전화해서 사과하도록 소장은 조치했다.

도로공사 서울영업소 곳곳에는 ‘법원판결 이행하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2013년, 수납원 500여 명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냈다. 1·2심 법원은 각각 2015년과 2017년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도로공사 직원이라고 판단했다.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도로공사의 관리감독 아래 있었기 때문에 파견법 위반이라고 본 것이다. 전남 지역에서 12년째 요금수납원으로 일한 이상희씨(46)에게는 그간 겪은 부당한 관행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우리를 같은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동안 사는 게 바빠 말하지 못했지만 위로받는 심정이었어요.”

공공부문 정규직화 대상에 포함됐지만··· 

2017년 7월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도로공사도 대상에 포함됐다. 도로공사는 자회사(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통해 요금수납원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다. 대법원 판결만 기다리고 있던 수납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들은 자회사를 ‘큰 용역업체’로 보았다. 결제 자동화 시스템인 스마트 톨링이 본격화되면 회사 자체를 언제든지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회사 근로계약 신청서에는 ‘근로자가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자회사 근로조건에 동의하면 자회사 전환의 효력은 유지된다’라는 조항이 있었다. 즉, 대법원에서 승소하더라도 ‘도로공사 직원’이라는 판결을 인정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시사IN 신선영7월29일 청와대 인근에서 노동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면 수납 업무를 할 수 없었기에 5100여 명은 자회사를 선택했다. 도로공사는 지난해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수납 업무가 아닌 공사 조무원이 수행하는 업무(도로정비·조경·청소·경비·조리원 등)를 하는 기간제 근로자 지위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6급 척추장애가 있는 박미희씨(55·가명)는 이 조항 때문에 자회사 전환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수납 업무가 아니면 힘들 것 같아서요. 오래 서 있을 수 없는데 풀 뽑기나 청소를 해야 하잖아요.” 고심 끝에 박씨는 자회사 전환을 거부했고 6월30일자로 계약 해지를 당했다. 결국 지난 7월1일 짐을 꾸려 서울영업소로 올라왔다. 같이 일했던 대다수 동료들이 박씨와 방향을 달리했다. ‘지금 나이에 잘리면 다른 일을 구할 수 있을까’ ‘장애가 있는데도 이렇게 일할 수 있는 데가 없으니까’ 하는 생각에 움츠러들었다. “자회사 가서 일하고 있는 동료가 ‘직고(직접고용) 좋은 거 나도 알아. 그런데 나는 선택 못하는 거야’ 하더라고요.” 다달이 밥벌이가 중요한 가장에게 다른 선택권이 없다는 걸 박씨는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7월 한 달 핸드폰 데이터 사용량이 5~ 6배 늘었다. “원래 2~3G 정도 쓰는데, 이달은 15~16G 나왔네요.” 캐노피에 오른 이들은 핸드폰으로 자주 뉴스를 확인했다. 캐노피 위에서, 도로공사 서울영업소와 청와대 앞에서 500여 명이 한 달을 보냈지만 이렇다 할 변화는 아직 없다. 7월9일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직접고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는 뜻을 내비쳤다. 이후 7월18일 노사교섭이 진행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기사에 달린 댓글은 수납원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외주사인 줄 모르고 들어갔냐’ ‘어떻게 너희가 공기업에 들어간다고’ 같은 말들이었다. “우리가 스펙 높은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해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요. 지금 받는 만큼 받아도 좋으니 잘릴 걱정 없이 일하고 싶어요. 그것뿐이에요.” 김미이씨가 말했다.

캐노피 아래에서는 하루 두 번 캐노피에 오른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짓는다. 각자 만든 반찬도 집에서 가져왔다. 이선희씨(53)는 아직 캐노피에 오른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신데 계속 저를 찾는대요.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드냐면서요.” 최희승씨(49)는 집에 남겨두고 온 중학교 3학년 딸에게 늘 미안하다고 했다. 천막 안의 사람들은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서 저는 카톡 알림말에 ‘전화 사절’이라고 올렸어요. 괜히 더 마음 약해질까 봐요.” 톨게이트 캐노피 위의 하루가 무겁게 흘렀다. 부산 방향으로 멀어지는 딸의 버스를 한참 바라보던 김미이씨가 다시 천막으로 돌아왔다. 그의 손과 발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매연 때문이었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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