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 일본과 독일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서 극명히 대조된다. 한때 독일도 국가 주도의 전쟁범죄 배상엔 적극적이었지만 민간 기업의 외국인 강제노동에 대한 보상은 거부했다. 나치의 불법행위란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이유나 세계관에서 비롯된 박해’에만 해당하며, 민간 기업에서의 강제노동은 ‘이미 국가 간 배상으로 마무리됐다’는 논리였다. 그랬던 독일 정부와 기업이 2000년부터 외국인 강제노역 피해자 170만명에게 총 100억 마르크를 보상하게 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나치의 강제노역 피해자들 역시 1980년대 말부터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잇달아 냈다. 독일 측은, 소송에 패하면 천문학적인 배상액을 지불하게 되는 데다 수출 주력 기업들이 ‘무책임한 전범 기업’으로 이미지가 실추되면 국가경제에 더 해롭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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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피해자들의 소송이 현실화하자 독일 정부는 나치 치하에서 외국인노동자 노역에 연루되었던 다임러크라이슬러, 벤츠, 지멘스, 폭스바겐, 바이엘 등 대기업과 머리를 맞대고 대책 마련에 골몰했다. 그 결과 설립된 것이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EVZ)’이다. 독일 정부와 기업들이 각각 50억 마르크씩 총 100억 마르크(약 8조4000억원)를 출연해 배상기금을 조성했다. 재단은 2007년까지 폴란드·헝가리·우크라이나·러시아 등지에서 동원했던 강제노동 피해자 166만명에게 44억 유로(약 6조5843억원)를 보상했다. 독일 대기업들이 출연한 기금이 바닥나자 중소기업과 교회 등 사회 곳곳에서 돈을 댔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극명한 차이는 단지 두 나라의 도덕성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점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미국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처리 과정에서 독일은 4개 연합국에 의해 분할 통치됐다. 연합국은 처음부터 경쟁적으로 전쟁범죄를 철저히 추궁했다. 반면 일본은 미국이 단독으로 점령했다. 미국은 일본을 냉전체제에 편입해 대소련 방위의 우방으로 만들기 위해 최고 전범인 일왕과 식민지 지배 등에 대한 책임 추궁을 회피했다. 오늘날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싸고 아베 정권이 벌이는 무도한 도발에 대해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나서서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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