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생 98% “외모 품평을 들었다”
  • 양정민 (자유기고가)
  • 호수 619
  • 승인 2019.08.0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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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평가 자체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연예인 설리가 7월12일 JTBC <악플의 밤>에 출연해서 던진 말이다. 의아해하는 사회자를 향해 설리는 “칭찬도 계속 들으면 기분이 썩…. 평가잖아요”라며 외모에 대한 언급에 곧 “너는 이게 나아. 이렇게 해”라는 평가가 따라온다는 점을 지적했다. 늘 아름답고 순종적일 것을 요구받는 여자 연예인으로서 “칭찬이라도 평가이기 때문에 달갑지 않다”라고 말하는 데는 꽤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도 외모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텔레비전을 켜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의 외모 순위를 매기는 게임이 단골로 등장하고, 여자 연예인의 허리가 A4 용지로 가려지는지 실험해보기도 한다.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짧은 머리의 딸에게 “누가 저걸 여자로 보겠냐”라며 대놓고 면박을 주는 부모가 나온다. SNS에는 다이어트 보조제, 보정속옷, 미용시술 광고가 넘쳐난다. 이 모든 콘텐츠는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 ‘정상적’이거나 ‘이상적’인 외모의 기준이 존재하며 모두가 그 기준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고.

일주일 동안 외모 평가하지 않기

ⓒ정켈 그림

여성민우회는 <한겨레>와 함께 2016년 ‘해보면 달라져요’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주일간 외모 이야기 하지 않기에 도전했다. 20~40대 참가자 5명은 외모 이야기가 일상에서 안부 인사처럼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음에 놀라워했다. 심지어는 외모 평가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너 정도면 미인이야”라며 외모 평가로 위로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설리의 말처럼 외모 이야기는 자주 평가로 이어지고, 칭찬할 의도였더라도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 대상이라는 권력관계를 담고 있다. 미디어가 제시하는 획일적이고 비현실적인 기준에 따라 ‘정상적’인 외모가 정해진다. 여기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은 배제하고, 맞는 사람은 지나치게 높이 평가한다. 어느 쪽이든 평가당하는 사람은 그 평가에 갇혀 동등한 인격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게다가 이 권력의 낙차는 평가받는 쪽이 여성, 취업준비생, 비정규직, 어린이, 장애인, 혼혈인, 이주민 같은 약자일수록 더 크게 작용한다. 알바노조가 2017년 여성 아르바이트생 49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무려 98%가 일하면서 외모 품평을 들었다고 답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일주일간 외모 이야기 하지 않기에 도전해보길 권한다. 우리 사회의 외모 지상주의가 이런 개별적인 시도로 쉬이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자신만의 대안을 찾아보는 작은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악플의 밤>에서 설리는 외모 이야기를 할 때 평가 대신 자신이 발견한 것에 대해서만 말하자고 제안했다. ‘흰옷을 입었다’ ‘보조개가 있다’ 식으로 사실에 대해서만 말하고 무엇이 낫다, 못하다 하는 가치 평가를 넣지 말자는 의미다. 내게도 대화 화제를 돌리는 나름의 전략이 있다. “딸이 고시 공부를 시작하고 살이 쪘다”라는 친척에게 “아픈 데는 없죠? 공부하려면 건강이 제일이죠”라고 신체의 외형 대신 기능으로 기준을 바꿔서 대답해준다. “비율이 좋아서 옷발이 잘 받는다” 대신 “색채 감각이 좋다”라고 그 사람의 타고난 외모 대신 열심히 길렀을 안목을 칭찬한다.  

대부분의 현실에서 ‘사이다’ 같은 정답은 없다. 위에 언급한 전략도 장단점이 있으니(건강을 최고의 기준으로 말해버리면 장애나 질병이 있는 사람을 소외시킬 수 있다), 상황과 상대에 따라 여러 전략을 시험할 일이다. 목표는 단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은연중에 얼마나 외모에 집착했는가를 깨닫는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놓쳤던 주변 사람들의 성취나 장점을 발견하는 연습을 하는 일이다. 이 연습이 된 사람만이 자기 자신도 온전히 긍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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