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1일 아침, 11년간 프랑스에서 존엄사 논란을 일으켰던 뱅상 랑베르가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최고재판소인 파기원(Cour de Cassation)의 최종 판결에 따라 랭스 대학병원에서 영양 및 수분 공급을 중단한 지 9일 만이었다.

평범한 가정의 아버지였던 그는 존엄사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나아가 종교계까지 가세하며 그의 존엄사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거웠다. 지난 5월20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와 관련해 “신의 선물인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야 한다”라고 트위터에 썼다. 7월11일 그가 숨지기 직전까지도 파리 생쉴피스 성당 앞에는 ‘뱅상 랑베르를 위한 묵상’이라는 팻말을 든 가톨릭 신자들이 그의 치료 재개를 요구했다.

지난해 4월 의료진은 뱅상 랑베르의 아내 라셸 랑베르, 형제자매 6명과 합의 과정을 거쳐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했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인 뱅상의 부모 피에르 랑베르와 비비안 랑베르는 치료 중단 반대 소송을 냈다. 지난 1월 지방 행정법원은 치료 중단 인정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부모는 유엔 장애인권익위원회에 제소했다. 유엔은 지난 5월4일 프랑스에 치료 중단 시행을 미룰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5월15일 파리 행정법원은 유엔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연명치료를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6월28일 프랑스 최고법원인 파기원이 이 결정을 파기했다.
 

ⓒEPA7월10일 파리 생쉴피스 성당 앞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뱅상 랑베르를 위한 묵상’이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올해 최종 결정이 나오기까지 법적인 판단도 엎치락뒤치락했다. 2008년 7월 당시 32세로 신경정신과 간호사였던 뱅상은 아내 라셸과의 사이에서 딸을 얻었다. 그해 9월29일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두개골 손상을 입은 뱅상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샬롱앙샹파뉴 지역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그는 사지마비 상태로 눈을 깜빡이거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최소한의 의식 상태’라는 판정을 받았다.

2013년부터 시작된 법적 소송

결국 2013년 4월10일 의료진은 당시 상황을 프랑스 공중보건법 1110-5조에 따라 ‘치료 집착’ 상태로 보았다. 즉,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하기 위한 무의미한 치료 상태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의료진은 랑베르에게 영양과 수분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다. 2002년 제정된 환자권리법과 2005년 제정된 레오네티법은 일부 ‘소극적 안락사’만 허용한다. 환자권리법에 따르면 의사는 무의미한 치료 행위를 중단할 수 있다. 레오네티법에 따라 일부 질병의 말기 환자가 의사표현을 하는 상태에서 의사의 치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 또한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연명치료 중단 동의 여부 등을 담은 ‘사전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으며, 의식이 없을 경우에 대비해 자기 의견을 대신할 보호자를 지정할 수 있다.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에는 가족과 의료진이 참여한 ‘합의 과정’을 통해 치료 중단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지난해 4월 의료진의 연명치료 중단 결정도 바로 이 합의 과정을 거친 것이었다.
 

ⓒEPA2013년 7월 병상에 누워 있는 뱅상 랑베르와 그의 어머니 비비안 랑베르.

2013년 4월부터 지난한 법적 소송이 반복되었다. 프랑스 법원뿐 아니라 유럽 법원에까지 소송이 번졌다. 2013년 4월 의료진은 아내 라셸 랑베르와 합의 과정을 거쳐 1차 치료 중단을 결정했다. 뱅상의 부모에게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부모는 지역 행정법원에 병원을 제소했다. 법원은 부인 외의 가족과 협의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부모 손을 들어주었다. 뱅상에게 영양과 수분 공급 재개를 명령한 것이다. 당시 어머니 비비안 랑베르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들은 죽지 않길 원한다고 확신한다. (치료 재개 후) 아들의 얼굴이 웃는 모습이었다. 아직 희망이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아내 라셸은 “뱅상의 부모는 1년에 서너 차례 아들을 보러 왔을 뿐이다. 현실을 마주하지 않는 사람들은 환상을 갖게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라셸은 “2007년 뱅상이 ‘의존적인 상태에 처한다면 침대에 붙들려 있는 것보다 죽는 걸 선호한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뱅상이 직접 글로 남기지 않았고 위임자를 선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밝혔다는 증거로 쓰이지는 못했다.

2013년 8월 병원은 다시 한번 뱅상 랑베르의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재차 합의 과정을 거치기로 한 것이다. 그해 12월 의료진과 뱅상의 형제자매 6명, 그리고 아내와 협의하여 다시 치료 중단이 결정됐다. 부모는 이번에도 소송으로 대응했다. 2014년 1월 지방법원은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무의미하거나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게 아니다”라며 치료 중단 결정에 제동을 걸었다. 법원이 의료기관의 의학적 소견을 직접 반박하는 이례적인 판결이었다. 뱅상의 아내는 결국 프랑스 최고 행정재판소인 콩세유데타에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소했다. 2014년 6월 콩세유데타는 병원의 결정이 합법이라는 판결을 냈다.

연명치료 중단에 반대하는 부모는 유럽인권법원(CEDH)으로 이 사건을 가져갔다. 유럽인권법원은 회원국에서 인권침해가 이루어졌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국가에 배상 판결을 내릴 수 있다. 부모는 병원의 결정이 유럽인권협약 제2조(생명권)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5년 6월, 유럽인권법원은 콩세유데타의 치료 중단 판결이 적합하다며 생명권 위반 사항이 없다고 판결했다.

‘뱅상 랑베르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숨진 7월11일 〈르피가로〉는 ‘말기 환자 의료의 상징이 된 뱅상 랑베르의 비극’이라는 기사를, 〈르푸앵〉은 ‘‘하나의 사건’이 되어버린 뱅상 랑베르의 죽음’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밝히는 사람도 늘었다. 〈프랑스앵포〉는 “예기치 못한 죽음에 대비하는 ‘사전의향서’ 작성을 위해 공식 사이트를 방문한 사람이 한 달 만에 20배 증가했다”라고 보도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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