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서울대 서어서문학과의 한 대학원생이 지도 교수를 검찰에 고소했다. 해당 교수는 2015년과 2017년, 몇 차례에 걸쳐 대학원생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이 사건이 2018년 7월 서울대 인권센터에 접수되었는데도 정직 3개월 권고라는 가벼운 처분으로 끝났다는 점이다. 이후 해당 교수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두 차례나 열렸지만 어떠한 징계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 피해자 처지에서는 두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지도 교수-지도 제자라는 특수한 관계는 그것이 개인의 성품에 힘입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별 지장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비극으로 종결되기 쉽다. 위계적으로 상위에 있는 교수가 하위에 있는 대학원생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권위를 남용했을 때, 피해자인 대학원생은 최소 수년간 쌓아온 학문적 경력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구할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특히 서어서문학과처럼 좁은 전공 영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인권침해” 운운하는 교수님들에게 묻는다  

이 사건에서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해당 학과 소속 교수들의 대응이다. 7월2일,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와 ‘서울대 A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가해 교수의 연구실을 점거하고 학생 자치공간을 선언한 바 있다. 대학 측에 가해 교수의 파면을 요구하고 성추행과 같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교수에게는 돌아올 곳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에 해당 학과 교수진은 가해 교수의 연구실 앞에 입장문을 게시해, “학생들이 잠금장치를 부수고 연구실을 점거한 사태에 대해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인데도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교수 연구실을 점거하는 것은 반지성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행동”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학생대표들의 활동이 학내 다른 구성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상황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해성


이 입장문을 작성한 교수들에게 묻고 싶다. 학생들이 가해 교수의 연구실을 점거함으로써 침해된 학내 다른 구성원들의 인권이 무엇인가? 만약 연구실 점거로 인해 침해당한 어떤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학생대표들이 지키고자 했던 인권과 등치 가능한 것인가? “학생들의 점거로 서어서문학과 교수와 강사, 대학원생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며 “교육기관으로서 원칙과 규범을 지키기 위해 이 상황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라고 경고했는데, 정작 교육자로서 원칙과 규범을 어긴 것은 누구인가? 연구실 점거가 반지성적 행동이라면 지도 제자에 대한 지속적인 성폭력은 대체 어떤 수사로 형용될 수 있을까?

내가 대학에 입학한 2002년은 월드컵 축구로 뜨거웠던 해이기도 하지만, ‘학원 자주화 투쟁’의 끝물이기도 했다. 그해, 해맑은 1학년 새내기였던 나는 공짜 막걸리에 이끌려 선배들과 함께 본관 총장실을 점거했다. 경첩의 나사를 풀어 문을 뜯어내고 총장실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나를 매혹시킨 것은 등록금 인하나 학원 자주화 같은 구호들보다도, 정당한 이유만 있다면 총장실이라는 높은 분들의 공간을 학생들이 점유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학생들이 중앙 현관을 이용하는 것조차 금기시했던 초·중·고등학교와는 달리, 대학이라는 곳이 진정으로 지성적이고 민주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성추행 사건이 지성적으로, 원칙과 규범에 맞게 해결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연구실을 점거한 학생대표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에어컨은 잘 나오는지, 간식거리는 풍족한지, 날벌레가 들끓어 잠을 설치지는 않는지 잘 살펴주시길 바란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꿔야 하오.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 도대체 누가 미친 거요?”(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중에서)

기자명 홍덕구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