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ị ơi Chị(찌 어이 찌).” 7월10일 경기 수원시 지동에 위치한 수원시외국인복지센터 빌딩을 나오는 안명애씨(42)에게 하미 씨(25)가 소리쳤다. 베트남어로 언니를 뜻하는 ‘Chị(찌)’는 수원에 거주하는 베트남 이주 여성들이 안씨를 부르는 호칭이다. 수원시외국인복지센터 베트남 상담가로 일하는 안씨는 점심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주로 집에서 지내는 베트남 이주 여성들을 만나 함께 식사하며 안부를 묻는다.

안씨는 베트남 하이퐁에서 미용사로 일했다. 당시만 해도 자신이 국제결혼 당사자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애초 결혼할 계획이 없었다. 한국 남성에 대해서도 유행하는 한국 드라마로 아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친구를 통해 베트남에 여행 온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2007년 5월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린 안씨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정착했다.

예상보다 답답한 하루가 이어졌다. 지방에서 일하는 남편은 주말에만 집에 왔다. 혼자 고립되는 느낌이 들었던 안씨는 수원시외국인복지센터에서 베트남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실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센터로 갔다. 한국어 수업과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남편에게는 언어와 문화 차이가 좁혀지면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남편은 안씨에게 재정 지원까지 약속하며 적극 응원해주었다. 2010년에는 아예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30년 넘게 ‘부티투히엔’으로 살던 그는 이제 ‘한국인 안명애’로 산다.
 

ⓒ시사IN 신선영안명애씨(가운데)가 자신이 담당하는 베트남 전통무용 프로그램에 참여한 베트남 이주 여성들의 연습을 도와주고 있다.

안씨는 2012년부터 수원시외국인복지센터 파트타임 상담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2017년 1월에는 상담팀 정식 직원이 되었다.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고 적합한 정부 기관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연결해준다. 상담 중 대다수는 이주노동자 임금 체불과 관련된 내용이지만, 안씨가 가장 신경 쓰는 문제는 결혼 이주 여성의 고충에 대한 상담이다.

시어머니의 언어폭력과 감금, 무책임한 남편에게서 도망친 스무 살 베트남 이주 여성 A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늦은 밤 안씨의 집으로 대피하기를 반복하다 결국 결혼 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A씨가 떠난 자리는 또 다른 베트남 여성으로 채워졌다. A의 전남편은 결혼 중개업소가 1년 안에 이혼할 경우 ‘무료로’ 다른 여성을 소개해준다는 조항에 따라 재혼했다.
 

ⓒ시사IN 신선영안명애씨가 점심 시간에 베트남 이주 여성들의 고민을 함께 나눈 뒤 헤어지고 있다
ⓒ시사IN 신선영전화 상담을 하는 안씨.
ⓒ시사IN 신선영최근 벌어진 ‘베트남 이주 여성 폭력’ 사건과 관련해 베트남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는 모습.

최근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을 보며 안씨는 한동안 잠을 설쳤다. 베트남 현지 신문에 기사가 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안씨는 이번 사건이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고 있는 많은 문제 중 일부라고 생각한다. “한국 남성들이 결혼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여성을 마치 물건처럼 다루는 결혼 중개업소도 사라져야 해요. 법무부의 국제결혼 대상자 3시간 의무 교육 역시 너무 단편적입니다.”

안씨는 8월부터 한국인 남편들을 대상으로 베트남어 교실을 열 예정이다. 한국인 남편이 아내의 나라에 대해 알아야 결혼 이주 여성의 적응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결혼 이주 여성이 주로 이용하던 ‘베트남 전통무용 교실’ 같은 프로그램과 함께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바쁜 하루를 보낸 안씨가 퇴근 후 장을 봐서 40분 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8시가 넘어 태권도 수업을 마친 두 아들이 돌아왔다. 김민재군(12)과 민우군(10)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씨가 김치찌개를 끓이다 말고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반가움도 잠시, 안씨의 휴대전화가 식탁 위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안씨는 상담 수첩을 얼른 꺼내들고 의자에 앉았다.

 

ⓒ시사IN 신선영2007년 5월 베트남에서 한국인과 결혼한 안명애씨는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안씨는 2010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기자명 신선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ss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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