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히트상품이다. 2017년 8월부터 접수하기 시작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500일 동안 청원 47만 건, 동의 5600만 건을 기록했다. 청원 동의가 20만명이 넘으면 반드시 청와대가 답변을 내놓도록 하면서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1월24일까지 청와대는 총 73건 청원에 대해 답변했다. 특히 이슈가 컸거나 중요한 의미가 담겼던 청원 32건을 아래 표에 정리했다.

청와대에서 국민청원을 담당하는 조직은 국민소통수석실 산하 디지털소통센터다. 정혜승 디지털소통센터장은 국민청원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이 제도를 운영해온 책임자다. 500일 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후 정비에 들어간 국민청원 제도의 의의와 한계를 정혜승 센터장에게 물었다. 1월22일 청와대에서 90분간 진행했다.

ⓒ시사IN 조남진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위)은 70만명을
넘긴 난민 반대 청원을 보며 좀 더 겸허하게
국민의 뜻을 물어야겠다고 느꼈다.


국민청원이 답변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우선 관련 비서관실에 회의를 요청한다. 국정상황실, 법무비서관실, 정무비서관실과 자주 회의가 생긴다. 정부 부처에도 협조를 구한다. 청원인 요청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이 문제가 왜 불거졌는지, 관련법은 어떤 게 있는지, 연관된 다른 문제는 없는지 청와대와 부처들이 아주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다면 앞으로 단계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본다.

20만명 기준은 어떻게 정했나?

미국 백악관이 10만명을 기준으로 한다. 다른 나라는 5만명도 있고 그렇더라. 마지막에는 10만명이냐 20만명이냐로 압축됐는데, 윤영찬 당시 홍보수석이 “일단 정하면 내리는 건 가능해도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라고 20만명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 온라인 화력이 매우 막강해서 거의 1주일에 한 개꼴로 답변을 만들고 있다. 엄청난 중노동이다. 요즘은 “왜 50만명으로 안 했냐”라는 원망도 듣는다(웃음).

반복해서 기준을 넘기는 청원도 있더라.

소년법 관련 청원은 네 번이나 들어왔다. 어떤 사회문제가 있을 때, 언론은 기획기사 한번 쓰고 정부는 대책 한번 발표하고 나면 다시 건드리기가 애매하다. 우리 사회가 같은 사안을 반복적으로, 질기게 보도록 하는 구조가 약하다. 그런데 국민청원은 다르다. 답변을 드렸던 문제도 계속 다시 올라온다. 이러면 우리는 뭐 더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법무부·교육부·여성가족부… 계속 뒤져보게 된다. 국민청원은 같은 사안을 계속 추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떻게 답변해도 오해받기가 쉬운 일인데?

이른바 ‘곰탕집 사건’(성추행 피의자 부인이 올린 억울함 호소 청원)의 경우, 1심 재판 결과가 억울하다는 청원이었다. 이건 재판 중인 사안이라 답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 사건 이전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준 정형식 판사 특별감사 청원 선례도 있었다. 그래서 재판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답했는데, 답이 부실하다고 분노한 분들이 많았다. 남성의 피해를 호소하면 부실하게 답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포항 약국 칼부림 사건’은 14만명 청원이지만,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과 묶어 답변했다. 둘 다 심신미약 감경 사유 반대 청원이다. 기준을 넘긴 청원에 답변할 때, 기준 이하이지만 취지가 유사한 청원을 묶어 답하기도 한다. 그런데 포항 약국 사건이 여자 약사에 대한 남자의 폭력 행사여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젠더 이슈로 논쟁이 붙어 있더라. 청와대가 여성 인권 문제는 기준도 어겨가며 답변한다고 공격받았다. 그걸 듣고 어안이 벙벙해서 “그게 왜 젠더 문제야?”라고 되물었다.

지난해 여성 인권 문제가 뜨거웠다.

우리 사회가 막연히 알던 것보다 여성들이 디지털 성범죄로 겪는 피해가 훨씬 컸다. ‘몰카’가 추적은 되는지, 소위 ‘리벤지 포르노’가 돌아다니는데 대처를 어떻게 하면 좋은지, 이런 정보가 1년 사이에 제법 알려졌다. 이제 경찰도 디지털 성범죄는 인간 존엄을 해치는 범죄라고 인식한다. 지난해 국민청원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여성’ ‘학생’ ‘아기’ 이런 키워드가 많이 나왔다. 이런 약자들의 이슈에서 국민 체감과 주류 공론장의 결이 다르다고 느꼈다. 국민청원이라는 곳에서 약자들이 똘똘 뭉쳐서 “우리 좀 살려주세요” 외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가 그래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니까.

ⓒ연합뉴스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을 엄벌해달라는 청원은 100만명이 넘었다.
반작용으로 ‘남성 인권’을 주장하는 청원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고죄를 강화해달라는 청원도 그런 맥락이었다.

무고죄에 대해서는, 미투 문제가 현안이 되면서, 무고죄가 그런 목소리를 옭아맬 수 있다는 지적이 오히려 더 많았다. 법무부가 수사 가이드라인을 바꾼 것도 그런 지적에 공감해서라고 본다. 남성 인권에 잣대를 따로 대는 건 절대 아니다.

“허허 재밌는 이슈네요”라는 표현을 아나?

처음 들었다.

2017년 9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 징병 청원’을 놓고 “다 재미있는 이슈 같아요”라고 말한 것이, 뒤늦게 남초 커뮤니티에서 인터넷 밈(유행 코드)이 되었다. 대통령이 여성 징병 청원을 농담거리 삼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남성들의 관심사가 뭔지는 국민소통수석실에서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군복무 제도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시사IN 신선영지난해 6월 열린 난민 수용 반대 집회.
삼권분립 원칙을 넘어서는 청원도 많은데?

이준웅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과)가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청원을 놓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시민적 학습 과정에 있다. ‘대통령이 못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다.” ‘나랏님’이 다 할 수 없고, 오히려 국민이 뜻을 모으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이 양방향으로 시민적 학습이 쌓이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자주 강조한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왜 그러한지 투명하게 국민께 설명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문제 해결 과정이라고. 다만 삼권분립을 넘어서는 청원 자체를 금지할 생각은 없다. 국민이 어떤 사안에 관심이 있고 분노한다는 의사 표현 자체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냥 답변이 부실하다고 우리가 욕을 먹더라도.

삼권분립 원칙이라고는 해도 사법부 재판에 개입하는 것과 입법 청원은 다른데?

맞다. 둘은 구분해야 한다. 사법부 판결을 흔들거나 법관 인사에 개입할 수는 없다. 또, 입법 청원과 입법부 관련 청원도 다르다. 국회의원 세비를 깎아달라는 청원은 우리 권한이 아니다. 반면 입법 청원은 삼권분립 원칙을 넘어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 부처가 내놓는 대책은 대부분 입법 추진이 포함되어 있다. 국민청원에서 결국 입법으로 이어진 사례도 제법 있다.

국민청원이 엄벌주의·혹형주의 성향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있다.

마냥 엄벌주의라고 보지는 않는다. 사회가 선진화되면서 마인드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술 마시고 운전하거나 사람을 때리다가 심하면 죽이기도 한다. 이런 것도 술김에 우발적인 일이라고 관대했던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용납이 안 된다. 선진화되었다는 건 사람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사람 가치가 올랐으니 그걸 훼손하는 행위에 더 엄격해진다. 청원이 들어왔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사형제를 도입하거나 조두순 만기출소를 막았다면 엄벌주의를 걱정하는 게 맞는데, 문재인 정부의 철학이나 법치국가 원칙에 맞지 않게 처리한 적은 없다.

난민 반대 청원은 70만명을 넘겼다. 청원을 받아들었을 때 어땠나?

어… 겸허해지더라. 우리가 모두 한 방향을 보고 있겠구나 지레짐작하거나, 정부가 뜻이 이러니까 좋은 거니까 다 같이 가면 되겠구나 할 게 아니라, 조금 더 겸허하게 국민의 뜻을 물어야겠다고 느꼈다. 그다음에, 국민의 뜻도 한 가지가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좀 더 진지한 토론을 주고받고 공론을 성숙시켜 나가는 과정도 필요한데, 이 이슈가 우리 사회에 너무 거칠게 한 번에 휙 왔다. 냉정하게 보면 우리는 글로벌 기준에서 난민 수용률이 굉장히 낮은 편이다. 특정 종교단체에서 가짜 뉴스를 집단적으로 유포시키며 잘못된 정보로 오해와 불안도 있었다면, 이런 부분은 정부의 과제다.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겸허해진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뜻이 다르다는 걸 확인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이것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하는 문제이니 정부가 할 일이 매우 많구나, 정말 턱도 없이 많구나 느꼈다고 할까. 제가 정말 겸허해졌던 청원이다.

정치의 고전적이고 중요한 문제, 이를테면 균형재정과 확장재정 중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북한을 압박할 것인가 유화책을 쓸 것인가 등의 문제는 국민청원으로 다루기 어렵다.

그렇다. 우리는 국민청원이 기존 정치의 기능을 대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질문은 여전히 정당과 정부와 언론의 중요한 과제다. 다만 그런 곳에서 다루는 의제와, 국민이 실시간으로 관심을 갖고 펄떡거리는 의제가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 분노와 공감의 메시지가 공론장에 모이고 처리 과정이 눈으로 보인다면, 시민도 참여의 효능감과 정부의 효능감을 느끼는 계기가 된다고 믿는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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