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이다. 30년 전 문송면·원진 노동자 산업재해(산재) 사망 사건을 계기로 노동계가 요구해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제도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이 제도를 모르는 노동자가 많다. 2007년 황상기씨가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인 딸 유미씨의 직업병을 의심한 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를 만나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필자가 만난 어느 50대 비정규직 용접사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찾아왔다. 그는 천식, 만성 폐쇄성폐질환, 폐섬유증을 이어서 진단받고 산재 신청을 했다. 폐 기능이 보통 사람의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중간중간 기침이 심해서 뿌리는 약을 투여하며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림 윤현지

그는 약 30년간 여러 현장에서 용접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공사 현장에서 용접사로 일할 땐 모범직원 표창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용접할 물량이 200~ 300개씩 쌓여 있어도 “싸악~ 해치우곤” 해서 받은 종잇조각이다. 피복아크 용접, 매그 용접, 아르곤 용접 등 다양한 용접을 했고, 이 과정에서 용접 퓸(fume)과 중금속에 노출되었다. 용접 퓸과 중금속에 장기간 노출되면 만성 폐쇄성폐질환이, 고농도로 지속 노출되면 폐섬유증이 생길 수 있다. 용접 과정에서 생기는 중금속 성분 중 크롬은 천식을 유발할 수 있다.

보통 한 달에 35~40공수의 수당을 받았다. 하루 9시간 작업에 대한 일당을 1공수라 한다. 이는 월 25일 하루 9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72~126시간, 즉 하루 평균 12~14시간을 일한 셈이다. 게다가 공사 기일을 맞추느라 휴일 없이 일할 때도 많았다. 거의 밀폐된 공간에서 4~5시간을 연속해 일하기도 했다. 유조차의 1200 ~3000배럴 크기 탱크를 100대 정도 작업했을 때는 약 60㎝ 직경의 구멍이 유일한 환기장치였고, 어떤 보호구도 지급받지 못했다.

이런 과거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찾아 현재 시점에서 용접 퓸과 중금속 농도를 측정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당시 건설업은 작업환경 측정이 시행되지 않아 기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진술을 토대로 유사 작업의 용접 퓸에 관련된 문헌을 찾아 노출 수준을 추정하여 질병의 업무 관련성에 관한 의견서를 작성했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알 권리를 보장하는 대책이 필요

그는 긴 면담 끝에 이렇게 말했다. “안 아프면 2~3년만 옛날같이 일해보고 싶어요. 용접해서 만들어놓고 나면 뿌듯하죠. 그땐 재미있었어요. ‘야, 이거 내가 했다’ 하고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후회가 돼요. 아프고 나니까 모르고 그냥 작업한 게 후회돼요.” 일 때문에 아파서 필자를 만나러 온 노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내가 알았더라면 그렇게 일을 했을까요?” 일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직업병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의 산재 신청이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요”라고 천천히 대답했다. 숨 쉬기 어려운 고통을 가지고 남은 긴 세월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먹먹했다. 그가 작업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았더라면 직업병으로 고통받지 않았으리라.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로 하여금 월 2시간의 안전보건 교육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도 필자는 진료실에서 건강진단을 하며 용접 작업이 자신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건설 현장 노동자들을 만난다. 그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게 알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기자명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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