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가을이 스윽 다가오고 있다. 경험에 따르면 가을에는 두 가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소라, 그리고 장필순이다. 마침 장필순이 새 앨범 〈Soony Eight:소길花〉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이런 이유로 음악 듣는 이에게 축복이다. 친한 후배 평론가는 이 음반을 두고 이렇게 톡을 보냈다. “올해의 앨범에 ‘장필’까지 쓴 거나 마찬가지.”
2018년이 넉 달이나 남았기에 확언할 순 없지만, 나는 ‘장필수’까지 썼다고 본다. ‘니은’ 하나 남은 셈인데 이 니은을 끝내 쓰지 못하게 할 작품이 나올지 안 나올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감동적인 앨범에 대해 고작 ‘쓰는 것’일 뿐이다. 당신이 이 글을 보고 장필순 8집을 찾아 듣는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소개 글을 먼저 옮겨 적어본다. 음악평론가 신현준은 작품을 소개하면서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면서 흘러가는 일상의 리듬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다. 과연,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좀 더 세밀하게 적어보려 한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면서 흘러가는 일상의 아름다운 리듬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장필순 8집은 특별한 순간을 선사해줄 것이다. 흡사 일출의 풍경을 음악으로 전이한 듯한 첫 곡 ‘아침을 맞으러’를 들어보라. 정말이지 이런 음악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백기를 드는 일뿐이다.
오래전부터 장필순은 제주에 머물며 그곳에서 음악을 창작해왔다. 지난 7집 〈Soony Seven〉(2013)과 이 앨범은 그런 삶의 바탕 위에서 쓰인 노래들을 담고 있다.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8집은 솔로작이라기보다는 그와 주변 공동체가 함께 만든 결과물이다. 이것은 공간을 넘어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에 가깝다. 제주에 거주하는 지인만이 아니라 잠시 들른 뮤지션들까지 기꺼이 참여했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이런 앨범을 명반이라 부른다
흥미로운 점 하나. 8집 역시 7집과 마찬가지로 여러 곡에서 전자음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꽤 최신의 사운드인 셈이다. 그러나 곡들이 품고 있는 서정미는 우리가 최신이라 여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즉,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나 ‘헬리콥터’ 같은 익숙한 명곡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그는 어떤 스타일의 곡을 부르든 목소리로 자기 음악의 서명을 완성해낸다. 몽환적인 전자음이 돋보이는 ‘그림’, 포크 밴드 ‘어떤날’의 원곡을 재해석한 ‘그런 날에는’, 기타 연주가 주를 이루는 ‘저녁 바다’ 등이 증명하듯 거기에는 공통으로 흐르는 정서가 존재한다. ‘집’의 경우, 피아노와 장필순의 보컬만으로 그 정서가 배어 있는 세계 하나를 완성해낸다.
누군가는 그 정서를 무위의 음악이라 하고, 누군가는 제주의 자연을 닮은 음악이라 정의한다. 그중에서도 ‘저녁 바다’의 다음 가사는 어떤가. “채우고 또 채우려 했었던 아쉬움을/ 비우고 또 비우려 했었던/ 그 기나긴 슬픔의 시간.” 이런 노랫말을 지닌 음악 앞에서 도시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는 우리들은 이상적인 삶에 대해 동경을 품게 마련이다. 그러나 장필순 8집은 바른 생활 지침서 따위가 아니다. 그러니까, 그는 그저 은은하면서도 완강하게 자기가 선택한 삶을 노래할 뿐이다. 이렇듯 가끔씩 우리는 삶과 (삶에 대한) 사랑과 예술이 함께 도모된 음악을 만나곤 한다. 이런 음악들을 한데 담아낸 앨범을 사람들은 보통 명반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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