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나는 가수다〉 소동을 지켜보다가 “우리도 ‘너는 기자냐’ 이벤트나 만들어볼까?” 하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규칙은 간단하다. 기자들이 독자 심사단을 앞에 두고 ‘기사 배틀’을 벌인다. 단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이종(異種) 영역의 기사로 승부해야 한다. 이를테면 정치부 기자는 피비린내 나는 살인사건 기사를 쓰고, 사회부 기자는 트렌디한 패션 기사를 쓰는 식이다.

지금 장난하냐고 뭐라 하시면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최근 벌어진 상황이 이해 난망이었다. 물론 분노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다. 나 또한 이소라·박정현의 열창에 깜박 넋을 잃었던 한 사람이다. 그래서 담당 PD가 범한 순간의 오판이 더 안타까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가수다〉에 쏟아지는 비판의 과잉이 불편해졌다. 언제부터 예능 프로그램이 ‘공정 사회’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됐단 말인가.

우리 사회가 이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동안에도 ‘공정’은 곳곳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 정부 들어 유독 공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던 공권력은 자본주의연구회라는 대학생 학술 단체에 해묵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려다가 이게 여의치 않자 일반 교통방해죄까지 덮어씌워 이들 일부를 잡아들였다. ‘공평 과세’를 앞세워온 국세청은 스스로 불공정한 뒷거래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휘말렸다. 국세청 직원들이 해외 도피 중인 전 청장을 위해 대기업들로부터 ‘자문료’ 걷는 일을 수발했다는 것만도 기막힐 일인데, 그 대기업들이 당시 세무조사를 받는 등 국세청과 껄끄러운 관계였다는 사실이 추가로 알려졌다.

그뿐인가. 돌이켜보면 고위직 인사에서 입학사정관 제도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간 이 정부가 공정한 룰을 세우겠다며 벌인 일마다 특혜 시비 내지 현대판 음서제 논란의 온상이 되곤 했다. 그러니 예능 프로그램에서라도 공정한 룰이 제대로 관철되기 바라는 열망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한 탤런트가 해병대에 입대한다고 온 나라가 환호작약하는 거나, 〈나는 가수다〉가 하루아침에 만신창이가 되는 거나 저변에 깔린 민심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조금은 서글퍼진다. 〈나는 가수다〉 담당 PD를 하차시킨 방송사 사장이 사회 비판에 앞장서온 프로그램들을 폐지시키고, 제작진을 이산가족 만드는 동안 우리 대다수는 별일 없이 살아왔다. 국가보안법은 머나먼 남 일이고, 국세청은 본래 그런 종자들이니 관심 밖이라는 식이다. 우리는 어쩌다 만만한 것에만 분노하게 된 것일까.

기자명 김은남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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