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5일 오후 1시, 강원도 삼척시청 앞에서는 작은 소란이 일었다. 삼척 핵발전소 유치 백지화위원회(백지화위원회)의 기자회견을 앞두고 백지화위원회와 시 공무원 간에 고성이 오갔다. 20분 정도 승강이가 오간 뒤, 백지화위원회는 시청 앞 계단으로 자리를 옮겨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은 김용하 백지화위원회 공동대표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이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핵발전소가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신규 원전 부지 선정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삼척시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부지 후보로 신청해 경북 영덕군·울진군과 경쟁 중이다.
 

ⓒ시사IN 백승기삼척시는 부지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인 소방방재산업단지(위)도 원전 후보지에 포함시켰다.

삼척은 원자력발전 시설과 관련해 이미 두 차례 홍역을 앓았다. 원자력발전소 건설 반대를 주창하며 1993년부터 반핵운동을 벌인 삼척 주민들은 1999년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당시 뜨거웠던 삼척시의 반핵운동에는 그린피스도 함께했다. 변형철 근덕면원전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는 “그때는 주민들이 똘똘 뭉쳐 원전을 막아냈다. 상여를 메고 원전 반대를 외쳤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후원으로 일본 원전 견학을 다녀온 가게 주인들을 대상으로 불매운동도 했다”라고 회상했다. 2005년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방폐장) 건립 추진도 시의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백지화위원회 “유치 찬성 비율 96.9%는 조작”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분위기는 급변했다. 지난 2월 삼척시는 한수원에 원전 유치 신청서를 냈다. 삼척시 곳곳에는 원전 찬성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원전을 반대하는 현수막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삼척시 원자력산업유치단의 한 공무원은 “1980년대 인구 30만이던 삼척이 지금은 7만2000명 수준이다. 원전 건설을 막아내면서 삼척시는 동굴 개발 등 관광산업에 힘을 썼으나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다시 시 경제 발전에는 국책사업이 좋다는 여론이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근덕면원전반대투쟁위원회의 한 간부도 “체르노빌 사건 등으로 원전에 대한 경각심이 강했던 과거에 비해 여론이 변한 건 맞다. 경제 침체가 한몫을 한 듯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백승기3월 중순 삼척시 곳곳에 원전 유치를 찬성·반대하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원전 후보지 신청 이후 적극 유치전에 뛰어든 삼척시는 최근 ‘삼척 시민 96.9%가 원전 건설을 찬성한다’라는 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삼척시 원자력유치협의회(유치협의회) 명의로 된 자료였다. 이에 맞서 백지화위원회는 아무리 원전 유치 찬성 비율이 늘었다 하더라도 96.9%에 달하는 찬성 여론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대수 삼척시장이 원전 유치에 앞장서면서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서명에 공무원까지 동원했다는 얘기다. 삼척시 근덕면의 한 이장은 “이장·통장에게 서명 받아오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는데, 일부 몇 리에서 서명을 내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이틀 정도 후에 해당 지역 출신 공무원이 각 지역으로 가서 서명을 받았다. ‘나중에 투표를 하게 되면 반대하고, 오늘은 내 입장 좀 봐달라’ 이런 식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나와서 다 서명했다”라고 말했다.

서명에 공무원 동원령을 내린 점을 두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강원지역본부 삼척시 지부는 ‘핵발전소 유치 서명운동에 공무원, 리통장 동원 즉각 중단하라’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재욱 삼척시원자력유치협의회 상임대표는 “여론조사는 공정하게 확인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 현수막은 분위기가 다들 다는 분위기라 안 달 사람들이 달았을 수는 있어도 어떤 외압도 없다”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자 삼척 민심에 미묘한 동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삼척 시청 앞에서 만난 이 아무개씨(54·주부)는 “지진이 나고 방사능 유출 이야기가 뉴스에 계속 나오니 걱정이 많이 된다. 만에 하나 있을 위험의 대가가 너무 크다”라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백지화위원회 또한 반대 운동의 고삐를 바짝 죄려 하고 있다. 박홍표 상임대표는 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다시 한번 원전의 위험성과 비경제성을 제대로 알려 지역에 원전이 들어서는 것을 막겠다고 말했다. 백지화위원회는 주민들이 자기 뜻을 밝힐 수 있도록 주민투표를 실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지진이 삼척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덕산면 오렌지카운티 요양원 가는 길목에서 만난 한 50대 인부는 “일본 지진으로 불안하긴 해도 그런 사고가 일어나면 어디든 위험하다.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원전이 들어오는 걸 반대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원전 후보 지역 덕산면의 한 마을회관에서 만난 차도화씨(72)는 “그동안 국내에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데 무슨 일 있겠나. 빨리 보상받고 자식들 있는 곳으로 이사 가야지”라고 말했다.

삼척시의 한 공무원은 “일본 지진으로 불안해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의견이 당장 반대 의견으로 연결된다고 보지 않는다. 백지화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스무 명 남짓으로 소수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팽팽히 대립하는 것처럼 보도한다”라고 주장했다. 강원도 삼척시를 비롯한 경북 울진군·영덕군의 원전 부지 심사 결과는 주민 수용성 여부 등을 검토해 다음 달에 발표한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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