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은 견뎠다. 3월11일 오후 2시45분 일본 도호쿠 지방 해저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지진에, 진앙에서 270km 떨어진 후쿠시마 제1원전의 1·2·3호기는 ‘정상적으로’ 가동을 중지했다. 4·5·6호기는 운 좋게 지진 발생 전 정기 점검을 위해 가동을 멈춰둔 상태였다. 문제는 쓰나미였다. 지진 발생 뒤 한 시간여 만에 발전소를 덮쳐 원전 내 디젤 비상 발전기 13대를 모두 망가뜨렸다. 비상 발전기는 핵분열을 멈춘 연료봉의 잔열을 제거하기 위한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꼭 필요한 장치였다.

사고 발생 당일 저녁, 일본 정부는 ‘원자력 긴급 사태’를 선언하고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다음 날(3월12일) 오후 원전 인근에서 방사능 물질인 세슘과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되고, 방사선 준위가 시간당 1.01밀리시버트(mSv/h)까지 치솟았다(우리나라 방사능 재난 발생 선포 기준이 10mSv/h이다). 급기야 제1원전 1호기가 수소 폭발을 일으켜 격납용기를 감싸는 콘크리트 격납 건물이 부서지기에 이르렀다. 이틀 뒤에는 더 강하고 다양한 핵 오염 물질이 함유된 플루토늄-우라늄 혼합 연료인 ‘목스(MOX)’를 핵 연료로 쓰는 3호기의 격납 건물도 수소 폭발로 손상되었다.
 


그래도 두께 1m가 넘는 콘크리트와 철판으로 이뤄진 격납용기가 있기에 안심해도 된다고 일본 정부는 말했다. 임시방편으로 바닷물을 길어 원자로를 식히는 동안, 국내외 전문가들은 “아무리 핵연료봉이 뜨거워진다 한들 격납용기가 훼손될 확률은 매우 희박하므로 방사능 물질 대량 유출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희박한 확률’ 또한 현실이 되었다. 3월15일 새벽 후쿠시마 제1원전 2호기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얼마 뒤 일본 정부는 “2호기 격납용기 내의 압력제어부(수증기를 물로 바꾸는 장치)에 결함이 생겼다”라고 발표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방심하던 곳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이미 가동을 중지시켜 안심했던 4·5·6호기 가운데 4호기 격납 건물 안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5·6호기의 온도도 함께 상승하고 있었다. 사용 후 수조 속에 담가놓은 폐연료봉에 냉각수의 공급이 끊겨 점차 뜨거워진 게 문제였다. 이 ‘사용후 연료봉’은 격납용기 안에 가둬놓은 것도 아니기에 방사능 유출 위험이 더 높았다. 4호기에서 다시 화재가 발생한 3월16일에는 원전 정문에서 핵분열 시 방출되는 중성자선이 검출됐다는 〈아사히신문〉 보도가 나왔다. 멈춘 줄 알았던 핵분열이 어디선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피해 규모, 체르노빌 넘어설 수도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일본 정부는 자위대 헬기와 경찰기동대 살수차를 동원해 뜨거워지는 원자로에 물을 쏟아 붓고, 원자로 내의 핵분열을 막는 붕산 지원을 세계에 요청하고, 원전 긴급 작업 시 피폭선량 한도를 2.5배나 높이면서 진화에 나섰다. 3월18일 현재 재개되고 있는 전력 복구 작업이 이들의 마지막 희망이다.

더 이상 상황이 나빠지지 않는다 해도, 이미 방사능은 상당량 유출됐다. 1·2·3호기에서 발생한 수소 폭발이 그 시작이었다. 원자로 내부 연료봉을 감싸는 피복재(지르코늄)는 온도가 높아지면서 물과 반응하면 수소를 생성한다. 그 수소가 배기관을 통해 격납용기 밖으로 새어나와 격납 건물 안에 가득차면서 수소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원자로 내부에서 생성된 수소가 폭발한 것이니, 뿜어져 나오는 물질도 방사성을 띠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노심 용융(멜트다운)이 아닌 이런 ‘방사능 증기’ 유출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NHK TV후쿠시마 제1원전 1~6호기마다 원자로 건물(위 왼쪽 그림) 다양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헬리콥터를 통한 바닷물 주입(오른쪽 맨 위) 등 냉각 작업에 나섰지만, 격납 건물이 폭발하는(오른쪽 위) 등 심각한 사태를 맞았다.

 


방사능 증기보다 더 무서운 건 사용후 연료봉에서 방출하는 방사능 물질들이다. 일본 원전 전문가 장정욱 교수(마쓰야마 대학·경제학부)는 “수조에 넣기 직전의 사용후 연료봉 옆에 사람이 있으면 20초 만에 치사량에 이르는 방사능 물질에 피폭된다. 30년 동안 물속에 보관된 이후 대기 중에 노출된 사용후 핵연료라고 해도 6분 만에 치사량에 달하는 방사능을 뿜어낸다”라고 말했다. 수조의 물이 증발해 일부가 대기에 노출됐다고 알려진 4호기의 사용후 연료봉은 4개월 전 원자로에서 수조로 옮겨졌다. 

후쿠시마 원전 피해가 여기서 그친다 해도, 이미 5등급(국제원자력기구의 원자력 사고 평가 척도)을 기록한 1979년 ‘스리마일 사건’(20쪽 상자 기사 참조)의 피해 강도를 넘어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3월15일 2호기 격납용기 파손 소식이 알려진 뒤 미국 과학국제안전보장연구소(ISIS)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0~7단계) 가운데 6 또는 7단계에 해당한다”라고 진단했다. 이석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기획부장은 “일본 정부는 4등급으로 보고했지만, 내가 보기에도 스리마일 사건은 넘었다”라고 말했다. 관건은 1986년 일어난 7등급 사고인 ‘체르노빌의 악몽’이 재현될지 여부이다. 장정욱 교수는 “6개 원자로 가운데 두 개 이상 원자로가 파손돼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면 체르노빌을 넘어서는 피해까지도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체르노빌 사건을 넘는 ‘최악의 경우’란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 핵연료봉이 스스로의 고온에 녹아내리는 ‘노심 용융’ 현상에 의해 격납용기를 뚫고 나오는 것이 첫 번째 악몽이다. 방사능 물질이 대기는 물론 땅과 바닷물에까지 닿아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악몽은 핵분열을 막는 붕소가 섞인 물이 다 말라버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핵분열 연쇄반응’이다. 이 경우에도 대량의 독성 방사능 물질이 멀리까지 확산되기 쉽다. 하지만 이은철 교수(서울대·원자핵공학과)는 “핵분열 연쇄반응은 아주 짧은 시간에 수백조 번 핵분열이 일어나는 ‘핵폭발’과는 다르며, 이런 핵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적다”라고 말했다. 이석호 기획부장은 “설령 핵분열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나라에는 시간당  0.3밀리시버트만 건너와 비교적 안전하다”라고 말했다(21쪽 상자 기사 참조).

세계인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짜게 만든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은 애초부터 문제가 많았다. 원자로 6기 가운데 5기가 제너럴일렉트릭(GE)의 ‘마크1’ 모델인데, 이 모델에 대해 1972년 미국 원자력위원회(AEC)는 이미 “폭발에 취약하며 노심 용융이 발생할 경우 방사능 누출 위험도 더 크다”라고 경고했다. 특히 이번에 수소 폭발과 노심 용융이 진행된 3호기는 기존 우라늄 연료보다 더 많은 방사능 물질을 띤 우라늄·플루토늄 혼합 연료(목스)를 써 도입 당시부터 논란이 된 ‘요주의’ 원자로이기도 하다. 또한 제1 원전 6기 모두 1970년대부터 가동돼온 ‘노후 원자로’로, 그 가운데 1호기는 지난 2월 40년 설계 수명을 마쳤음에도 추가로 10년 연장 가동에 들어갔다.

후쿠시마 원전만이 아니다. 1999년 일본 이바라키 현 도카이무라 핵연료가공회사(JOC)에서는 4등급 방사능 유출 사고가 일어나 작업자 39명이 피폭당해 직원 2명이 사망하고, 인근 주민 600여 명이 피폭되었다. 2008년에는 후쿠이 현 미하마 원전 제3호기에서 수증기 형태의 원자로 냉각수가 유출돼 4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일본 전역의 원전에서 20년간 배관 전문공으로 근무하다 ‘원전 방사능 노출 노동자 구제센터’ 대표를 지낸 히라이 노리오 씨(1997년 1월 사망)는 죽기 전 남긴 글에서 “일본 원전은 이중삼중의 ‘다중 보호’를 받고 있어서 어디에서 고장이 발생해도 확실히 멈추도록 되어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설계 단계까지의 이야기일 뿐 시공·건설 단계에선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라고 주장했다.

원전 재앙, 한국에서 일어날 수도

‘원자력’은 그간 일본 정부가 내세운 성장 동력이었다. 이번에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전  6기를 포함해, 3월11일 전까지 일본에서는 모두 54기의 원자로가 26만3071GWh의 전력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건설 중인 것이 3기, 건설 계획 중인 것도 12기에 달한다.

 

 

 

 

ⓒ시사IN 안희태국내 환경·시민단체는 3월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원전 확대 정책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2008년 10월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에서 발표한 원자력정책 제안서는 2100년까지 원자력 에너지의 공급량을 지금의 전체 10%에서 2100년 60%로 늘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6월 일본 정부는 10년 동안 경제 운영의 지침이 될 ‘신성장 전략’을 발표하며 그 전략 가운데 하나로 ‘원전 수출’을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그 ‘꿈’들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장정욱 교수는 “그간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원자력이 효율적이고 안전하다는 신화에 취해 있었다”라고 말했다. 필립 화이트 일본원자력자료정보실(CNIC)의 국제교섭담당관은 “지난 수십 년간 일본의 핵 지지자들은 핵무기와 핵(원자력) 에너지는 완전히 다르고, 원전 이외에 다른 에너지 대안이 없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세뇌시키는 작업을 해 매우 큰 성공을 거뒀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인들은 ‘후쿠시마 원전 재앙은 특별하고 한국에선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하는 핵 전문가들을 믿지 말기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원전 안전은 자연재해에 의해서만 무너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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