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슥, 드륵드륵, 탕탕…. 학교 복도를 청소하는 노동자를 담은 영상 작품 〈크랙〉(안보영)을 보고 있으면 ‘사람’보다, 사람이 일하면서 내는 ‘소리’에 더 집중하게 된다. 작가가 굳이 연출하지 않았지만, 카메라의 눈은 일상의 눈과 닮았다. 청소 노동자는 분명 눈앞에 실재하지만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청소하는 소리만 내며 여기저기를 다니는 ‘희뿌연 유령’일 뿐이다.

신성란 큐레이터(40)가 전시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을 준비하면서 느낀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시선이 바로 그랬다. 보이지만 보지 않는, 내 곁에 있지만 남 일인, 그래서 당장 눈앞에서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들, 그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시사IN 안희태

미술사를 전공하고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가운데, 2년 전부터 신씨는 평화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시각예술 전시 공간 ‘스페이스99’ 전시 기획을 맡아왔다. 그는 미술이 사회적 고통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줄곧 생각해왔다. 그래서 스페이스99 재개관 이후 처음 잡은 전시 주제가 바로 ‘비정규직 사회에 대한 긴급 보고서’이다. 김영글·나규환 등 다섯 작가들이 익숙하지만 섬뜩한 비정규 노동 현실을 은유해놓은 이 전시는 4월17일까지 이어진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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