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건 순식간이구나.’ 일본 열도를 휩쓴 지진과 쓰나미를 보며 맨 먼저 든 생각이다. 가공할 자연의 재앙에 비할 일은 아니지만 지난주 우리 사회 또한 쓰나미에 휩쓸렸다. 다시 불거진 장자연의 죽음을 필두로 덩 여인, 에리카 김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말마따나 세 여인이 정국을 흔들었다.

장자연은 잊혀진 여인이었다. 누구보다 기억되고 싶고 누구보다 빛나고 싶었을 스타 지망생 그녀는, 그러나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잊혀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기억난다. 장례 끝날 때까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데 누군가 곁에서 그랬다. “실컷 울어라. 지금 안 울고 참으면 병난다.” 나이 들며 그 말을 이해했다. 제때 제대로 애도하지 않으면 한이 된다. 산 자나 죽은 자나. 일명 왕첸첸의 편지가 진짜건 가짜건, 벌써 2년이 지난 장자연의 죽음에 사람들이 이토록 뜨겁게 다시 반응한 데는 이런 정서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애도하고 싶어도 애도할 수 없게끔 침묵과 망각을 강요당했던 기억이 우리 모두에게 화인처럼 들러붙어 있었던 것이다.

잊혀진 여인이 있는가 하면 억지로 ‘띄워진’ 여인도 있다. 현재까지 나온 증거 자료만으로는 그녀가 왜 ‘마타하리’와 동급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중국인 여인은 한국의 거대 언론에 의해 순식간에 ‘상하이판 색,계’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장자연 사건에 연루된 유력 남성들에게 그토록 철저하게 지켜졌던 무죄 추정의 원칙은 깡그리 무시됐다. 심지어 한 유력 언론은 스캔들, 백 번 양보해 기밀 유출 의혹을 밝히는 데 전혀 연관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녀의 사적인 사진까지 유출시켰다. 그중에는 어쩌면 한 여성에게 일생의 가장 소중한 기억일 수 있을 임신 시절 사진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 잊히기를 선택한 여인도 있다. 4년 전 “BBK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밝히겠다”라며 당당했던 그 여인은 오랜 잠적을 깨고 입국한 뒤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며 “미안합니다”라는 말만을 되뇌었다. 대상이 생략된 그 말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대통령이었을까, 국민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자기 자신이었을까. 

강제로 잊혀진 여인, 스스로 잊혀진 여인, 그리고 억지로 띄워진 여인. 세 여인으로 인해 출렁거리는 정국을 일러 야권은 ‘정권 말 레임덕의 시작’이라 했다. 중세 마녀사냥이 기승을 부린 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망가진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고 한다. 자신들의 부패·타락상을 가리기 위해 죄 없는 여성들을 속죄양 삼았다는 것이다. 다시 일본 상황이 시시각각 중계되는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려본다. 무너지는 건 역시 순식간이다.

기자명 김은남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