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사태는 ‘노동계의 용산참사’라 부를 만하다. 이들의 과격했던 투쟁 방식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생존의 벼랑에 내몰린 채 극단적 저항을 벌이다 비극을 맞았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이들을 사지로 내몬 근본 요인은 재개발 또는 해외 ‘먹튀 자본’에 의한 경영 악화라는 불가항력의 외부 변수였다. 그런데도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무려 경찰특공대‘씩’이나 투입하는 초강경책을 택했다. 테러범을 상대하는 ‘프로 중의 프로’라는 그들이 저항을 포기한 쌍용차 노조원에게 무자비하게 곤봉을 내려치던 장면은 모두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았다.
사후 책임이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됐다는 점에서도 두 사건은 닮은꼴이다. 무리한 작전, 과잉 진압에 대한 문책은 일절 없었다. 용산 진압의 총책임자는 오사카 총영사로, 쌍용차 진압 지휘자는 경찰청장으로 각각 영전했다. 그 이면에서 용산 철거민 7명은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쌍용차 노동자들은 생활고며 소송 폭탄에 시달리는 중이다. 정신병에 걸리고, 이혼을 당하고, 날품팔이로 전국을 떠도는 이들의 사연을 듣노라면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선생의 말마따나 저 사무친 한과 원망, 억울함을 어찌할꼬 싶어진다.
그래서 묻기로 했다.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용산참사를 보며 국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는 이번 호 유시민 전 장관의 말에 많은 이가 공감하실 걸로 믿는다. 강자와 있는 사람 편만 들라고 국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기회와 법 앞의 평등을 명시한 헌법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무너지고 있다면? 기회균등은커녕 가난과 신분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법이 현저하게 형평성을 잃고 있다고 너나 없이 느낀다면? 이제는 때가 된 거라고 본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우리가 만들고 싶은 국가는 어떤 모습인지 묻고 따지고 토론할 때가.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어떤 세력이 정권을 잡더라도 정글에서 허우적대듯 사는 우리 꼴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난데없는 국가론이 낯선 분도 계실 게다. 그분들께는 ‘국가는 그냥 버려두기엔 너무도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이라는 철학자 김상봉 교수의 말로 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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