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뭉치 국정원 뒤 ‘S라인’ 있다
  • 정희상 기자
  • 호수 181
  • 승인 2011.03.0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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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요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잠입했다 들킨 사건은 세계 첩보사에 남을 대망신이다. 원세훈 원장이 취임한 이래 심각한 인사 불공정과 성과주의로 국정원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요원이 해외에서 첩보 공작활동을 펴다가 실패해 간첩으로 몰리거나 살해된 경우는 있어도 안방에서 이런 우스운 꼴을 당하다니, 세계 첩보사에 남을 대망신이다.”

 정보 관련 공작활동으로 뼈가 굵은 한 전직 국정원 간부는 국정원 산업보안단 요원들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머물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잠입했다 들통 난 사건에 대해 이렇게 탄식했다. 첩보 활동 전문가인 그의 눈에 비친 이번 사태의 성격은 ‘원세훈 원장의 정보 아마추어리즘이 빚은 불상사’다. 서울시 행정가 출신들이 국정원을 장악하면서 정보기관의 생리를 무시한 채 성과주의 행정에만 집착하다 빚은 예견된 사고라는 것이다.

   
ⓒ국정원 제공
국정원

서울시 행정가 출신이란 이명박 대통령(MB)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핵심 측근들을 말한다. 실제 현재 국정원 요직은 이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원세훈 국정원장과 목영만 기조실장 그리고 김남수 3차장 및 민병환 2차장이 MB의 서울시청 인맥인 이른바 ‘S라인 친위대’로 분류된다(38쪽 상자 기사 참조).

원세훈 원장은 2009년 가을 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대북 업무에 주력하던 3차장 산하 조직 기능을 산업 및 과학정보 수집과 사이버 보안 특수 임무 위주로 개편했다. 특히 방위산업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정원 내 방산보안단은 관련 정보 수집에 집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국정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대한 어설픈 첩보 공작활동을 벌인 것도 한국형 전술 훈련기종인 ‘T50 고등훈련기’를 인도네시아에 수출하는 것이 MB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이른바 ‘대통령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지난해 방위사업청은 방산 수출 15억 달러를 목표로 정하면서 T50 수출 목표를 4억 달러로 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연합에 수출하려던 꿈이 좌절되면서 4억 달러 목표는 사라졌다. 올해도 방사청은 16억 달러 수출 목표를 정하고 이 가운데 4억 달러를 T50으로 따낼 계획이다. 이번 인도네시아 특사단 방한에 앞서 지난해 12월8일 이명박 대통령 일행은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열고 T50 수출 논의의 물꼬를 텄다. 바로 이 사업과 관련된 첩보 수집에 국정원이 끼어든 것이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T50 수출’ 성사를 놓고 국방부와 국정원 사이에 일어난 ‘공 다툼’이 이번 사건이 불거진 이유로 거론되기도 한다.  

   
ⓒ시사IN 백승기
원세훈 국정원장(사진)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최측근이다. 정권의 레임덕 방지를 위해 발탁되었지만, 아마추어식 운영으로 퇴진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국방부와 국정원 간 ‘공 다툼’ 분석도

이번 사건을 최초로 경찰에 신고한 것이 국방부에서 파견한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의 무관 문 아무개 대령이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방부가 사건을 파악하고 있다가 국정원과 사전 조율을 하려 했지만, 이에 실패해 문 대령이 112에 신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정원장을 포함한 주요 인사가 모두 정보기관의 기본 업무인 공작활동과는 무관한 경력을 지닌 데다가, 정보기관의 특성을 무시하고 무리한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바람에 안 하느니만 못한 공작활동으로 국정원 이미지는 물론 국가 위신까지 크게 실추시켰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 국정원 요원 세 명이 모두 호텔 내 감시카메라에 맨얼굴을 고스란히 남겼다. 노트북에 담긴 자료를 훔치려다 인도네시아 대표단 일행과 객실에서 맞닥뜨리자 노트북을 되돌려주었는데, 여기에 지문도 10여 개 남겼다고 한다. 또 세 요원은 아무런 위장복도 없이 신사복을 입고 버젓이 객실에 들어갔다. 민감한 정보활동을 할 때에는 호텔 청소부라든지 웨이터 등 대리인을 써서 들켰을 때 부담을 피하는 각국 정보기관과는 대비된다.

따지고 보면 원세훈 원장이 부임한 후 2년 동안 국정원 요원이 무리한 공작활동을 벌이던 중 현장에서 발각된 황당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에는 리비아 주재 외교관으로 활동해온 국정원 직원이 방위산업체의 수출을 위해 리비아 무기 목록 같은 군사 정보와 현지 북한 근로자 1000여 명의 정보를 수집하다가 적발되어 ‘내정 간섭’을 이유로 강제 추방당한 일이 있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이 현지에 특사로 나가 카다피를 만나 사건을 무마했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해 5월에는 국정원 직원이 국정원 소유 차량을 버젓이 타고 다니며 방한한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 보고관 일행의 동향을 캠코더로 촬영하다가 차 번호판이 사진에 찍혀 국제 망신을 당했다. 또 지난해 한국진보연대 사무실 압수수색 과정에서는 국정원 직원이 MBC 직원 신분증을 목에 걸고 다니다 붙잡히기도 했다. 2009년 9월에는 국정원 직원이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를 촬영하다가 노래패 회원들에게 붙들린 사건도 있었다. 당시 국정원 직원은  ‘기무사 요원’을 사칭하다가 신분이 들통 났다.

이 같은 어설픈 국정원의 활동 행태를 비판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보 노하우가 전혀 없는 지방 행정가에게 지휘봉을 맡길 때부터 예견되었던 사태’라는 지적이다. 첩보 공작 발각 사건이 이명박 정부에서 유독 자주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원세훈 원장 체제에서 끊이지 않는 국정원 내 인사 불공정과 지나친 ‘성과주의’가 꼽힌다. 여기에 과거 참여정부 때 폐지했던 정보기관장의 대통령 독대 보고가 현 정권 들어 부활하면서 ‘한 건’을 노린 과욕이 잦은 사고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정원 내 인사 난맥상은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정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원세훈 장관이 국정원 내 인적 청산을 통해 국정원을 바로세우겠다며 실력과 상관없이 인사 전횡을 하다보니 조직 내부에 큰 불만이 생겼다”라고 전했다. 특히 호남 출신은 요직에서 전부 몰아낸 뒤 대부분 비연고지로 전환 배치했다고 한다. 원세훈 원장의 이 같은 국정원 인사 난맥상은 집권 여당에서조차 문제로 거론할 정도다. 2월23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두언 최고위원은 “국정원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지고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인사를 교체한다며 무원칙하게 인사를 해서 국정원 기능 전반이 무력해졌다. 쇄신은커녕 정상화를 해야 할 지경에 와 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정권에서 활약한 베테랑들 좌천시키기도

   
ⓒ뉴시스
인도네시아와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인 국산 고등훈련기 T50의 편대 비행 모습. 대당 2500만 달러를 호가한다.

정보기관의 생리를 무시한 성과주의 중심 조직 운영도 적잖은 폐해를 낳고 있다. 2009년 2월 국정원에 부임한 원세훈 원장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인사를 하면서 하위직까지 조직을 흔들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는 취임 이후 상명하복이 엄격한 국정원의 조직 특성을 무시하고 ‘한 건’을 해온 요원에게는 승진과 호봉에서 차등을 두는 성과주의를 도입했다. 그 폐해에 대해 한 전직 국정원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해외 각국의 정보 조직이 계급제 대신 호봉제를 택하는 것은 인사 갈등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이다. 말로는 선의의 경쟁을 시킨다지만 정보원 상호간에 성과를 놓고 사활 건 싸움을 하게 만들면 정보의 특수성 때문에 둘 다 죽는다.” 이 간부는 또 “행정 조직과 정보 조직의 차이를 간과하고 지휘권을 잘못 휘두르고 있다. 말로 표현 못할 정보 세계의 노하우를 원세훈 원장이 모르고 있는 것이 화근이다”라고 말했다.

원세훈 국정원장 체제에서는 과거 정권에서 잘나갔다는 이유로 베테랑 공작원을 하루아침에 지방으로 발령을 내고, 경험 없는 인물을 첩보 현장에 투입하는 일도 심심찮게 생겼다는 게 국정원 안팎의 증언이다. 대신 노하우와 경험이 부족한 신참에게는 무리한 성과주의 잣대를 들이댔다. 조직을 이렇게 지휘하면서 ‘어설픈 아마추어 공작’이 들키지 않는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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