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나의 카페베네를 보지 않으면 히키코모리(방에 틀어박혀 사회와 인연을 끊고 사는 사람)라는 설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번식력’ 1위인 카페베네를 조롱하는 한 누리꾼의 우스갯소리다. 그러나 이건 단순히 우스개가 아니다. 당신이 오늘 하루 동안 본 커피전문점을 세어보라. 카페베네뿐 아니라 그야말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커피전문점 하나쯤 안 보고 길을 지나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정문에서 지하철 2호선 신촌역까지 10분 남짓 걷다보면 보이는 크고 작은 커피전문점은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언제나 붐빈다. 물론 신촌만의 ‘특이 현상’은 아니다.

커피전문점 열풍의 시작은 스타벅스였다. 1999년 이대점을 필두로 한국에 진출한 스타벅스는 줄곧 커피전문점 시장을 주도했다. 스타벅스는 유행에 민감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를 중심으로 점포 수를 늘려나갔다. 마케팅과 문화적 관점에서 스타벅스를 분석한 책도 쏟아졌다. 성공을 확인한 후발 주자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김재연 인턴기자한국의 커피전문점에는 카페를 도서관처럼 활용하는 카페브러리족이 유난히 많다.


2009~2010년 경기 침체 속에서도 커피 시장의 성장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최근 커피전문점은 번화가뿐만 아니라 주택가·서점·대형마트·휴게소 등 생활밀착형 공간까지 파고들고 있다. 이제 누구도 커피전문점에 가는 사람을 ‘된장녀’라고 비하하지 않는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커피전문점은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공간이 되었다. 스타벅스·엔제리너스 등 상위 4개 커피전문점의 지난해 매출액은 5000억원에 이른다.

커피가 위 속으로 떨어지면…

세계무역 시장에서 석유 다음으로 거래가 활발한 품목인 커피는 매년 전 세계 인구가 6000억 잔을 소비하는 ‘인류적 기호식품’이자, 인류가 사랑하는 음료다. 일찍이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현대 자극성 음료에 대한 논문〉에서 “커피가 위 속으로 떨어지면 모든 것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생각은 전장의 기병대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기억은 기습하듯 살아난다. 작중 인물은 즉시 떠오르고 원고지는 잉크로 덮인다”라고 썼다. 7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하는 동안 그는 5만 잔에 이르는 커피를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커피전문점 애호가였다. 그는 평생 연인이었던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파리 시내 ‘카페 드 플로르’의 소음과 담배연기 속에서 글을 썼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17~18세기 유럽의 커피전문점이라 할 수 있는 커피하우스 역시 당시로서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다. 당시 유럽 곳곳에 3000여 개가 넘는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런던만 해도 1663년 82개에 불과했던 커피하우스가 겨우 7년 만인 1700년 500여 개로 증가한다. 커피하우스는 계층의 구분 없이 누구나 출입할 수 있었고, 정보를 공유하며 토론하는 ‘정치적’ 공간이었다. 당연히 토론과 대화가 억압된 사회에는 커피하우스도 없었다. 옛 소련 시절, 모스크바에 커피하우스가 금지되었다는 사실이 단적인 예다.

오늘날 커피전문점의 증가 역시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대한 갈증, 즉 ‘사회적 관계’ 욕구로 해석되곤 한다. 한국경제신문사가 지난해 펴낸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의 하나로서 ‘커피의 시대’를 데이터로 보여준다. 이 책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커피전문점을 혼자 방문하는 경우는 14%에 그치지만, 친구·동료·연인 등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경우는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의 절대다수는 ‘커피 가격이 비싸다(86%)’고 생각한다. 이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사람들은 커피의 맛과 가격보다는 사회적 관계의 장소로 커피전문점을 소비하고 있다고 분석 할 수 있다.

 

 

 

ⓒ시사IN 조남진연세대 정문에서 신촌 전철역까지 10분 남짓 걷다보면 크고 작은 커피전문점이 즐비하다.

 


서울 대치동과 목동 등 학원가에 위치한 커피전문점은 전형적인 ‘사랑방’ 구실을 한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네거리 스타벅스 대치점이 입주한 건물 위층에는 각종 학원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 아르바이트생은 “30~40대 아주머니들이 학부모 모임 하러 많이 온다”라고 말했다. 특히 학부모 모임이 잦은 학기 초가 되면 미리 자리를 예약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 학부모가 다른 학부모와 함께, 혹은 학원 강사들을 만나 사교육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주요 장소가 커피전문점이 되면서 ‘아카데미맘’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커피전문점, 집과 직장에서 해방된 공간

커피전문점은 사랑방이 아닌 ‘개인 놀이터’의 기능도 수행한다. 한국 커피 시장에 관심이 많은 앨런 쿠페츠 교수(미국 롤린스 대학 크라머 경영대학원)는 지난해 여름 〈파이낸셜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커피 문화는 독특하다. 한국인에게 가정은 가족이 머무르는 곳이고, 직장은 생계를 위한 공간이다보니 커피전문점이 집과 직장의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주는 제3의 장소로 기능한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그는 뛰어난 인터넷 접속 환경을 주목하며 한국의 커피전문점이 앞으로 더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커피전문점을 ‘제3의 장소’로 바라본 그의 분석 틀을 빌리면 사무실 밀집지역의 커피전문점 주요 고객인 ‘코피스족(coffee+office:카페를 일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람들)’과 대학가 커피전문점 주요 고객인 ‘카페브러리족(cafe+ library:카페를 도서관처럼 활용하는 사람들)’이 설명된다.

한 대학가에 있는 3층짜리 커피전문점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책을 읽던 대학원생 하창주씨(27)는 “커피 값으로 5000원 정도만 지불하면 몇 시간이고 무선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공간이 크다보니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작업(공부)하기에 이만한 공간이 또 있나?”라고 되물었다. 이러한 소비자의 필요를 반영해 24시간 영업하는 커피전문점도 늘어나고 있다. 24시간 영업 매장인 탐앤탐스 홍대점의 경우 매출의 절반 정도가 야간 시간에 발생한다. 홍대 앞이라는 매장 위치의 특성상 프리랜서와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사이토 다카시 교수(일본 메이지 대학 문학부)는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에서 “커피는 ‘잠들지 않는’ 근대의 원동력이다”라고 정의한다. 술은 마시면 잠이 오지만, 커피는 마시면 잠이 깬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가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다.

커피전문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이유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상시적 고용 불안의 시대, 그나마도 취업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하는 요즘. 커피전문점의 증가가 커피라는 음료가 가진 느낌처럼 ‘낭만적’일 수 없는 이유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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