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모른다. 순전히 단맛으로 마신다. 그래서인지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두 숟가락이 황금 비율이라는 ‘다방 커피’를 최고로 친다. 다음은 자판기 커피. 다방은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제격이다. 언제나 손님이 많지 않다. 음악소리도 크지 않다. 아직도 취재원을 만날 때면 ‘거기’라는 말로 다방에서 만나곤 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아지트 같았던 다방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주변에 생긴 대형 커피전문점에 밀린 탓이다.

5년 전부터 커피전문점에는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지트를 빼앗긴 데 대한 소심한 복수이자, 기왕이면 구멍가게 커피를 팔아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가장 쉬운 재테크 방법이 무심코 들르는 커피전문점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어느 경제학자의 조언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스타벅스·커피빈·카페베네 같은 커피전문점에 발을 들여놓는 날이 많아졌다. 할아버지뻘 되는 취재원들까지 커피전문점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 때문이다.
 


불황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지만, 커피전문점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커피전문점은 젊은 여대생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더니, 지금은 세대와 성별을 넘어 그 세력권을 더 넓혀가고 있다. 스타벅스·커피빈·할리스·투썸플레이스·엔제리너스·탐앤탐스 등 브랜드 커피전문점 매장 수가 2000개를 훌쩍 넘었다. 이들은 동네와 골목 상권을 접수했다. ‘신기하게도’ 커피전문점 안에는 항상 사람이 가득하다. 송혜경 스타벅스 과장은 “술은 안 마셔도 커피는 줄일 수 없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시장이 커져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두  자릿수 성장은 문제없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난도 교수(서울대 소비자학)는 “우리나라는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 대인 관계를 형성하는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유행·명품 등 쿨한 이미지를 띠는 커피전문점이 관계를 맺는 만남의 장소였던 빵집·다방 등을 접수하고 있는 형편이다”라고 말했다.

커피전문점끼리 ‘코피 터지는’ 전쟁도 벌이고 있다. 다국적기업과 대기업이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최근에는 중소기업 브랜드 ‘카페베네’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2008년 5월 1호점을 연 카페베네는 2009년 115개로 매장 수를 늘리더니, 2010년 11월에는 업계 최초로 400호점을 열었다. 그 전까지 매장 수 1, 2위를 다투던 엔제리너스와 스타벅스를 가볍게 제친 셈이다(위 그림 참조). 올 3월에는 500호점을 돌파할 예정이다. 작년 카페베네의 본사 매출은 약 1000억원. 2009년 223억원에 비해 4배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가맹점을 합할 경우 매출액은 훨씬 커진다. 불황 시대에 경영학 교과서를 비웃는 폭발적인 성장세다.

카페베네가 매장을 연 2008년에는 스타벅스와 커피빈 등 해외 유명 회사와 CJ·롯데·두산·한화 등 대기업 커피전문점이 이미 터를 다진 상태였다. 여기에 직접 원두를 볶고 갈아 커피를 내리는 로스팅(roasting) 카페가 마니아층 사이에서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미 커피전문점 시장은 포화상태라는 말이 나오던 때였다.

죽기 살기로 광고·마케팅

하지만 카페베네는 무모할 정도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치고 나왔다. 카페베네는 2009년 연예기획사 싸이더스HQ에 지분 5%를 주고 전략적 제휴를 맺는다. 싸이더스 소속 한예슬과 최다니엘 등 톱스타를 전면에 내세워 스타 마케팅에 주력했다. 카페베네는 커피전문점으로는 최초로 텔레비전 광고를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카페베네는 드라마 제작 지원을 통한 홍보에 매달렸다(19쪽 딸린 기사 참조).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 거액을 투자했고, 〈볼수록 애교만점〉 〈대물〉 〈결혼해주세요〉 〈시크릿 가든〉 〈아테나〉 등 대형 드라마에는 어김없이 얼굴을 내밀었다. 드라마 주인공들은 죄다 카페베네만 갔다. 이는 브랜드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카페베네 제공‘한예슬 커피숍’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카페베네. 스타 마케팅과 스마트폰 확산 덕에 손님이 크게 늘었다.

 


한 메이저 연예기획사 사장은 “디초콜릿카페처럼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커피 사업을 이용해 주식시장에서 장난을 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카페베네는 회사와 연예기획사가 윈윈한 보기 드문 경우다”라고 말했다.

마시는 곳이 아니라 먹고 노는 카페

카페베네는 매장을 찾은 고객을 묶어두는 전략을 구사한다. 마시는 ‘커피’보다 먹는 ‘카페’라는 공간에 주목한다. 커피 외에 벨기에 와플과 이탈리안 아이스크림 그리고 오곡 음료·홍삼·식혜 등 웰빙 음료도 내놓았다. 메뉴가 늘어나면서 음식의 맛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김선권 카페베네 대표는 여기에 자신이 있었다. 감자탕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일찍이 성공을 거둔 그는 “경험에서 터득한 남다른 노하우가 있다. 와플 맛을 맞추는 것도 까다롭지만 국물 맛을 유지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카페베네는 책을 구비하고 당구대를 설치해서 놀기 좋은 카페를 만들었다. 애초에 카페베네는 고객들의 지친 발을 쉬게 하자며 슬리퍼를 주는 방안까지 강구했다. 슬리퍼 발주까지 마쳤지만 점주들의 완강한 반대로 이 계획은 무산됐다고 한다. 카페베네는 자리마다 콘센트를 달아 자유롭게 노트북을 사용하도록 했고, 매장에 최신 기종 컴퓨터를 설치했다. 한두 테이블에서만 노트북 사용이 가능한 게 보통인 일반 커피전문점과는 스케일이 달랐다. 지난해 스마트폰 열풍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폭발적 증가는 와이파이를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커피전문점의 성장을 견인했다. 카페베네 압구정점의 한 점원은 “인터넷을 하려고 카페에 들르는 고객이 1년 전에 비해 서너 배 이상 늘었다”라고 말했다.

 

 

 

 

 


카페베네가 급속히 몸집을 불리면서 이에 따른 우려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카페베네가 몸집 부풀리기에 지나치게 매달린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스타벅스·커피빈 등은 대형 매장을 중심으로 한 직영점을 고수하고 있다. 할리스나 탐앤탐스의 경우 가맹점 사업을 하지만, 진행 속도가 느리다. 카페베네는 그 틈새시장을 노려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적극 늘려나갔다. 자영업자들에게 카페 사업은 일종의 로망이었고, 폼나는 카페를 열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카페베네는 동네와 골목을 접수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와 은행, 심지어 교회에까지 매장을 열었다.

2월 중순 현재 카페베네의 매장 수는 451개. 올 연말까지 모두 800개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올 6월에는 뉴욕 맨해튼 한복판 타임스퀘어에 지점을 내고 해외시장 공략에도 나설 예정이다. 카페베네는 궁극적으로 매장 수를 2000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전국의 커피전문점 수가 2000개가량이니 조금은 무모해 보인다. 이에 대해 김선권 대표는 “일반 매장으로 따지면 1000개도 소화하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공항·터미널만 해도 몇 개인가? 그 안에 들어갈 것이다. 휴게소·대형 병원·교회·대학교에도. 지금 연세대에만 4개 매장이 입점해 있다. 국민은행 객장 안에도 매장 50개를 열기로 했다. 다른 상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우리의 길은 얼마든지 있다”라고 말했다.

 

 

 

 

‘한예슬 커피숍’으로 처음 이름을 알린 카페베네.  스타 마케팅을 적극 활용했다.

 

스타 마케팅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비판도 있다. 다른 대형 커피전문점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죽기 살기로 스타 마케팅에 올인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른 비용이 비싼 커피 값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김선권 대표는 “외국계 대형 커피전문점의 경우 로열티로만 매출의 5~10%를 지불한다. 우리는 그것을 마케팅 비용으로 쓴다”라고 말했다.

카페베네는 지금부터 가파른 길을 걸어야 한다. 커피전문점 시장이 언제까지 호황일지는 알 수 없다. 또 언제까지 카페베네의 공격이 먹힐지도 의문이다. 스타 마케팅은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손님을 묶어둘 수는 없다. 60억원 들여 뉴욕에 지점을 내는 것도 광고 이상의 효과를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탐앤탐스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빈이 하지원과 (드라마에서) 거품 키스를 했는데, 카푸치노가 중요하지 카페베네는 중요하지 않다. 커피 사업을 마케팅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영업점이 늘어날수록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는 것도 문제이고, 대리점 간 갈등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한 대기업의 홍보 담당 임원은 “공격적으로 광고하고 가맹점을 늘리는 것은 프랜차이즈의 생리다. 지금까지는 커피 시장이 함께 성장하면서 카페베네가 승승장구했지만, 이제 성장통이 하나둘 드러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경쟁 커피전문점 간부는 “김 대표가 아무리 프랜차이즈 전문가라고 해도 한 달에 30개 매장을 오픈하는 것은 무리다. 서비스 관리를 감당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카페베네 측은 자신 있다는 반응이다.

스타벅스 1호점이 한국에 생긴 지 올해로 12년. 노른자위 상권은 물론 골목 상권까지 거침없이 침투하고 있는 이 신흥 포식자들의 경쟁은 바야흐로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중이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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