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은 ‘카메라에 찍혀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정권에 찍히기’도 한다. 그런 연예인을 ‘블랙리스트 연예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권과 연결된 연예인들만 정치에 휘둘리는 것은 아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도 정치는 존재한다. 비단 정치권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뿐 아니라 방송사와 방송사 간, 기획사와 방송사 간, 기획사와 기획사 간, 기획사와 연예인 간, 심지어 같은 그룹의 연예인과 연예인 간에도 정치는 존재한다.

지난해 Mnet 〈슈퍼스타K 2〉 결선에 오른 허각과 존박은 국민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상파 3사 음악방송에서는 이들을 거의 볼 수 없다. KBS 〈개그콘서트〉와 SBS 〈강심장〉에 출연했을 뿐이다. 지상파 3사가 Mnet을 중심으로 한 CJ 계열 케이블방송 음악 채널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뉴시스예능계에서는 지금도 ‘정치 싸움’이 한창이다. 주류 기획사들과 비주류 기획사들은 카라 사태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출연을 무기로 기획사가 방송사를 길들이는 것은 이제 빈번한 일이 되었다. SM엔터테인먼트(회장 이수만)가 소속 가수 출연을 보이콧해 CJ를 길들이듯, YG엔터테인먼트(대표 양현석)는 KBS에 소속 연예인을 출연시키지 않는다. KBS 라디오 〈심야식당〉에서 YG 소속 가수의 음악에 대한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YG는 KBS 출연을 지금껏 보이콧하고 있다. 그동안 YG는 타 방송사, 특히 CJ 계열 음악 방송사와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부족한 홍보를 벌충했다.

연예인들 사이에 ‘미시 정치’도 작용한다. ‘예능감’ 충만한 그룹 멤버에 ‘묻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 그룹에서 제일 인기가 좋은 멤버를 나머지 멤버가 힘을 합쳐 견제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대학 총학생회 선거보다 더 고난이도의 정치를 하는데, 한 연예인은 기자에게 “소녀시대 멤버가 9명이다. 그 또래 여성 9명이 함께 지내면서 모두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그들은 실제로 사이좋게 지낸다. 나는 그것이 더 무섭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연예계 내부를 들여다보자. 연예계 현안을 들여다보면 정치력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요즘 연예계에는 화제가 되고 있는 갈등 축이 세 개 있다. 하나는 DSP미디어 소속 아이돌 그룹인 ‘카라’를 놓고 벌어지는 ‘그룹 존속이냐, 그룹 해체냐’ 논란이다. 두 번째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이던 ‘동방신기’에서 탈퇴한 뒤 ‘JYJ’라는 그룹을 결성한 멤버 3인(김준수·박유천·김재중)이 SM을 상대로 벌이는 법정 소송이다. 세 번째는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방출한 전 2PM 멤버 박재범을 놓고 현 소속사(싸이더스HQ)와 전 소속사(JYP)가 벌이는 갈등이다. 

ⓒ뉴시스동방신기에서 탈퇴한 JYJ는 SM을 상대로 법정 소송 중이다.

멤버 다섯 명 중 세 명(한승연·정니콜·강지영)이 이탈을 시도 중인 카라의 경우, 문제가 불거진 시점은 일본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면서다. 표면적으로는 기획사의 비인간적 대우를 문제 삼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일본 진출 이후 생긴 수익 분배 문제 때문에 갈등이 불거진 것으로 해석한다. 음반 시장 규모가 한국의 20배 정도인 일본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면 수입에 동그라미가 하나 더 붙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애초 ‘생계형 아이돌’이라 불릴 만큼 카라는 맨주먹 정신으로 무장한 그룹이었지만, 파이가 커지자 결국 균열이 생겼다.

이 카라 논쟁은 곧 연예계 세력전으로 바뀌었다. 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문산연)·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매협) 등 동병상련 처지인 주류 기획사 대표들이 DSP미디어 측을 지지했다. 반면 젊은제작자연대(젊제연) 등 비주류 기획사 연합은 이탈 멤버들을 옹호했다. 카라를 중심에 두고 방송 출연 등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주류 기획사와, 소외된 비주류 기획사가 일종의 대리전을 치른 것이다.

카라 사태 뒤에 숨은 세력들의 ‘기싸움’

정치판에서도 논쟁이 벌어졌을 때 관건이 되는 것은 누가 지원사격을 하느냐 문제다.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되면서 카라 기획사는 뒷전으로 빠져  ‘피해자’ 이미지를 남길 수 있었다. 반면 이탈 멤버들을 옹호했던 비주류 기획사 중 한 곳은 이탈 멤버를 영입하려는 문자를 보낸 것이 밝혀져 ‘배후 세력’으로 비난받았다. 1라운드는 기득권 세력의 우세승으로 끝나고, 카라 멤버들은 일단 활동을 함께하기로 했다.

ⓒ뉴시스대형 기획사 싸이더스HQ와 JYP는 전 2PM 멤버 박재범을 사이에 두고 갈등 중이다.
카라 사태는 법정 소송으로도 진행될 예정인데, 연예 소송 전문 변호사들도 종종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서 대리전을 치른다. 연예 전문 변호사들은 법적 분쟁을 벌일 때 여론전에도 함께 신경을 쓴다. 카라 사태를 놓고도 멤버를 두둔하는 비주류 측에서는 비인간적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인권론’을 내세웠고, 기획사를 옹호하는 주류 측에서는 키워줬더니 떠난다는 ‘배신론’을 내세워 대립했다.

SM엔터테인먼트와 JYJ의 분쟁도 세력전으로 치러졌다. 문산연은 각 방송사에 JYJ의 방송 출연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방송사가 이탈한 연예인을 방송에 출연시키는 문제는 곧바로 거대 기획사들과 척지는 일이 되기 때문에 이런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최소한 예능국에서 제작하는 음악 프로그램 등에는 출연이 어렵다.

연제협·연매협·문산연 등 단체를 만들어 기획사들이 방어하려는 공동 이익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음원 수익 확보이고, 다른 하나는 소속 가수의 이탈 방지다. 둘 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 ‘노예 계약’ 문제가 불거지면서 계약 문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오랜 계약 기간이 문제가 되면서 요즘은 ‘정규 앨범을 몇 장 낸다’는 식으로 계약을 하는데, 정규 앨범을 내지 않고 미니 앨범 위주로 제작해 인위적으로 활동 기간을 연장하기도 한다.

‘멤버 이탈 방지’라는 공동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들이 지키는 불문율이 있다. 바로 타 기획사 이탈 멤버는 서로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렇게 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신 이탈 연예인을 함께 ‘왕따’시키는 것으로 공동의 이익을 지킨다. 

이 때문에 기획사에서 이탈한 연예인은 새로운 소속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JYJ 멤버들은 특정 소속사에 영입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들이 Cjes라는 기획사를 영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획사의 기획을 자신들이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획을 기획사가 구현하는 모형을 만든 것이다. 대다수 중견 가수들은 이런 모형으로 기획사를 운영하는데 이들에게는 그 시기가 빨리 왔다.

연제협·연매협·문산연 외에 주목할 만한 단체가 지난해 생겼다. 바로 SM·JYP·YG 등 7개 기획사가 가입한 ‘KMP홀딩스’라는 음원 유통 회사다. 주요 기획사가 결합한 이 ‘주류 클럽’이 요즘 연예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꼽힌다. 한 고참 연예부 기자는 “KMP홀딩스는 연예계 ‘슈퍼 갑’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치권에 비유하자면 한나라당 친이계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KMP홀딩스에는 앞으로 젤리피쉬(성시경)·스타쉽(씨스타)·튜브(비스트, 포미닛)·플레디스(애프터스쿨) 등이 더 합류할 예정이다.

“KMP홀딩스는 연예계 한나라당 친이계 격”

이 기자는 또 “지상파 방송사들도 철저히 이 주류 클럽의 눈치를 본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JYJ가 동방신기에서 이탈한 뒤에도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막대한 음반 판매 실적을 올렸는데도 지상파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에 전혀 출연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JYJ는 KMP홀딩스의 영향력 때문에 음원 판매에도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KMP홀딩스의 출발은 기획사들의 ‘이익 방어’였다. 음악시장 주도권이 음반시장에서 음원시장으로 바뀌면서 절대 권력이 이동통신사로 옮아갔다. Mnet 등 음악 케이블방송을 보유한 CJ미디어(엠넷미디어)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점점 기획사의 몫이 줄어들었다. 이에 반발해 자체 음원 유통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KMP홀딩스의 구심이 된 곳은 SM이었다. 기획사가 음원 유통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SM의 지론으로, 이를 두고 지난 한 해 동안 CJ와 대립하기도 했다. 막강한 아이돌 그룹을 보유한 SM은 소속 가수 출연을 봉쇄하면서 CJ미디어(엠넷미디어)를 견제해 결국 백기 투항을 얻어냈다. CJ 측은 갈등의 중심에서 사실상 선봉장 노릇을 한 박광원 엠넷 대표를 자진 사퇴시켜 SM과의 관계를 정상화했다.

ⓒ시사IN 안희태왼쪽부터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주주,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2PM 전 멤버 박재범을 둘러싸고도 새로운 갈등 축이 존재한다. 박재범을 영입한 정훈탁 싸이더스HQ 대표는 JYP 대주주인 박진영씨와는 ‘어제의 동지’였다. 본래 정 대표와 박씨는 그룹 god의 음반을 공동 제작했다. god 멤버 중 일부는 JYP에, 다른 일부는 싸이더스HQ에 속했기 때문이다. 둘은 몇 년 동안 서로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god를 국민 아이돌로 키워냈다. 그러나 결국 등을 돌리고 숙적이 되었다. 그리고 싸이더스HQ가 박재범을 영입함으로써 둘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박재범이 싸이더스HQ라는 최대 매니지먼트사에 영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 활동 등이 제한되는 이유다. 그것은 싸이더스HQ는 배우 전문 기획사이기 때문이다. 배우 전문 매니지먼트사는 영화와 드라마 쪽에서는 영향력이 있지만 대중음악계에는 영향력이 거의 없다. 그리고 기획사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힘을 쓰기 힘들다. 

일단 가수 전문 기획사와 배우 전문 매니지먼트사의 영향력은 크게 차이가 난다. 기획사와 연예인이 맺고 있는 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돌 스타를 보유한 음반 기획사는 기획사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만 배우 매니지먼트사는 성인 배우를 주로 상대하는 만큼 주도권이 배우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결정적으로 음반 기획사는 방송 보이콧 등 ‘집합적 힘’을 발휘하기 쉽지만, 배우 한 명 한 명이 소사장인 배우 매니지먼트사는 그런 힘을 쓰기 어렵다.

흥미로운 사실은 박재범의 재기를 홍승성 큐브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도왔다는 사실이다. 홍씨는 JYP엔터테이먼트 대표로 있다가 박진영과 결별한 전력을 갖고 있다. 지난해 ‘드림콘서트’에 박재범이 출연하는 문제를 놓고 JYP의 견제가 있었는데, 이때 홍 대표가 나섰다고 한다. 콘서트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출연진이 ‘박재범 보이콧 vs 박재범 옹호’로 나뉘어서 극심하게 대립했다. 이때 홍 대표가 박재범 편을 들어주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듯,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한다. 홍승성 대표가 이끄는 큐브는 최근 JYP가 속해 있는 ‘KMP홀딩스’에 결합하기로 했다. 박진영은 결별했던 비와 다시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기로 하고 한류 스타 배용준과 함께 KBS 드라마 〈드림하이〉 제작에 관여하기도 했다.

게임은 단순하지 않다. 기획사들도 공동의 이익보다 눈앞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경우도 많다. 카라 멤버들의 이탈을 비난했던 김광수 코어컨텐츠미디어 대표의 경우 JYP가 방출한 박재범을 소속사 아이돌의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기용하고, 동방신기에서 나온 JYJ 김준수(시아준수)를 자신이 투자한 뮤지컬 〈천국의 눈물〉에 출연시키기도 했다.

난마처럼 얽힌 연예계 정치판에 최근 새로운 멤버가 등장했다. 바로 새로 선정된 종합편성채널(종편)이다. 종편에 선정된 〈중앙일보〉 계열사 QTV는 JYJ를 자사 프로그램에 출연시켰다. ‘주류 클럽’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여기에 앞으로 해외 자본까지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어서 싸움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과연 연예계 대권은 누가 잡을까?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