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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청춘 위로하는 ‘노 리플라이’ 노래

인디 뮤지션 ‘노 리플라이’가 2000석 규모의 단독 공연을 연다. 6만원이 넘는 인디 가수의 공연이 매진에 가까운 예매율을 보인 것은 ‘사건’이다. 아이돌 일색의 대중음악계에 조용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2011년 02월 07일 월요일 제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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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을 헤매던 내게/ 누군가 물었지/ 어디쯤 서 있냐고/ 한참을 대답할 수 없었어/ 내가 밟고 있는 이 길이/ 어딘지 모른다 해도 가야만 해.’(1집 <로드(Road)> 중)

무엇 하나 이룬 것 없는 가난한 청춘은 대답할 수 없음으로 인해 상처투성이다. 아직 20대인 노 리플라이(No Reply)의 두 멤버 권순관씨(29)와 정욱재씨(27) 역시 그러하다. 두 청년이 가진 건 목소리와 기타뿐이었다. 그 두 가지 달랑 그러안고 2009년 6월, 1집 <로드>를 발표하며 세상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내놓았다. 방향을 짐작할 수 없는 길 위에 섰지만 그들은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물이 2010년 9월 내놓은 2집 <드림(Dream)>이다. 이들은 2집 타이틀곡 ‘내가 되었으면’에서 ‘혼자 있기 두려울 때/ 아무 말 없이 위로가 될 사람/ 내가 되었으면 해요’라고 토닥인다.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가 <옛날에 대하여>에서 말했듯, ‘길을 잃고 헤맬 때조차 우리는 무턱대고 아무 데로나 가는 게 아니’라는 걸 노 리플라이의 음악은 증명한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향해 있음을 보여준다. 감성적인 멜로디도 그러하지만, ‘청춘의 문장들’로 쓰인 가사는 곱씹어 들을수록 달콤 쌉쌀하다. 권순관씨는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두 청년이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노래로 하다보니 듣는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노 리플라이의 두 멤버 권순관씨(왼쪽)와 정욱재씨(오른쪽). 이들은 “첫 단독 공연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보여주겠다”라고 자신했다.
비틀스와 간노 요코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그룹 이름 ‘노 리플라이’는 아직 대중에게 낯설다. 그러나 팀 이름처럼 자신들의 음악이 반응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마음은 기우였다. 공중파 방송 출연조차 변변히 하지 못하는 이 ‘인디 가수’의 정규 앨범 2장은 모두 1만5000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무플 방지위원회’라는 이름의 팬 카페에는 회원 6000여 명이 가입되어 있다. 아이돌 팬클럽에 비하면 소박한 수지만, 거개가 적극적 청취자이다.

‘1990년대 웰메이드 사운드’ 재현했다는 평가


‘1990년대 웰메이드 사운드의 재현’ ‘홍대 음악 신의 새로운 경향 제시’ ‘제2의 전람회’ ‘인디계의 아이돌’ 등 노 리플라이 이름 뒤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이 같은 반응이 나오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김동률·이적·유희열 등 선배 가수들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노 리플라이는 “싱어송라이터 선배들의 계보를 잇는다는 말은 버거울 정도로 좋다. 그리고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대중음악 시장이 장르를 불문하고 인디 혹은 아이돌로 이분화된 지금 노 리플라이 음악이 갖는 위치는 독특하다. 노 리플라이뿐 아니라, 10CM·메이트·에피톤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장르를 딱히 구분하자면 팝 발라드 정도이다. 따라서 이들의 음악은 일정 부분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데도 상대적으로 노출 빈도가 적어 인디로 ‘취급받는’, 이른바 틈새시장의 강자가 되었다.

“2006년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음악을 해도 R&B나 솔 음악을 하려던 전공자가 많았고, 홍대 신 역시 록과 펑크에 훨씬 무게중심이 많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홍대 신에도 우리 같은 음악을 듣는 고정적인 ‘팬덤’이 형성됐다”라고 권씨는 말했다.

노 리플라이가 2집 발매 이후 처음 여는 이번 단독 공연을 ‘대규모’로 꾸릴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주로 클럽에서 연 이전 단독 공연 역시 줄줄이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틀간 모두 2000여 객석을 채워야 하는 이번 공연 역시 매진에 가까운 예매율을 보이는 것은 일종의 ‘사건’이라고 홍대 인디 신 관계자들은 평가한다. 그만큼 노 리플라이의 각오도 대단하다. 정욱재씨는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보여주는 공연이 될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노 리플라이가 이러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건 17년 지기 동네 친구로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온 덕분이다. 중·고교 동창인 두 사람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피아노와 기타 줄을 튕기며 ‘놀았다’. 대학 전공도 비슷했다. 권순관씨는 작곡과로, 정욱재씨는 실용음악과로 진학했다. 두 사람을 노 리플라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낸 출발점은 2006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노 리플라이는 은상을 받았다. 그즈음 권씨는 김현철 9집에 작곡가로 데뷔하기도 했다. 이 대회가 싱어송라이터 신인의 등용문이긴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음반까지 내는 ‘가수’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노래를 부르기보다 만드는 걸 좋아해 애초에는 현재 권씨가 담당하고 있는 보컬을 ‘영입’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2007년 싸이월드 러브 이벤트 싱글로 낸 ‘고백하는 날’이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면서 현재 소속사인 해피로봇레코드와 계약을 하게 됐다. 뒤돌아보면 홍대 신에서도 이들은 나름 ‘평탄한’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노 리플라이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진검 승부’를 다짐한다. “지금까지는 거품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음악이 풋풋함으로 눈감아주는 부분이 있었다면, 앞으로가 진짜 승부 시작이다.” 권씨는 노래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하느냐”라고 매번 붙잡고 묻는다고 했다. 제 몸에 꼭 맞는 노래법을 찾기 위해서이다.

두 사람은 자기 개인의 삶을 사는 것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권씨는 “때가 되면 김동률·윤상 선배처럼 유학도 다녀오고 싶다”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과 유엔환경연합(UNEP) 회원이기도 한 정씨는 지난해 환경문제를 담아낸 솔로 프로젝트 튠(TUNE) 활동도 병행했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 환경정책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과정을 밟고 있기도 하다. 올해는 관련 내용을 담은 책도 써볼 작정이다.

아직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정씨는 환경 전공을 살려 올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으로 제3세계로 떠날 생각이다. 권씨는 정씨가 떠나 있는 동안 솔로 프로젝트를 구상해보려 한다. 노 리플라이로 일정 부분 성취를 거두었지만, 아직 꿈을 다 이루지는 못했다. 2월19~20일 이틀간 열리는 이번 콘서트 제목은 그래서 ‘꿈의 시작’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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