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정연주’가 돌아왔다. ‘앵커 신경민’도 돌아왔다. 두 사람은 이명박 정부 이후 언론 한파 정국의 최전선에 섰던 주인공이다. 한 사람은 배임죄라는 무시무시한 죄를 뒤집어쓴 채 공영방송 사장에서 쫓겨났고, 또 한 사람은 30초짜리 클로징 멘트 때문에 마이크를 빼앗겼다.

하지만 부재는 또 다른 복귀를 낳았다. 정연주 KBS 전 사장은 격주로 〈오마이뉴스〉에 ‘정연주의 증언’을 연재한다. 조·중·동을 ‘조폭 언론’이라 처음으로 규정하며 유명세를 탔던 ‘정연주 칼럼’도 〈한겨레〉에 다시 쓴다. 387일 만에 메인 앵커 자리에서 쫓겨난 신경민 전 앵커도 맨얼굴로 스튜디오가 아닌 대학과 시민단체 강연에서 마이크를 잡는다.
 

ⓒ시사IN 안희태정연주 전 KBS 사장, 신경민 MBC 논설위원


두 사람이 만났다. ‘조·중·동·매·연(조선·중앙·동아·매경·연합: 종편·보도채널 선정 언론사)’ 정국을 내다보기 위해서다. 기자 정연주의 말은 빠르고 가팔랐다. 곧게 뻗어서 핵심에 곧장 닿는 직선에 가까웠다. 앵커 신경민의 말은 느리고 완만했다. 언론뿐 아니라 정치·사회를 짚고 에두르는 곡선이었다. 직선과 곡선은 ‘조중동 매연’에 대처하는 대안에서 만났다. 대담은 1월18일 〈시사IN〉 편집국에서 진행되었다.

사회:KBS·MBC 9시 뉴스를 보나?

정연주:자주 보진 않지만 그래도 모니터한다. 인터넷으로 리포트한 기자 이름까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모니터하는 건 힘든 일이 아니다.

신경민:뉴스에서 정보를 얻기보다 뉴스를 어떻게 다루는지 읽는다. 후배 기자들한테도 기사 잘 쓰고 취재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뉴스 읽는 법을 익히라고 말한다. 언론을 빼고는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는 열심히 보고 읽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정책

사회:지난 3년간 이명박 정부의 언론 정책을 먼저 되돌아보자.

정연주:두 가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구조적으로 KBS·MBC·YTN·연합뉴스 사장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조건이 하나 있다. 사장만 바뀌는 게 아니고, 내부 핵심 부서 책임자가 바뀌는 또 하나 요인이 부가적으로 있다. 언론사 내부를 보면 저널리스트적 언론인 본연의 자세를 지닌 그룹이 있고, 그렇지 않고 정치 성향이 강하며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친한나라당 혹은 조·중·동과 거의 같은 집단이 있다. 내가 KBS에서 본 바로는 정치적 성향이 강한 그룹이 거의 60% 이상 되는 것 같다. 사장 시절 최문순 MBC 사장한테도 물어봤는데, 최 사장은 ‘우리는 더 많습니다’라고 하더라(웃음). 정권이 바뀌고 지도부(사장)가 바뀌면서 이 사람들이 핵심 구실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정치적 성향을 감춰왔다.

신경민:나는 사회 각 부분의 정치화를 심각한 문제로 본다. MBC 내부에 정확히 60% 이상이 되는지 퍼센트는 잘 모르겠지만, 정 전 사장 지적대로 민주화 이후에도 MBC 사장 인사 등에서 정치권과 관계를 끊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인물 내지는 정치권에서 발탁한 인물들이 편성을 주무른다.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방송 내지 언론적 수준이 구성원들이 보기에 높지 않다. 이렇게 하향 평준화된 인사들이 몇 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면 방송 수준은 점점 더 떨어진다. 이런 악순환을 겪게 되면 ‘방송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내 출세와는 전혀 연관이 없구나’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조직적 이완이 이뤄지고, 정치화된 일단의 ‘라인’이 형성된다. 그런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세속적 출세를 하고 뉴스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하향 평준화·정치화를 이끈다.

 

 

ⓒ청와대제공이명박 대통령이 1월17일 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에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회:MBC는 최근 김재철 사장이 노조에 단체협약(단협) 해지 통보를 했다.

신경민:1988년 MBC 노조가 생긴 이래 단협 해지는 처음이다. 여러 쟁점이 있지만 핵심은 국장 책임제이다. 국장 책임제는 외압을 막을 방패로 도입한 역사성이 있다. 회사는 국장 책임제 대신 본부장 책임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를 들면 〈PD수첩〉 같은 경우 기획부터 제작 방영까지 임원회의에서 결정한다. 밖에서는 MBC 내부가 또 시끄러운가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실제로는 마지막 마지노선을 놓고 싸우고 있다.

사회:신문 쪽 상황을 진단해보면?

정연주:MB 정권 3년 동안 조·중·동은 정권 앞잡이 노릇을 한 게 아니라 스스로 권력 이상의 힘을 가진 역할을 했다. 경제신문도 거의 친MB 논조였다. 내가 신문기자 된 지 41년이 되는데, 언론이 이렇게 한쪽으로 기운 적이 없었다. 거의 90대10이다. 90% 정도가 한쪽 이야기다. 강자의 논리, 보수적 가치 목소리만 나온다. 여기에 조·중·동 방송, 매경방송, 연합뉴스 보도채널이 생기면 적어도 제도권 언론의 99%가 수구 빛깔을 띠게 될 것이다.

신경민:동의한다. 신문의 경우에는 내 일을 겪으면서 깜짝 놀랐다. 조·중·동 덕을 봤다고나 할까? 사설과 칼럼에 내 이름이 등장하더라(웃음). 그런데 정작 앵커 쫓겨날 때는 보도 자체를 안 하더라. 그 사람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사실(fact)은 다뤄야 한다. 미국 경우를 보면 매케인을 지지하든 오바마를 지지하든 일단 사실은 쓴다. 한국 언론은 이제 사실 자체를 안 쓴다.

한국 언론은 이제 사실 자체를 안 쓴다

정연주:방송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핵심 기능이 사실 보도와 권력 비판인데 사실 보도를 안 한다. 1980년대에는 정치 권력이 언론 자유를 근원적으로 없애버렸다. 반면 지금 조·중·동은 스스로 알아서 정권이 부담을 가질 기사는 아예 안 다룬다. 신종 사실 왜곡이다. 또 같은 사안을 두고 잣대가 달라졌다. 고위공직자 청문회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 조·중·동 사설을 보면 결격 사유가 조금만 나와도 난도질했다. 지금은 넘어간다. 그래서 난 조·중·동을 언론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안에서 젊은 기자들이나 저널리즘에 투철하려고 하는 기자들이 힘든 싸움을 하지만 좌절되고 있다.

신경민:그런 사람들은 변두리에 가 있다(웃음).

사회:MB 정부 등장 이후 언론의 역행을 어느 정도 예상했나?

 

 

 

 

ⓒ시사IN 안희태“MB 정권 3년 동안 조·중·동은 정권 앞잡이 노릇을 한 게 아니라, 스스로 권력 이상의 힘을 가진 역할을 했다. …언론이 이렇게 한쪽으로 기운 적이 없다. 거의 90대10이다.”정연주

정연주:내 경우를 얘기하면, 나를 퇴임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쌓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쉽게 쫓아내지 못할 줄 알았다. 남북 평화 구도도 (이렇게까지) 뒷걸음질 칠 줄 몰랐다. MB가 집권해도 절차적 민주주의는 훼손하지 않고 실용주의나 성장 위주 경제정책을 펼 것으로만 봤다. 내가 너무 순진한 건지, 완전히 내 상상과 예측을 뛰어넘었다(웃음). 나를 해임하고 배임죄로 기소했다(정연주 전 사장은 피고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처분 무효청구소송을 냈고 1,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검찰이 기소한 배임 혐의 역시 1, 2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도 당시 검찰 수사를 지휘한 최교일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검찰 핵심 요직인 검찰국장에 올랐다). 신경민 앵커도 쫓아냈다. 김제동씨며 김미화 블랙리스트 사건 등 조폭들이 하는 짓을 하고 있다. 솔직히 전혀 예상 못했다.

신경민:난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재벌이라는 구조 속에서 훈련된 사람들이 (정권에) 많이 포진해 있어서 재벌 속성을 고려할 때 별로 기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전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감사원·검찰 등 전 기관이 동원되었다. 진행되는 절차나 결과의 질을 보면 내가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저질이더라. KBS 안에 정치적 그룹이 60% 정도라고 정 전 사장이 지적했는데, 검찰과 감사원 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정치화되었고 전부 출세만 하려 한다. 검사도 기자도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다. 진정한 관료가 사라졌다. 유능한 관료, 유능한 언론인을 찾기 힘들다.

▶종편과 언론 환경

사회:지난 3년보다 앞으로 언론 환경이 더 바뀔 것 같다. 종편 때문이다. 누리꾼들이 ‘조중동 매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신경민:기발하다(웃음). 종편은 정치적 동기에 함몰된 비상식의 결과다. 방송의 공공성 때문에 진입 장벽을 두었다. 하지만 종편으로 규제를 완전히 풀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방송 시장이 언론 시장뿐 아니라 다른 산업, 정치·경제·사회에까지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방송 문제가 국가적·사회적·역사적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그래서 핵심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이제 종편 문제는 시작·초입 단계인데 결국 문제를 계속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연주:앵커 출신이라 정교하고 부드러운 표현을 쓰셨는데, 트러블 메이커 정도가 아니고 많은 분야를 황폐화시킬 것이다. 첫째, 방송 생태계를 황폐화시킬 것이다. 둘째, 광고 시장을 포함한 시장 질서를 황폐화시킬 것이다. 셋째, 민주주의의 다양성이 언론에 의해 보장되는 건데, ‘조중동 매연’까지 생기면 한쪽으로 쏠려 여론의 다양성이 설 자리가 없으니 민주주의까지 완전히 황폐화된다.

사회:구체적으로 지상파 방송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 거라 예상하나?

정연주:종편은 철학 부재에 더해 정치적 욕망의 결과물이다. 정치적 이익집단과 신문사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생긴 괴물이다. 정치 이익집단, 이른바 수구 집단 입장에서 볼 때는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10년 동안 방송 때문에 권력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이 본 게 일본 모델이다. 공영방송 NHK는 저널리즘적 기능이 거세된 조직이다. 예산을 국회에서 승인한다. 방송사 예산을 국회에서 승인하면 제작 자율성이 없어진다. 한나라당에서 KBS 예산권 가져가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니혼테레비(요미우리신문), 테레비아사히(아사히신문) 등 일본 민영방송 5개는 일본 신문들이 가지고 있다. 민영방송은 저녁 뉴스도 연예인이 앵커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언론 환경이 54년 자민련 집권의 바탕이 됐다고 볼 수도 있다. KBS를 NHK처럼 만들고, 그 다음 지상파에 대항하는 새로운 형태의 방송 매체로 신문사 소유 종편을 만들어 이른바 언론 토양을 일본처럼 만들려는 것이다. 여기에 조·중·동 처지에서는 종편을 생존의 발판으로 삼았다. 일본 메이저 신문이 방송 시장에 뛰어들 때, 방송 날개 달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했다. 똑같은 논리다. 보수 세력의 권력 유지 욕구와, 조·중·동의 생존 욕구가 결합하면서 종편이라는 괴물이 나왔다.

 

 

 

 

ⓒ시사IN 조남진“종편 4개의 생존을 위해서는 특혜를 주어야 한다. 황금 채널 배정, 광고 규제 완화 등…. 종편 선정 발표가 난 다음 날부터 조·중·동은 특혜 리스트를 꺼내며 하나하나 요구하고 있다.”신경민

신경민:타이완 쪽도 참고가 될 것이다. 1990년대 초 타이완은 종편을 무더기로 허용했다. 지상파가 3개에, 종편·뉴스 채널까지 13~14채널이 방영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타이완이 종편을 하기 전에는 수입할 만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 일색이다. 타이완에는 저널리즘도 사라졌을 뿐 아니라 프로그램도 사라졌다.

정연주:종편이라는 괴물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그 재앙이 처음에는 방송 콘텐츠에서 나타날 것이다. 오락 프로그램이나 드라마가 한류를 일으킬 수 있었던 건 인력과 재원이 뒷받침된 지상파가 가진 힘 때문이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 〈시크릿 가든〉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몇 번 실패한 뒤에 인기를 끌었다. 종편은 그럴 여력이 없다. 첫째, 인적 자원이 없고 둘째, 실패해도 버틸 만한 재원 자체가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니까 타이완처럼 저질 막장 오락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싸구려 드라마를 외국에서 수입할 것이다. 광고 시장에 몰고 올 재앙은 더 끔찍하다. 종편이 직접 영업하겠다는 건데, 조·중·동의 조폭 습성을 볼 때 ‘광고 안 줘? 그럼 기사로 죽인다!’라는 식으로 나올 것이다. 광고업계 폐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셋째, 민주주의에도 재앙이다. 정권이 바뀌면 재허가 과정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미국의 폭스뉴스를 능가하는 보도 행태를 보일 것이다.

정부, 종편 4개 허가로 공영방송 포기

신경민:중앙(일보) 종편에 테레비아사히 자본이 참여하고 있는 부분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자본은 결국 일본 프로그램 수입의 발판이 될 것이다. 이렇게 혼탁한 시장이 형성되면 KBS· MBC·SBS도 무관할 수 없다. 우리는 종편 허가로 공영방송을 포기했다고 할 수 있다. 품위를 지키면서 방송하던 시대는 갔다. 난장판 속에서 고고하게 살 수는 없다. 전체적으로 방송 시장이 힘들어지고 방송 관련 여타 산업도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이건 국가적인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가 될 것이다.

사회:종편을 한꺼번에 4개나 허가해 생존 여부도 관심사다. 4개 종편이 자생력이 있을까?

신경민:구체적으로 짚자면 지상파 광고 시장 규모가 2조원 정도이다. 전체 광고 시장은 8조원 정도 된다. 결국 아무리 광고 시장을 확대한다고 해도 이 굴레에서 몇 천억 정도 늘지, 조 단위로 늘 수는 없다. 4개나 허가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특혜를 줘야 한다. 황금채널 배정, 광고 규제 완화 등 눈에 보이는 특혜뿐 아니라 지금까지 가려졌던 각종 특혜 조치가 뒤따를 것이다. 예를 들면, 종편들의 방송통신발전기금 면제 요구 등이다. 초기에는 법률적·정치적으로 다 배려를 해줘야 할 것이다. 종편 선정 발표가 난 다음 날인 1월1일자 신문부터 조·중·동은 특혜 항목, 이른바 ‘쇼핑 리스트’라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요구하고 있다.

정연주:문제는 특혜를 주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다. 신 앵커도 지적했지만 방송은 공공재이다. 여러 가지 규제가 많다. 방송은 공공재니까 편성 비율 및 광고 비율 규제를 받는다. 지상파는 중간광고도 못한다. 60분짜리 프로그램을 예로 들면 15초짜리 광고를 24개 이하로 하라는 등 구체적인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상파 규제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종편이 먹고살 게 없다. 중간광고도 허용하고 그동안 금지된 의약품 광고도 허용하고 광고 총량제도 허용하고 황금 채널도 주고…. 특혜 없이는 존립이 어려우니까 온갖 규제를 풀면서 특혜를 줄 것이다. 당장 초기 자본으로 방송기기 수입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거 들여올 때부터 관세 특혜를 달라고 할 것이다.

신경민:세제 혜택도 반드시 요구할 거다.

정연주:신 앵커가 얘기한 조중동 매연이 요구하는 ‘쇼핑 리스트’ 이게 전부 다 시장 질서를 어기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라도 5년마다 하는 심사 때 제재감이다. 이번에 보니 심사 과정도 의혹투성이더라.

신경민:이번 심사 특징을 보면, 지난 정권의 경우 형식적으로라도 기준을 맞추려고 노력했는데, 이번에는 절차적·형식적인 것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냥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구색은 맞추는 법인데 안면몰수한 것 같다. 관료의 하향 평준화도 아니고 끝없는 하향화이다. 관료들이 이렇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보면서 놀랐다.

정연주:맞다. 관료든 심사하는 전문가든 최소한의 형식은 만족시켜야 하는데, 예를 들면 ‘공적 책임·공정성·공익성의 실현 계획’ 항목에서 조·중·동이 1~3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할 수 있을까. 이번 심사 내용은 공개되어야 한다. 나중에 다 청문회감이다. 종편 자체가 괴물이지만, 그 과정도 굉장히 괴물스럽다.

신경민:정보 공개하면 깜짝 놀랄 사실이 많이 숨어 있을 것이다.

 

 

 

 

ⓒ시사IN 조남진지난해 12월31일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이 종합편성 채널과 보도전문 채널 사업자를 발표하고 있다.


종편 선정 청문회 꼭 해야

정연주:나는 조·중·동의 조폭적 생리를 알기에 처음부터 다 줄 것으로 생각했다. 셋이 다 안 먹거나 먹으면 다 먹어야지, 누구 하나 먹는 건 절대 못 보는 게 조폭이다. ‘나와바리’ 빼앗기고 가만히 있을 조폭이 있나(웃음).

신경민:많은 게 조폭으로 설명된다.

정연주:조·중·동의 생리다. 셋 중 하나만 주면 못 받은 두 개는 완전히 2류로 전락해버린다. 그래서 온갖 패악질을 많이 저지르고 정치·사회적으로 황폐화시키겠지만, 역설적이게도 4개 모두를 준 게 좋은 점도 있다고 본다.

사회:이른바 ‘조·중·동 일망타진론’을 말하는 건가?

정연주:특혜 안 주고 정상적인 시장 원리에만 따르게 두면 자동적으로 소멸하게 되어 있다. 하나 정도 살아남을까?(웃음)

사회:온갖 특혜를 받으면 초기에는 고전하겠지만 그래도 유지되는 것 아닌가?

정연주:그렇지 않다. 길게 보면 괴물이 나타나서 황폐화시키겠지만, 희망적인 게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이 집단이 방송이라는 독약을 마셔버린 것이다. 많은 위험이 따르는 독약을 마셨다. 안 마셨으면 오래 갔을 것이다. 이제는 시장에 의해서든, 시민적 캠페인에 의해서든 어느 시점에 가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 길을 운명적으로 들어섰다. 죽음의 덫에 갇혀버렸다. 그게 희망이다(웃음).

신경민:혼자 죽는 게 아니라 물귀신으로 같이 죽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웃음).

사회: 최근 이해찬 전 총리가 5년 단위로 사업권이 갱신되는 방송제도에 착안해, 2015년 종편 사업자 사업권 회수를 야당 후보들이 대선 공약으로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조건부 허가는 있었지만 회수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정연주:결국에는 국민들이 끊임없이 감시하고 압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정권이 바뀌고 괜찮은 사람이 방통위원장에 앉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거대한 힘이 생겨야 할 수 있다. 먼저 지금부터 종편이 출발할 때까지 일어난 일련의 특혜 등에 대해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서 하나하나 자료를 축적해야 한다. 청문회도 꼭 해야 한다. 이렇게 시민적인 자각과 행동 참여가 있다면 (회수를) 왜 못하겠나.

신경민:공약으로 내걸고 현실화하는 것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야당도 몸집이 큰 언론사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4대강 문제 하고는 또 다르다. 결국에는 시민사회가 나서 지적하고 정치권에서 소화하는 형태로 갈 것 같다. 일단 사업권이 주어지고 방송이 시작되면 그 전의 문제는 묻혀버릴 것이다. 다만 여러 특혜가 현실화되면 방송 시작 전에 시민사회가 실감하는 단계가 있지 않을까. 시민사회가 움직이면서 정치권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곧은 소리’ 내는 매체 생존법 있나?

사회:종편 방송 시작 뒤에 곧바로 2012년 총선과 대선이 치러진다. 이때 종편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텐데.

 

 

 

 

ⓒ시사IN 윤무영KBS 노조는 지난해 7월 공정성 확보를 위한 단체협약 체결 요구 파업을 했다.

신경민:종편 도입 자체로 방송 시장에서 공영방송은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희망을 걸 수 있는 게 있다면 1970~1980년대 탄압의 시대, 어두운 시대에도 언론이 정권에 맹종하는 때에도 여론은 달랐다. 그 여론의 힘은 무섭다. 노태우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유배 보낸 건 여론의 힘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도 언론 보도와 여론 작동 방식이 다르다는 걸 보여주었다.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는 그때그때 나타나는 여론의 현상이고, 근본적인 건 여론의 힘이다.

정연주:일정한 해악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조·중·동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게 드러났다. 친한나라당, 친정권 언론의 90%가 한쪽 이야기를 떠들어도 이제는 그 영향력이 일방적이지 않다. 신 앵커가 지적한 대로 바닥에 있는 여론과 국민이 세상을 보는 눈은 조·중·동이 보는 눈과 다르다. 조중동 매연이 선거 국면에서 온갖 짓을 해도 그 영향력이 당장은 제한적일 거라고 본다.

▶종편 시대 언론의 다양성

사회:언론의 다양성과 관련해 10% 목소리를 내는 매체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정연주:지방에 강연을 가면 많이 나오는 질문이다. 조중동 매연에 대해서는 시민적 자각과 공동 행동으로 대처하자는 답이 쉽게 나오는데, 곧은 소리를 내는 매체들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답이 잘 안 보인다. 난 오바마 선거운동 예를 꼭 든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등 공신은 무브온이라는 시민사회 단체인데, 회원이 500만명이다. 우리는 시민들이 자각은 되어 있지만 참여 수준은 낮다. 가령 〈한겨레〉 〈경향신문〉 유가 부수가 50만 부가 넘어서고,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유료 회원이 몇 만명이 된다면 대기업 영향을 안 받는다. 그럼 조중동 매연에 맞서는 대항마가 된다. 길은 있다. 돌아가신 두 대통령이 유언으로 정답을 남겼다. ‘깨어 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이 그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많은 사람이 나쁜 신문은 보지 않는 게 이기는 길이라고 했다. 이제 돈도 좀 내고 시간도 좀 내야 한다. 이거 외에는 답이 없다.

신경민:미국에 온라인 매체로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프로퍼블리카〉라는 매체가 있다. 폴 스타이거 전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장과 스티븐 엔절버그 〈오리고니언〉 편집장이 의기투합해 만든 매체인데, 캘리포니아 갑부 샌들러 부부가 매해 1000만 달러를 기부한다. 조건 없이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언론에 돈을 주고, 절대로 관여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미국에 NPR이라고 특파원들에게는 교과서 같은 라디오 방송이 있다. 공영방송인데 기부금도 받는다. 2003년 맥도널드 창업자 미망인 조안 크로크 여사가 2억2000만 달러(약 2600억원) 상당의 유산을 기부했다. 평범한 시민들도 십시일반으로 기부를 한다. 우리 사회는 의식 수준은 깨어 있는데 손발이 안 따라가는 것 같다. 지갑을 열고 돈을 내고 도와줘야 한다. 그런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다른 묘안은 있을 수 없다.

정연주:안티조선 운동처럼 이른바 언론의 폐해에 징벌을 가하고 억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똑같이 중요한 게 대칭점에 있는 건강한 언론들을 어떻게 살리느냐다. 언론이 90대10으로 나뉜 상황에서 10을 어떻게 살리느냐도 또 다른 중요한 축이라는 얘기다. 지금 조건에서 여러 한계가 있지만 시민 참여밖에 없다.

사회:정리하면 오늘 대담의 핵심은 깨어 있는 시민은 지갑을 열어야 한다?(웃음)

정연주:지갑도 활짝 열고, 참여도 적극 하자.

신경민:투표만으론 안 된다. 선거와 투표를 합리적으로 하는 건 기본이다. 건강한 시민사회가 말로만, 의식으로만 존재해선 안 된다. 싱크탱크, 건강한 언론, 시민단체가 활동해야 한다. 자유민주사회가 되는 기본이다. 투표만 열심히 한다고, 투표율만 높다고 안 된다는 건 이미 우리가 여러 번 경험하지 않았나.

사회:돌아온 기자 정연주, 앵커 신경민으로 언론계 현장을 뛰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연주:일제강점기처럼 지사적 저널리스트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지금 언론인이 가져야 할 덕목은 프로페셔널리즘이다. 직업적으로 제대로 된 언론인이 되어야 한다. 사주가 쓰지 말라고 해서 안 쓰는 게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저널리스트는 그게 사실이면 쓰는 거고, 권력에 대해 비판할 건 해야 한다. 아주 간단하다. 지금은 간단한 것마저 무너져 소속된 신문사의 이념적 지향점을 추구하고, 신 앵커가 얘기한 것처럼 정치화된 의식 속에서 정치화된 집단에 봉사하는 기자가 많다. 그건 저널리스트의 기본 자세가 아니다. 기본으로만 돌아오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좀 많은 것 같다.

신경민:살아남고 출세하려다 보니 쉽지 않다(웃음). 내 경험으로 보면 옳은 행동을 하는 선배나 후배들이 세월이 지나고 나서 변질되는 것을 많이 봤다. 지금도 괜찮은 기자들이 부장이 되어서 후배들한테 엉뚱한 지시를 한다. 먹고살려고 그러는 거니까 이해는 되는데 씁쓸하다. ‘한신처럼 숨기고 있다가 때가 되면 칼날을 휘두르고 옳은 소리 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한신 같은 사람은 거의 없더라.

사회:마지막으로 두 분의 올해 계획을 묻고 싶다. 정 사장께서는 최근 ‘기자 정연주’로 상을 받았다. 2010년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정연주: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상이다. 현장 저널리스트로 마지막 글을 쓴 게 2003년 3월20일자 〈한겨레〉 1면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한 ‘야만의 시대’라는 논설이다. 이후에는 현장을 떠나 후배들 잘하게 뒷바라지해주는 언론인이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서 글쟁이가 됐는데 그 부분을 인정받은 것 같아 행복하다.

사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정연주의 증언’에서 ‘KBS의 하나회’라는 수요회 등 현직 기자들을 실명으로 비판 중이다.

 

 

 

 

ⓒ민언련 제공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들은 1월19일 서울 명동에서 ‘조·중·동 종편 취소’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실명 기사’ 쓰는 이유

정연주:우리 언론에서 기사 쓸 때 무책임하게 익명을 남발하는 못된 관행이 있다. 증언에서 실명을 거론한 것은 인간의 권리나 명예를 훼손하려는 게 아니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실명을 밝힐 것이다. 간접적으로는 항의가 있었는데, 그거야 뭐 본인들이 한 일이 있는데(웃음). 사실은 괴로운 작업이다. 떠난 조직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바람직한 건 아니다. 한 번도 우리가 역사에 대해 책임 있는 기록을 안 남겼다. KBS와 관련된 내용은 내가 제일 많이 안다. 나 말고 딴 사람이 쓸 수 있으면 내가 안 쓴다. 그러니까 악역을 하는 것이다(1월18일 오후, 〈시사IN〉 대담이 진행되던 바로 그 시각 KBS와 임직원 등 10명은 “정연주 전 사장이 작성한 허위 기사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라며 정 전 사장과 〈오마이뉴스〉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정연주 전 사장은 다음 날인 19일 이뤄진 전화통화에서 “아직 소장을 받아보지 못했다. 법정에서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신경민 앵커는 교수이자 학생이 되었다.

신경민:지난해부터 ‘강제’ 안식년이다. 정년퇴직 1년 앞두고 임금을 아끼려고 무조건 안식년을 하게 했다. 지난해 9월부터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강의를 맡았고, 고려대에서는 언론학 석사 과정 학생이다.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라는 책을 낸 이후 강연 요청이 더 늘었다. 주로 대학과 시민단체 요청을 받아 헤매고 다닌다. 부산·대구를 포함해 영남 지역에서 많은 초청을 받았고,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많은 지지와 인기를 체감하는데, 이런 인기가 왜 방송할 땐 안 나타났나 싶다(웃음).

사회:지난해 은평 재보선 유력 후보로 이름이 올랐다. 다음 총선에 출마하는가?

신경민:정치에 뜻 있는 사람은 아니다. 앵커에서 쫓겨날 때 청와대에서는 정치하려고 저런다는 말도 흘러나왔다는데,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고 지극히 언론 원칙에 충실했다는 건 동료나 후배들이 다 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MB 정부 측근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앵커에서 잘라줌으로써 대단한 인물로 만들어주었다. 그것 때문에 정치권에서 무슨 인사가 있을 때마다 내 이름이 거론된다. 정치적 인물이 아닌데 정치적 인물로 만들어주었다.

사회: 출마 부인은 안 하시는 것 같다. 정 사장은 어떠신가?

정연주:(신경민 출마와 관련해) 저 정도 얘기했으면 사회자가 알아서 해석해야지(웃음). 난 출마 안 한다. 방송은 정책적으로 결정되는 게 많아 방송을 잘 아는, 저널리즘에 충실한 사람이 정책에 참여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신 앵커는 두말 안 하고 정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신경민 웃음). 난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하고 싶다. ‘정연주 증언’에 아직도 쓸 게 많다(웃음).

녹취 도움:김경희 인턴 기자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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