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8일,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가브리엘 기퍼즈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을 포함해 19명이 총격을 받았다. 가해자는 정신이상 증세가 있는 한 청년. 기퍼즈 의원은 보수색 짙은 애리조나 주의 공화당 우세 지역구에서 세 번 연속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을 정도로 인기 정치인이다. 또 승마와 악기 연주에도 능하고, 우주비행사를 남편으로 둔 민주당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그런 그녀가 제러드 러프너(22)라는 한 정신이상자의 총격을 받고 중태에 빠진 것이다.

뇌에 관통상을 입은 기퍼즈 의원은 천행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러프너의 총격으로 연방판사를 포함해 6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러프너는 범행 현장에서 살인을 비롯한  다섯 가지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범행 동기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러프너의 범행이 과연 정신분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기퍼즈 의원을 치밀하게 겨냥한 ‘정치 테러’인지 여부는 최종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 그렇지만 현재 미국 내 분위기는 러프너의 범행이 근래 보수와 진보 세력 간에 첨예하게 부딪쳐온 반목과 혐오·불신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나아가 공화당과 민주당 간에 증오로 얼룩져온 정치·사회 문화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국민 가운데 45%가 러프너의 범행이 정치적 동기에서 촉발됐다고 보고 있는 것(CBS 여론조사)도 이런 정서를 반영한다. 

ⓒAP Photo총격 사건으로 중태에 빠진 가브리엘 기퍼즈 민주당 의원과 그의 남편.
현재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러프너의 범행 동기이다. 그는 도대체 언제부터 어떤 동기로 기퍼즈 민주당 의원을 대상으로 삼아 범행을 감행했을까. 또 그의 범행이 단독 소행인지, 아니면 제3의 인물과 연계되었을 가능성은 없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러프너 본인이 직접 범행 동기를 밝히지 않고 있어서 미국 주류 언론도 현재로서는 여러 정황 증거로 범행 동기를 분석한다.

극우주의 영향 많이 받은 러프너

ⓒAP Photo정치인·판사 등 19명에게 총격을 가한 러프너(위).
먼저 그 가운데 하나가 러프너가 철저한 반정부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나 마이 스페이스에 띄운 내용과 탐독하는 책들이 이를 방증한다. 실제로 그의 탐독서에 올라 있는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나 조지 오웰의 〈1984년〉 〈동물농장〉 〈공산당 강령〉 등은 모두 ‘개인 대 전체주의 국가’라는 하나의 공통 주제를 갖고 있다. 즉 개인이 자기의 사고 행위를 통제하려 하지만, 정부는 그런 개인의 통제력을 탈취하려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러프너는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서도 “난 정신 조종자가 돼 모든 신념과 종교를 통제할 수 있다”라고 떠벌리기도 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가 정신분열증 비슷한 증상을 가진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는다.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폭력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가 러프너와 전문대학을 같이 다닌 친구의 말을 인용·보도한 것을 보면 러프너는 아무런 동정심이나 감정을 모르는 냉혈 인간이었으며, 불안정한 행동 때문에 다섯 번이나 정학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아무튼 정신이상 증세를 지닌 러프너는 기퍼즈 의원에 대한 범행을 사전에 철저히 계획한 것 같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그의 아파트에서는 ‘나의 암살’ ‘나는 사전에 계획했다’ ‘기퍼즈’라고 휘갈겨 쓴 봉투가 발견됐다. 또 2007년 8월30일자로 된 기퍼즈 의원 명의의 감사장도 발견됐다. 그가 당시에도 기퍼즈 의원이 주최한 행사에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주목할 점은 그가 2007년 기퍼즈 의원의 행사장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데 불만을 품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당시 러프너는 기퍼즈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어떻게 단어가 특정한 의미를 나타내는지 당신은 아는가?”라고 물었고, 이에 대해 기퍼즈 의원이 시큰둥하니 스페인어로 답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느낀 러프너는 이런 불만을 친구인 브라이스 티어니한테 털어놓았다. 티어니는 탐사전문 잡지 〈마더 존스〉에 “러프너는 기퍼즈 의원을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꺼려한 사기꾼으로 간주했다”라고 밝혔다.

ⓒAP Photo세라 페일린.
문제는 러프너가 어떤 정치 소신이 있기에 하필이면 기퍼즈란 민주당 현역 정치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느냐는 점이다. 러프너와 비슷한 반정부주의자 티머시 맥베이는 극단적 의사 표현으로 1995년 정치인이 아닌 오클라호마 주 청사를 목표로 폭탄 테러를 감행해 사상자 수백명을 낸 바 있다.

페일린의 선동 탓에 범행?

흥미로운 사실은 러프너가 한때 금이나 은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기존 달러 화폐는 가치가 없다며 달러화에 의한 채무 변제를 철저히 거부했고, 대체화폐를 주창한 전력이 있다는 점이다. 러프너의 글에 자주 등장하는 “정부가 문법을 통해 국민을 통제한다”라는 주장도 실은 극우 행동주의자로 악명 높은 데이비드 밀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극우주의 연구자 ‘남부빈곤센터’의 마크 포톡 소장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인터뷰에서 “러프너가 나름대로 철학이 있기보다는 주변의 다른 생각, 특히 극우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이번 범행이 러프너 개인적 정신 상태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 미국 언론이나 정가의 관심은 오히려 그의 범행을 증오와 선동 정치의 산물로 보는 경향이 더 짙다. 이런 시각은 범민주계와 진보 인사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데, 이들은 특히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기퍼즈 의원 피격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보고 있다. 페일린 전 지사는 지난해 3월 오마바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의료보험 개혁법이 마침내 의회를 통과하자 자신의 트위터에 보수적 유권자들을 향해 “물러나지 말고 재장전하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11월 의회 중간선거 때는 지도에 ‘탈환 20석’이란 제목을 단 뒤 민주당 현역 의원 20명을 반드시 낙선시켜야 할 대상으로 정하고 이들의 지역구에다 십자 과녁을 표시해 페이스북에 올려 충격을 던졌다. 바로 그 20명 가운데 기퍼즈 의원이 포함된 것은 물론이다. 기퍼즈 의원은 당시 MSNBC에 출연해 “우리가 페일린의 목표 대상에 올랐는데, 문제는 우리 지역을 사격 조준용 십자선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라며 공개적으로 경악을 표시했다.

세라 페일린은 지난해 의회 중간선거 때 민주당 집권 지역에 십자 과녁을 표시한 지도(위)를 올려 충격을 주었다.
자신을 향한 세간의 따가운 시선과 주류 언론의 비판적 논조가 이어지자 페일린은 그간의 침묵을 깨고 “언론이 나를 향해 피를 부르는 중상모략을 일삼고 있다”라고 맹비난했다. 페일린의 이 같은 반격은 적절치 못한 용어 사용 때문에 오히려 거센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수 유권자들에게 영향력이 큰 극우 방송인 글렌 벡은 “미치광이가 한 짓을 놓고 왜 페일린을 가지고 난리법석이냐?”라면서 페일린을 적극 두둔하고 나섰다.

이런 증오와 독설 정치문화를 조장한 공화당 인사가 페일린만은 아니다. 특히 지난해 오바마 행정부가 최대 국정과제인 의료보험 개혁안을 추진하자, 이에 맞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풀뿌리 정치연합체인 티파티 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면서 보수와 진보, 공화와 민주 두 세력 간의 증오와 반목·불신·혐오는 절정에 달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때 민주당 현역 연방 상원의원 해리 리드에 맞서 티파티 후보로 나선 샤론 앵글 극우 후보는 “의회에 적들이 있다. 우리가 수정헌법 2조에 의존하는 상황에 가지 말기를 바란다”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수정헌법 2조란 국민의 무기 휴대권을 서술한 조항인데, 앵글의 말을 해석하자면 티파티 운동에 반대하는 적대 세력에 대해 무기를 들고서라도 승리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말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오바마 “대화 문화, 너무 양극화되었다”

물론 러프너의 범행이 페일린 전 지사를 비롯한 일부 공화당 인사들이나 티파티의 무책임한 선동정치 때문에 촉발됐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뉴욕 타임스〉도 사설을 통해 러프너의 행위를 공화당과 연계하는 것은 잘못이라면서도 “공화당과 열렬한 보수 언론이 이민자들과 복지 수혜자들을 사악시하고, 많은 국민에게 정부가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국민의 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데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국민에게 이런 독설과 불신의 정치문화를 퍼뜨린 데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1월12일 애리조나 주를 방문해 행한 특별 연설에서 “우리의 대화 문화가 너무나 양극화됐고 세상의 모든 악을 너무도 쉽게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 탓으로 돌리는 지금,우리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서로가 상처를 내는 게 아니라 치유하는 방식으로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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