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말기, 때로는 낮에 지하철 타기가 부담스러웠다. 경로석에 모여 앉은 어르신들이 큰 소리로 노무현 대통령을 욕해대곤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씹기’가 전 국민적 오락거리였다고는 하지만, 그 시절 그분들이 드러내는 적개심은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그런 광경을 보기 어렵다. 대신 인터넷·트위터에 접속하면 가관이다. 구제역·물가대란은 물론, 심지어는 드라마 재미없는 것도 대통령 탓이란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들이 모인 커뮤니티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여성들의 평가는 남성보다 박한 것으로 나온다. 심할 때는 10% 포인트 넘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최대의 안티 집단이 노인들이었다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최대 안티 집단은 여성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럴까. 출범 초기부터 먹을 것 갖고 인심을 잃어서? 애들 밥 먹이고 예방주사 맞히는 예산까지 깎아버려서? 그도 아니면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이 정부 하는 짓이 견딜 수 없이 촌스러워서?

이런 이유들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 나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만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좀 더 예민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존재적 특수성이 답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2년 전 바로 이때 발발한 용산참사 현장에 도착해 숨이 턱 막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강자를 위해 약자는 짓밟혀도 된다는 논리. 이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여타의 생명은 짓밟혀도 된다는 논리, 체제를 위해서라면 민간은 희생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용산의 비극이 4대강과 연평도의 참상으로, 끝내는 산 채 파묻혀지는 소·돼지의 비명으로 이어진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어디, 여성만이랴. 지난 호 이해찬 전 총리와 조국 교수가 진보 집권 방안을 궁리한 데 이어, 이번 호에는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전략가 두 사람(윤여준·박세일)이 만나 보수 재집권 방안을 논했다. 읽다보니 지난해 박세일씨가 주도한 ‘선진통일연합’ 발기인 대회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당시 축사를 위해 단상에 선 도법 스님은 이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른 채 참석했다고 운을 뗀 뒤 “그런데 오늘 이 자리를 둘러보니 누이들이 보이질 않네요. 젊은 벗들이 보이질 않네요”라고 말했다. 선문답 같은 말이었지만, 나는 그때 스님이 본질을 꿰뚫었다고 이해했다.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기를 원한다면 누이들과 젊은 벗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라, 죽음에 상처받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생명을 다독이라.’ 용산참사 2주년, 스님의 설법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기자명 김은남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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