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의 ‘아까운 걸작’ 지면은 그 설치 의도가 꽤 가상하다. 출판 편집자들에게 매주 ‘심혈을 기울여 펴냈으나 출판시장에서 인기를 끌지 못한 저작물’을 소개해달라고 조르고 있으니 말이다. 첫 ‘비극의 주인공’은 〈워낭 소리〉와 같은 주제(소와 농부)를 다루었으나, 흥행에서는 정반대 ‘소걸음’을 걸은 〈뭐라, 나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이지누 지음, 호미. 제100호)였다.

〈마리…〉를 찾게 만든 편집자의 소개 글

그 책을 소개한 이후 한 달에 서너 권씩, 코피를 쏟아가며 만들었으나 흥행에서 쓴맛을 본 책들이 지면에 등장했다. 올해 들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주받은 걸작’ 40권이 때로는 애타게,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소개되었다(84쪽 표 참조). 출판 편집자들의 ‘변’은 마치 인정받지 못하는 자식을 변호하듯 숙연하면서 유려했다. 해서 ‘첫 독자’로서 본의 아니게 덜컥 낚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후루야 우사마루 만화, 애니북스)에 홀렸다. 제165호 마감 날 밤 11시께 천강원 애니북스 편집장의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마리…〉) 소개 글을 편집하는데, ‘…마니아 사이에서 숨은 걸작이라고 칭송받는 작품’이라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다음 단락(아래)에서는 아예 코가 꿰이고 말았다.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지금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과감한 설정과 완벽한 스토리, 아름답고 치밀한 작화로 판타지의 약점이라 인식되어온 리얼리티와 감동을 극대화시켰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엄청난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치밀한 작화 또한 볼거리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치밀함과 완성도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웬만한 화가도 두 손 두 발 들 수밖에 없는 굉장한 그림들이 즐비하다.”

결국 편집을 하다 말고 이미 퇴근한 문화팀 담당 기자 자리로 갔다. 일별하지 않으면 도저히 궁금해서 일을 진행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마리…〉가 없었다. 어지럽게 널린 책들을 쑤석거리는데, 이미 천 편집장의 글을 읽은 데스크가 한마디 툭 던졌다. “〈마리…〉 찾아요? 나도 찾아봤는데, 없던데….” 이후 그 밤에 두 기자가 더 그 책을 찾아 헤맸으니, 단단히 낚인 셈이다(그럼 〈마리…〉는 어디로? 이미 걸작이라는 소문을 들은 한 기자가 잽싸게 챙겨서 퇴근해버린 것. 나중에 천 편집장에게 들으니, 〈시사IN〉에 소개된 뒤 그 책을 찾은 독자가 꽤 있었다…).

편집자들의 글에 현혹되어 읽어내린 걸작은 〈마리…〉뿐만이 아니다. 기초과학을 다룬 〈원더풀 사이언스〉(지호 펴냄, 제163호)에도 반했다. 이번에도 “…탄탄하게 전개되는 논리 정연함, 자연계의 놀라운 신비로움,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사실을 새록새록 알게 하는 즐거움과 희열, 지적 자극과 만족을 주는 데는 이 (과학)책만한 것도 없다”라는 편집자(김희중)의 글에 먼저 끌렸다.

어떤 내용이 담겼기에 이같이 찬사 일색일까. 다행히 이번에는 사내 책꽂이에 〈원더풀 사이언스〉가 남아 있었다. 저자는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나탈리 앤지어. 10쪽도 읽기 전에 그녀의 글에 매료되고 말았다. 우리가 아는 과학 상식이 얼마나 그릇되었는지, 확률이 어떻게 조작되고 거짓말을 하는지, 지구의 판과 공기가 어떻게 충돌하고 새롭게 태어나는지를 세밀하게 알아가는 과정은 신나는 일이었다. 꽤 두꺼운 책임에도 쉽게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밖에도 남몰래 챙겨본 ‘아까운 걸작’이 한두 편이 아니다. 몰바니아라는 있지도 않은 나라를 소개하며 많은 여행 정보에 회의를 갖게 한 〈우리는 몰바니아로 간다〉(산토 실로로 지음, 오래된미래, 제157·158호), 시적이고 도발적인 문체로 아프리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 헤밍웨이로 하여금 작가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아프리카를 날다〉(베릴 마크햄 지음, 서해문집·제152호)도 한동안 손에 쥐었던 걸작이다.

개인 ‘독서 목록’에 넣어두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읽지 못한 아까운 걸작도 적지 않다. ‘실제조차 불분명한 이데올로기라는 게 뼈와 살이 있는 인간을 어떻게 희생시키는지를 고발’한 〈바다의 침묵〉(베르코르 지음, 열린책들·제135호), ‘과학을 이야기하고, 과학을 이야기하는 미디어를 이야기하고, 과학기술 안에 숨겨진 욕망과 슬픔을 담았다’는 〈문명의 관객〉(이충웅 지음, 바다출판사·제132호), 그리고 올해 초 부모님 묘의 이장을 고민할 때 만났던 〈대한민국 명당〉(이규원 지음, 글로세움·제124호)이 그랬다.

책을 구(매)하지 못해 읽지 못한 (치매 문제를 다룬) 〈어머니를 돌보며〉(버지니아 스템 오언스 지음, 부키·제122호)와 거대 식량 기업 몬산토의 놀라운 비밀을 낱낱이 파헤쳤다는 〈몬산토〉(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 이레·제121호)도 꼭 일독하겠다고 마음먹은 책으로 기억한다. 

물론 편집자들이 내세운 ‘아까운 걸작’ 모두가 아까웠던 것은 아니다. 편집자가 공들여 만든 책이 잘나가지 않아 빛을 보게 할 요량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한 책도 있었다. 그래서 몇 장 넘기지 못하고 슬그머니 밀쳐놓은 진짜 ‘저주받은 걸작’이 되어버린 책도 있었다. 편집자가 “자신이 평생 품고 살아온 상처의 근원들, 의식 내부에서 펼쳐지는 고통의 밑그림을 그려준 존재들을 담았다”라고 추켜세운 한 에세이집은 너무 현학적이고 어려워 몇 장을 넘기지 못했다. 다른 몇 권도 비슷한 이유로 책꽂이에서 먼지를 마시고 있다. 

그러나 1년간의 ‘아까운 걸작’을 다시 일별해보니 출판 편집자들의 치열한 고민과 노고가 읽혀, 밀쳐둔 책들을 다시 붙잡고 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렇다. 책도 물빛처럼 보는 관점, 독서할 때의 감성에 따라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부디 다양한 시선으로 아까운 ‘걸작’을 챙겨서 그 책들이 주는 ‘내면의 희열, 아릿한 슬픔, 저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듯한 감동’을 느끼기 바란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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