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약력 1959년 경기도 파주 출생. 1983년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1987∼1995년 전노협 쟁의부장, 쟁의국장, 조직국장 역임. 2001∼2003년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17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재정경제위원회)

- 당내 경선에서 ‘심의원이 졌지만, 이겼다’고 한다. - 진 건 진 거다(웃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다들 내 출마를 경력 관리 차원으로 보았다. 결선에서 47%를 얻은 것보다 1차에서 노회찬 후보를 딛고 일어선 것을 더 놀랍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심바람’이 작용했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당이 인물을 교체하고 경제와 여성을 콘셉트로 나갈 경우, 대선 구도가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당원들이 많은 것 같다.

- 경선에서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세 후보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나? 한마디로 말하면. 두 후보는 인물 중심론이었고, 나는 비전·정책 중심론이었다. 권 후보는 경륜을 내세웠고, 노 후보는 감동적인 전달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당의 변화와 혁신, 비전과 정책을 내세웠다. 서로 포인트가 달랐다. 2004년도 4·15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은 검증 대상이 아니었다. ‘제도권 밖 원외 정당도 원내로 들어와 해봐라’, 어떻게 보면 국민으로부터 초대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민노당도 검증 대상이다. 3년 동안 국민들이 민노당을 지켜 본 시선은 대단히 엄중하다. 실제 서민들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비전과 실력을 요구하고 있다. 민노당이 기성 야당에 불과하다면, 국민들이 힘 있는 야당을 좋아하지 힘없는 군소정당을 주목할 리가 없다. 감히 말하자면, 당의 비전과 정책을 주도하는 선거를 리드했다. 다른 두 후보는 인물 중심으로 가다보니까 정책은 거의 준비를 안 한 것 같다.

- 경선에서 ‘정파 선거’를 비판했는데. 흔히 말하는 NL, PD는 1980년대 노선이다. ‘자주’와 ‘평등’은 이미 민노당 창당으로 종합된 것이다. 여기에 21세기 진보적 가치인 여성, 환경, 인권, 평화 등 의제를 더 확장하고 실현하는 구체적 청사진을 만들어야 했는데, 낡은 노선에 안주했다. 낡은 정파에 의존한 ‘족보정치’가 변화의 에너지를 소진시켜 갔다. 여러 당 대표가 바뀌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된다. 이번 선거에서 분명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본다. 특정 정파 그룹에서 정파 투표를 결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졌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제는 실력과 역량, 노선과 능력에 따라 선택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당원들에게 확산되었다고 본다. 또 이번 경선은 정당 정치의 모범을 보였다. 정책 중심 선거가 되면서 메시지가 있는 경선이 되었다. 4·15 총선 이후 민노당이 최고로 주목받은 계기가 되었다.

- 이번 대선을 어떻게 보는가. 올해 대선의 시대정신은 경제와 평화다. 무엇보다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은 서민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이다. 각 당마다 말로는 평화를 말하기 때문에 평화는 표면상 쟁점이 되기 쉽지 않다. 평화도 ‘평화 경제’의 관점에서 볼 것이다.

- 현재로서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도가 상당히 높은데.

이 사회에서 60년 보수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국민이 서민 경제 노선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을 ‘신자유주의 정권, 재벌연합 정권’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저 ‘경제에 무능하다’는 정도로 인식하고, ‘이명박 후보는 청계천 효과도 보았고, 성장주의 관점에서 경제를 키우면 서민들도 경제적 효과를 보겠지’ 하고 기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명박 경제’는 부자들을 위한 경제이고, 서민 경제를 더 궁지에 몰아넣는 경제이다. 이를 제대로 밝힌다면 ‘이명박 환상’을 벗길 수 있다고 본다.

- 민노당은 지난 대선에서 95만표, 2004년 총선 정당투표에서는 277만표를 얻었다. 대선에서 민노당은 이른바 ‘사표(死票) 심리’를 넘지 못해 고전했다. ‘비판적 지지론’도 있었다. 사표 심리라는 것은 대체물이 있을 때 생긴다. 여권에서는 2002년 노무현 후보를 보고서 다시 ‘2002년 드림’을 꿈꾸고 있는데, 이는 노무현 정권의 실패로 역사적 시효가 끝났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한나라당과 1대 1 구도를 형성할 수 있었다. 노무현 후보가 말했던 개혁과 민생은 사실 당시 시대적 과제였다. 또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국감 스타부터 시작해 기득권에 도전했던 인물상으로 부상되었다. 그게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DJ의 호남’이라는 정치 기반이 뒷받침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이명박 후보에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범여권 주자가 나올 것인지 회의적이다. 범여권은 이미 시대정신과 거리가 멀다. 인물들도 전직 총리, 장관 출신이다. 지금 정부의 책임자였고, 당사자였기 때문에 2002년의 붐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그러다보니 문국현 후보에게 관심이 모이는 것 같다.

- 문국현 후보를 어떻게 보고 있나. 문국현 후보가 ‘이명박 경제’에 대한 대립각을 분명히 하고 있어 일정 정도 시선을 끌 수 있다. 하지만 대안이 될 수 없다. 문국현 후보가 주장하는 것은 ‘선한 CEO’의 경영론이지 한 국가의 비전은 아니다. 대단히 미시적이다. 후보 개인도 시민활동가형 인물이라 기득권 세력과 맞서 싸울 힘이 떨어진다. 가장 중요하게는, 사회정치적 기반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시절같이 강력한 호남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민노당처럼 잠재적인 서민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문국현 후보가 지금 만들려는 당은 문국현 개인의 진퇴에 좌우되는 당이다. 이런 이유로 문국현 후보는 비판적 지지를 받을 태풍의 눈이 되기 어렵다. 비판적 지지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 민노당이 선전 하리라는 얘긴가. 비판적 지지가 사라지면, 이번 대선은 결국 될 사람을 찍어주거나, 키울 정당을 찍는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노당이 제2당으로 부상할 수 있는 선거다. 능동적으로 ‘경제 대선’에 부응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민노당이 서민 경제의 확고한 비전과 프로그램을 제시하면서 이명박 후보와 대립각을 세우고 갈 때만 선전할 수 있다. 그래서 경선에서 ‘세 박자 경제’(국내 서민 경제, 한반도 평화 경제, 동아시아 호혜 경제)라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예전에는 ‘살림살이 나아지졌습니까?’ ‘불판을 갈자’는 슬로건만으로도 보수정치에 식상한 서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서민의 삶을 책임질 비전과 프로그램을 국민이 요구하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 제기된 공약을 모아 당에서 공약 틀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 1997년 대선에서는 40만 표 차, 2002년 대선에서는 60만 표 차로 당선자가 결정되었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박빙 승부’는 없다고 보는 건가. 경우에 따라서 큰 표 차가 날 수도 있다. 민노당이 그 공간을 밀고 나가겠다. 2002년 ‘노풍’이나 ‘비판적 지지’는 형성되기 어렵다. 민노당이 변화와 혁신으로 진보 진영을 광범위하게 결집시켜 한나라당 대 범민노당 구도로 만들어갈 수 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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