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에 동참할 것을 시사한 10월22일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0월22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한국 정부가 미국 MD 체제 가입에 공식적으로 동의했는지 여부를 질의했다. 이에 김 장관은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이 MD 프로그램에 점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실패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대표 예이다. 제주 기지에는 탄도탄 요격미사일 발사 기능과 레이더·통신 네트워크를 갖춘 구축함대가 배치될 예정인데, 한국 정부당국은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기를 꺼린다.

한·미 양국이 ‘MD 문제에 공조하고 있다’는 김태영 국방장관의 발언은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국제사회에서 스스로의 위상을 어떻게 설정해 나갈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세계 각국에 대한민국이 군비 확충을 하는 나라로 알려지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외교와 무역을 통해 자리매김하기를 원하는지 깊이 생각해볼 때이다.

미국 하와이 연안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의 이지스 구축함이 MD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해상 배치형 요격 미사일 실험을 하고 있다.
미국, 서태평양 군사훈련 할지 말지 고민 중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진척된 한·미 양국의 MD 공조 계획만으로도 한국 정부가 견지해온 ‘균형 외교 정책’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그간 한국 정부는 미국·중국 중 어느 한쪽도 적으로 돌리지 않는 외교를 지향하면서, 20세기 후반 급속한 경제성장 기간에 국제사회에서 무역 대국으로서 입지를 굳혀왔다. 실제 한국은 미·중 사이의 중재자 구실을 통해 세계 외교 무대에서 명성을 쌓아왔다. 의식 있는 한국인들은 베이징과 워싱턴의 적대감이 높아가는 상황에서 자국이 미국의 MD에 동참할 경우,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구실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미국 정부는 무역 파트너인 중국의 요구에 따라 중국이 서태평양의 패권을 잡고 인근 국가 영해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이 지역에서의 군사작전을 중지해야 할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적대감을 표출해야 할지를 놓고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G20 서울 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미국에 무역수지 흑자 폭을 줄여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이 이 요구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군사 및 경제적으로 쇠퇴하는 미국과 떠오르는 중국 사이의 헤게모니 다툼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어쨌든 군사적 측면에서 양보를 해야 하는 쪽은 미국일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중국 어선이 일본 센카쿠 열도 지역에서 나포되었을 때, 미국은 일본의 요청에 따라 서해 공해상에 조지워싱턴 항공모함을 보내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중국의 반발 때문이었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미·일 안전보장조약에 따라 일본이 자국 영토인 센카쿠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센카쿠 일대는 세계에서 참치 어획량이 가장 많은 지역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 지역 해저 유전에 대한 시추를 강행해 미국의 최우방 일본에 대한 압박을 계속했다. G20 서울 정상회담에 맞춰 조지워싱턴 항공모함을 서해에 배치하겠다고 여러 번 밝혔던 미군 합동참모부와 국방부는 실제 G20 직전에 언제 그랬냐는 듯 계획을 철회했다. 연평도 사태로 인해 미국은 조지워싱턴호를 서해에 배치하는 구실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미국이 태평양 지역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해서 적극 행동할 여지는 별로 없다.

MD, 방어적 프로그램 아니다

미국이 서태평양 지역을 중국에 양보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놀라지만, 이러한 현실은 미·중 간 갈등 국면에서 한국이 미국 편에 선 것이 과연 얼마나 현명한 결정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대형 MD 체제를 갖추고도 중국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일본이 좋은 예다.

ⓒ뉴시스김태영 전 국방장관은 지난 10월22일 국정감사에서 한국이 MD에 동참할 것임을 시사했다.
MD의 등장 배경을 되짚어보자. MD에 대해 제조업체와 로비스트들은 ‘방어용’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MD는 방어적 기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약 반세기 동안 미국 행정부는 미국 내 주요 도시를 겨냥하고 있는 핵미사일의 확산 방지와 폐기를 위한 기술 개발에 예산 수천억 달러를 투입했다. 그 결과물인 지대공 미사일이 한국과 일본에 배치되었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가 핵무기를 폐기했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MD 체제 효과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살 목적이 아니라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할 국가가 없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2010년에 MD에 참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모든 핵 미사일은 반송 주소를 갖고 있다. 미국 주요 도시나 우방 국가를 대상으로 한 핵 미사일 공격이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핵 보복을 불러올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만약 핵 공격을 한다면 이렇게 신분이 바로 노출되는 미사일을 발사할 게 아니라, 알카에다 또는 스파이 조직을 이용해 다른 형태로도 충분히 감행할 수 있다.

MD 체제는 적국의 핵무기를 파괴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따라서 핵 보복에 대한 우려를 없애기 위해서는 선제공격을 해야만 한다. 최신 핵무기가 어뢰 형태로 전 세계 각국의 핵잠수함에 탑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교육과 경제개발 같은 전략적 투자에 사용해야 할 국가의 부를 제한적이고 값비싼 미사일 방어 체제에 사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뿐 아니라 미사일 방어 계획이 사실은 안보용이 아니라, 하이테크 업계를 위한 경제적 인센티브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미국·한국·일본의 납세자들이 이 수익성 높은 무기 산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은 이로 인해 점점 중국과의 관계 악화라는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반면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MD 구축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행보는 제1차 냉전 당시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던 미국의 정치 지형과 닮은 점이 많다. 옛 소련과의 군비 확장 경쟁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인은 자신들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렇게 빚어진 제1차 냉전은 미국과 전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끼쳤다. 물론 한국인이 처한 상황은 그때와는 다르다. 한국에서는 ‘제2차 냉전’을 막기 위한 열린 토론이 가능하다.

비교적 열린 정치토론 문화를 가진 미국에서조차 핵무기 기술 개발과 예산 배정, 핵무기 운반체 전략 등에 관련된 사안은 민주적인 논쟁과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은 채 소수 기업가와 정치인에 의해 다루어지고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0년대 후반 국민 토론 없이 20억 달러(당시 미국 자동차 업계의 자본 총액보다 큰 액수)를 핵무기 개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7년 CIA와 국가안전보장회의 설립의 근거가 된 국가안보법에 서명해 미국이 평화 시에도 모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때 조직된 CIA는 이후 불법적으로 민간인과 사회단체에 대한 사찰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미국의 핵 항공모함 조지워싱턴 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0년 퇴임 연설을 통해 군대와 기업이 미국에서 가장 힘 있는 집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경제적 의사결정 과정의 집권화를 통해 소수의 군인과 기업 엘리트들이 관련 절차를 장악하도록 한 결과, 20세기 후반 미국 경제는 무기 연구 및 생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많은 국회의원은 지역구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군수업체를 유치했고, 선거자금 또한 군수업체와 연결된 로비스트의 후원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미국 국가안보법은 CIA가 언론기관을 감시하고 조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언론을 군수산업 홍보 수단으로 활용할 길을 열어주었다(실제 많은 미국 텔레비전 네트워크는 핵무기 제조와 관련된 회사에 소유당한 경험을 한 번 이상 갖고 있다).

미국이 일본 편을 들지 않는 까닭

이에 비해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아시아에서 한국이 호전적으로 비춰지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비록 이명박 정부 들어 자유로운 언론 보도가 위축되고 있다지만, 한국 언론은 아직 방산업계와 정치인 사이의 커넥션을 추적하는 기사를 쓸 정도의 독립성은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G20 서울 정상회담에 임하는 동안 중국과 미국 정부가 보여준 경제 및 군사 분야에 대한 입장은 한국이 앞으로 국제 외교 무대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충분한 근거 자료를 제시했다고 본다. ‘태평양 세기(Pacific Century)’가 시작되면서 아시아 이웃 국가와의 무역 및 협력 관계 증진이 한국의 안보와 번영을 결정짓는 시대가 되었다. 방위산업 기반 경제를 선호하는 현 정권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같은 길을 앞서가고 있는 일본이 현재 겪는 문제를 살피는 것으로 알 수 있다.

9월 중국과 일본 사이의 센카쿠 열도 분쟁을 다시 생각해보자.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미·일 안전보장 조약’에 의거해 센카쿠 열도에서 일본의 주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신의 있는 친구 일본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중국이 해당 지역에서 석유와 가스 시추를 시작했을 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1월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동맹이 지금보다 더 굳건했던 적은 없다. 미국은 한국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힌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오바마는 북한을 향해서도 “북한이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한국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을 향해서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G2 회담을 제안한 것이 전부였다.

 

ⓒAP Photo10월18일 중국 허베이 성 우한에서 중국인들이 반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결국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우월적 지위에 대해 간섭하지 않겠다던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대중 정책이 지켜지고 있다는 증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클린턴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스타인버그(현 국무부 부장관)가 제안한 미·중 간 ‘상호 보증(mutual reassurance)’ 개념은 오바마 행정부 들어 ‘전략적 보증(strategic reassurance)’ 개념으로 격상됐다. 지난해 9월24일 신미국안보센터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이 개념을 처음 사용한 스타인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도·브라질 같은 신흥 강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부상에 적응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을 지키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핵심 전략 과제이며, 전략적 보증을 이룰 핵심이다.”

번역·이의헌

기자명 매슈 라이스(언론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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