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친서민’ 가면 벗어던지다
  • 이종태 기자
  • 호수 171
  • 승인 2010.12.2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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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는 실수로 빚어진 패착이 아니다. 복지비 같은 재정지출을 줄이겠다는 예산 철학과, 2012년 대선까지 염두에 두고 벌인 일이다. 그 후폭풍이 거세자 정부·여당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12월8일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정부·여당의 의도대로라면 ‘한심한 폭력 국회’ 정도의 비난이 잠시 쏟아지다 이내 멈췄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날치기 사태는 ‘서민 예산 대 형님·마누라 예산’의 구도를 부각시키며 ‘예산 민주주의’라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이 드디어 ‘우리의 돈(예산)이 소수 권력자 및 세력의 사적 이익에 유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2011년 예산안이 반(反)서민적 성격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영유아 예방접종’ 지원 예산은 2010년 203억원에서 2011년 144억원으로 59억원 깎였다. 방학 중 밥을 먹지 못하는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책정되었던 급식 지원비는 283억원 전액이 증발되었다. 또한 당초 한나라당은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하위 소득 가구 아동들을 대상으로 양육 지원금 2743억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또한 빠졌다. 저출산 문제와 관련된 정부·여당의 약속들이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꼴이 되었다.

서민 복지는 물론 미래 성장동력에도 냉정

청년·대학생에 대한 다채로운 약속들도 공(空)문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적용받는 대학생들의 이자를 대납해주는 3015억원 중 1900억원이 삭감되었고, 저소득층 성적 우수 장학금 1000억원도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심지어 정부·여당이 지지 계층으로 간주하는 노인복지 예산도 120억원이나 깎였다. 2009년 추경 당시 5400억원을 편성하기로 약속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예산’은 이번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시사IN 윤무영
12월8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장석을 점거한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하며 의장석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이 ‘희극’ 뒤 한나라 당은 2011년 예산안을 강행 처리했다.
정부·여당은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은 물론 ‘미래 성장동력’이라던 지식산업 부문의 신생 기업에도 냉담했다. 중소기업의 자금 운용에 지원되던 긴급 경영 안정자금이 2010년 2500억원에서 2200억원으로, 300억원 삭감되었다. 지식서비스업, 녹색 기술 등 지식산업 부문의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신성장기반 지원금 역시 2010년 1조1600억원에서 3780억원 감액되었다. 우수한 특허기술의 사업화를 돕는 모태조합 출자 지원금도 1000억원에서 320억원으로 깎였다. 민주당에 따르면 농어민에 대한 지원금도 모두 8580억원이 삭감되었다.

어떻게 보면 저소득층, 중소(신생)기업, 청년 등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계층의 복지예산이 대폭 줄어든 셈이다. 거센 반발은 당연했고, 정부·여당은 그제야 당황하며 ‘책임 떠넘기기’에 나섰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 22명은 12월16일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물리력을 동원한 직권 상정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이 약속을 어기는 경우 다음 총선 불출마까지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나라당 중진인 홍준표 최고위원은 ‘보이지 않는 손’을 들먹였다. 안상수 대표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당사로 호출해서 “우리(당)가 무슨 바보인가. 너희들(정부)만 똑똑하고 너희들만 (나라 살림을) 걱정한다는 것이냐”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청와대와 행정부로 책임 떠넘기기’를 한 셈이지만, ‘블랙 코미디’라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이는 무엇보다 2011년 예산안이 정부나 한나라당의 단순한 실수로 빚어진 패착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여당 특유의 철학을 기반으로 뚜렷한 목표를 정해 정책을 추진해왔으나 그 정치적 결과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나타나자 자중지란에 빠진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왜 그런가.

정부·여당, 말로만 ‘따뜻한 서민 경제’

2011년 예산을 만든 양대 축은, 기획재정부로 대표되는 정부와 한나라당이다. 먼저, 기획재정부 측의 ‘예산 철학’은 윤증현 장관의 뜻하지 않은 발언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12월15일 트위터 이용자와의 간담회에서 “이런 데(4대강 예산 등)에 투자하지 않고 복지에 돈을 다 써버리면 결국 남는 게 별로 없게 된다. …사람들이 복지를 누리며 기대치가 커졌지만 나라의 형편이 되는 한도 내에서 즐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돈은 4대강처럼 화끈한 결과가 나오는 데 사용해야 하며, 복지는 가급적 예산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낭비’라는 주장이다.

   
ⓒ뉴시스
전주시청 노송광장에서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등이 ‘4대강 예산·날치기 법안’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윤 장관의 이 같은 시각은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내놓은 ‘2011년 경제정책 방향과 과제’에서도 확인된다. 이 문건은 주요 정책 과제의 하나로 ‘따뜻한 서민 경제’를 들고 있는데 그 내용은 따뜻한 것과 거리가 멀다. 핵심이 노동시장 유연화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른바 ‘노사 관계 선진화’로 노동조합 세력을 축소시키고 이와 함께 ‘정규직 근로’ 이외의 다양한 부분노동 형태(유연근무제)를 확산시키는 것이 ‘따뜻한 서민 경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민간 고용서비스 기관의 대형화’도 주요 목표다. 노동자 파견, 직업 소개 등이 주 업무인 고용서비스 기관을 대형화·전문화해서 더욱 효율적으로 비정규 노동을 공급하겠다는 얘기다. 이런 경제 운용 기조를 갖고 있는 정부이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따위에 돈을 쓰려고 할 리 만무하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이미 복지 등 재정 지출을 줄인다는 확고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2011년 경제정책 방향과 과제’에 따르면, ‘재정 총량 관리 강화’ 등을 통해 2013~2014년에 ‘균형 재정’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재정지출 증가율을 재정수입 증가율보다 2~3% 낮게 한다고 되어 있다. 지난 9월 기획재정부가 낸 ‘2010~2014년 국가재정 운용계획 요약’은 구체적으로 ‘균형 재정 목표 달성을 위해 재정지출 증가율은 재정수입 증가율(7.7%)보다 2.9% 포인트 낮은 연평균 4.8% 수준으로 관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이토록 균형 재정에 집착하는 이유를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2013~2014년 재정 균형이 절대적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2013년 예산안이 나오는 2012년 가을이 대통령 선거 시기 아닌가. 그렇다면 재정 균형은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더욱이 그때까지 재정 균형이 가능하지 않을 경우, 2008년 부자 감세가 다시금 거론되면서 정치적 암초로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 처지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재정 건전성 문제를 초래한 정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재정 건전성을 해결한 정권이 될 것인가?”

복지 예산, 사실상 대폭 삭감

그렇다면 재정 균형을 달성하기 위한 옵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재정 수입을 늘리는 것인데, 가장 간단한 방안으로는 ‘부자 감세 철회’가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2008년의 부자 감세로 2010년 23조2000억원, 2011년 24조6000억원, 2012년 24조4000억원의 세수 감소(2008년 대비)가 발생한다. 이후 예상되는 재정 적자 부분을 메우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여러 정치적 이유로 이를 감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경제성장률을 높여 세수를 늘리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2011년 경제성장률 예측치로 삼성경제연구소(3.8%), LG경제연구원(4% 내외) 등 민간 기관은 물론이고 한국개발연구원(4.2%), 한국은행(4.5%)보다 훨씬 높은 5%를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는 지금처럼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날로 가중되는 상황에서 매우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재정지출 중 4대강을 포함한 거대 토건 사업을 줄이거나 폐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4대강 등 토건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가장 근본적인 정체성이다. 역시 힘들다. 그래서 남은 마지막 대안이 바로 재정지출 중 복지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고, 이것이 이번 예산 국회에서 그대로 ‘실천’된 것이다. 12월8일의 예산 날치기는 결코 돌발 사태가 아니라 정부·여당의 철학과 노선이 ‘솔직하게’ 실현된 것에 불과하다.

   
ⓒ청와대 제공
지난해 12월4일 새벽, 이명박 대통령이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서민’을 위로하고 있다.
그런데도 2011년 복지 예산의 규모는 외형상 2010년의 81조2000억원보다 6.2%(5조2000억원) 많은 86조4000억원으로 결정되었다. 한나라당이 사상 최대 규모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건호 실장은 이에 대해 “앞으로 어떤 정부가 집권하든 어떤 해나 복지 예산은 사상 최대 규모일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복지 급여인 국민연금 수급자나 노인(기초노령연금)이 한동안 계속 늘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연 증가분이다. 그렇다면 2011년 늘어난 복지 예산 5조2000억원 중 자연 증가분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무려 69%인 3조6000억원이다. 이에 더해 해외에서는 복지 예산으로 간주하지 않는 주택 융자금(강남이나 신도시에 조성하는 보금자리주택 예산 등)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그 증가분 역시 1조3000억원에 달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늘어난 복지 예산은 3000억원(예산 증가분 5조2000억원-자연 증가분 3조6000억원-주택 융자금 증가분 1조3000억원)에 불과하다고 사회공공연구소는 계산한다. 내년에 예상되는 물가인상률 3%를 감안하면 복지 예산은 오히려 대폭 삭감된 셈이다.

결국 이번 ‘예산안 날치기’는 정부·여당의 예산 철학과 정치적 의도(균형 재정)가 화학적으로 결합되며 발생한 사태라고 할 수 있다. 몸에 잘 맞지 않았던 ‘친서민’ 분장을 떼내 쓰레기통에 던진 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맨얼굴을 확인하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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