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그를 박원순 ‘변호사’라고 부른다. 2006년부터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일해왔고, 대리인으로 법정에 선 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도 무심코 그가 갖고 있는 자격증 직함을 부른다. 하지만 그의 강연을 듣고 보니 이제는 달리 불러야 할 듯하다. 박원순 ‘소셜 디자이너’라고. 12월2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강의실에 선 박원순 ‘소셜 디자이너’는 자기의 직업 변천사와 더불어 희망제작소가 발표한 ‘세상을 바꾸는 1000개의 직업’을 소개했다. 다른 사람과 협동하고 상생할 수 있는 수많은 창의적 직업 아이디어는 청중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요약하자면, 전문화·융합·열정 등은 그 1000개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 이날 펼쳐진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나는 한때 검사였다. 모든 사람이 선망했던. 그런데 내가 계속 검사로 남았다면 지금 어땠을까? 아마 ‘스폰서 검사’가 됐을 거다(청중 웃음). 사람의 길이라는 게 자기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사법연수원에서 학자 스타일로 보이던 이도 검사가 되어 10년 후에 만나면 완전히 검사처럼 변한다(웃음). 직업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직업을 잘 선택해야 한다.

대학을 얼마 다니지 못하고 감옥에 갔다. 간신히 검사가 되었는데, 채 1년도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리고 변호사를 했다. 30대 초반 젊은 변호사로 돈도 많이 벌었다.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아마 강남에 빌딩도 가졌을 것 같다. 그러면 행복했을까? 변호사가 좋은 직업인가? 그렇지 않았다. 변호사는 고민 대행업이다. 억울한 사람을 만나니 그 억울함이 전염된다. 기록하고 분석하고 진술을 비교하고 너무 몰두하게 되니까. 내 머리가 안 벗겨지게 생겼나(웃음).

박원순 ‘소셜 디자이너’는 “어떤 주제를 깊이 파고 들어가면 모두 그 영역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변호사 생활 8년을 끝내고 참여연대를 만들었다. 그때 직업 전환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일찍 죽었을 것 같다. 변론을 맡은 사건이 끝나고 나면 진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건 내 사건이 아니다’는 자기 암시라도 주어야 살 것 같았다. 이런 게 무슨 좋은 직업인가?

39세에 시작해 40대 인생의 황금기를 참여연대에 바쳤다. 밤낮없이 일했다. 여러분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참여연대의 손을 거쳐 나온 것이다. 또 재벌을 상대로 소액주주 운동을 했다.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벌여 낙선 대상자 가운데 70% 넘게 떨어트렸다. 일에 몰두해 살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같이 일하던 간사들의 머리가 어느새 희끗해져 있더라. 사임하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만둔다고 하니 간사들이 집으로 쳐들어왔다(웃음).

NPO(비영리조직)는 서로가 행복한 곳이다. ‘아름다운 재단’에서 1% 나눔 운동을 했다. 그동안 4만4000명이 참가해 330억원을 모금했다. 작년에 100억원을 모금했다.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과 다른 것 같다. 돈과 권력을 쥐고 다른 사람 위에서 군림하면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 따지고 보면 나는 영구 집권이 보장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떠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붙잡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저 사람은 이제 나갔으면 좋겠다’ 하는 직장이 얼마나 많은가.

참여연대를 그만둔 뒤 ‘아름다운 가게’를 만들었다. 헌 물건을 제대로 거래하는 장소를 만드는 일에는 매출이 중요한 게 아니다. 헌 물건을 쓴다는 것은 늘 비싸고 새것을 찾던 성장과 개발의 시대에서 내면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로 변화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철학적 운동이다. ‘아름다운 커피’ 회사도 마찬가지다. 커피를 어떻게 하면 싸게 사서 이익을 남길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제3세계 농부에게 어떻게 하면 커피 값을 제대로 지불해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까 고민한다. 세 배가량 비싸게 사오지만 앞으로 10년 안에 전체 시장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윤리가 돈이 되는 시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있을 때 새로운 직업 세계가 열린다. 기존 일자리를 두고 모두가 올인해 핏빛 경쟁을 한다. 그 구멍을 통과하고 나면 또 다른 경쟁을 벌인다. 그게 행복할까?

내 직업은 소셜 디자이너이다. 내가 만든 세계 최초의 직업이다. 새로운 길을 가게 되면 금만 그으면 자기 땅이 되는 것이다. 재활용 회사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버리는 옷으로 핸드백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리사이클은 세계적인 트렌드이다. 어떤 회사는 버려진 플래카드로 쇼핑백을 만든다. 이런 제품은 세상에 딱 하나뿐인 상품이다. 대량 생산품과는 비교가 안 된다. 



지금은 전문화 시대, 세밀화 시대이다. 일본에 갔더니 평생 한 가지 주제를 연구하고 강의하고 조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1년만 하면 전문가가 된다. 하나만 깊이 파면 누구나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소셜 디자이너라는 표현을 썼다. 어떤 주제를 깊이 파고 들어가면 모두 그 영역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외형을 만드는 직업만이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지 말자.

독일은 동네마다 놀이터가 다르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창의적으로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한다. 놀이터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독일에는 서재만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도 있다.

전문화는 트렌드이다. 요즘 대형 마트가 문제가 되고 있다. 골목 상권을 살리려면 상가를 전문화해야 한다. 선진국을 가면 세분화한 ‘핸드 메이드’ 제품을 파는 가게들로 골목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소믈리에라는 직업은 어떤가? 일본에는 전통주 소믈리에가 있다. 한국에는 막걸리 소믈리에가 있는가? 일본에는 채소 소믈리에가 3만명이나 있다. 채소와 과일을 선별하고 요리법을 가르치고 컨설팅하는 전문가이다. 한국에는? 없다. 된장과 간장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장 소믈리에도 직업으로 가능하다.

“부모의 가치,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말자”

미래는 융합 시대이다. 한 일본 잡지에 이렇게 났다. 농업이 일본을 구한다고. 기존 농업에 관광이나 가공산업이나 유통이 결합해 새로운 산업이 탄생한다. 담양에 있는 ‘명가에’라는 민박집이 있다. 방 하나에 8만원씩 하는데, 주인이 판소리를 한다. 다녀간 사람의 방명록을 보았더니 ‘아름답고 행복한 여행길’이라고 적혀 있다. ‘아침 창문으로 겨울 들판이 보이는 민박’은 농촌에만 있는 것이다. 일류 호텔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일본에서 그린 투어리즘이 뜨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체험 민박이 가능하다.

서로 다른 것이 연결되면 새로운 직업이 된다. 예를 들어 ‘산촌 유학’ 운영자는 어떨까. 실제로 산촌 유학이 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죽음의 환경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없다. 그렇게 애들을 들볶는데 애들이 정상일 수 있을까. 외국에 가면 아이들이 절대로 한국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한 기러기 엄마가 말하더라. 학교에 선생님이 불러서 갔더니, 그 자녀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아이라고 계속 칭찬을 하더란다. 한국에서였다면 그 아이가 왕따당하지 않겠나. 자연의 힘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해준다. 시골의 삶이 생태적 감수성을 준다. 산촌 유학 운영자가 뜰 수밖에 없다.

내가 백수라면, 농촌 일손 뱅크를 만들 것이다. 농촌의 일손을 일시적으로 지원하는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돕는 전문적 중개 기관이 필요하다. 일손 수요 농가와 공급 가능자를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1박2일 동안 10시간 정도 일하면 감 두 상자를 가져갈 수 있고, 다음 날 동네 온천에 갈 수 있다. 아침에는 우리 동네의 아침 안개를 보여주겠다.’ 이렇게 일손이 필요한 사람이 글을 올리고, 가족 단위 신청을 받게 하는 것이다. 가능하다고 본다.

독일에 3개월 동안 머물면서 여러 사람과 인터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화 통화하기가 어려웠다. 인생을 즐기는 게 첫 번째 목표이고, 딱 그만큼만 일하니까. 우리도 악다구니를 치며 일하는 인생에서 즐기고 가치 있게 사는 인생으로 바뀔 것이다. 부모들이 살았던 시대의 직업과 아이들 세대의 직업은 상당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부모 세대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말자. 내가 변호사를 그만두는 것을 당시에는 미친 짓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에는 다른 길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미치면 밥을 먹는 것도 잊는다. 잠도 안 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집중한다. 핀란드 같은 곳은 초등학교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집중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집중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하고 싶은 것을 시켜라. 그게 새로운 직업이 되고, 그게 새로운 성취가 된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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