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 소장파’라는 모순 형용이 가능한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45·4선). 한나라당은 정권을 탈환했지만 남 의원은 ‘완전 비주류’가 되었다. 서른세 살에 국회에 입문한 이래 처음으로 당직을 맡지 못한, 심지어 사찰까지 받은 2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공부에 빠졌다.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대학 선생들을 찾아다니며 일대일 토론 수업을 받았다. 야권의 담론인 ‘복지’도 섭렵했다. 그러다 ‘소장파지기’ 원희룡 의원의 바통을 이어 외교통상통일위원장 자리를 맡았다.

그는 일찍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쓴소리를 던졌지만 메아리가 없었다. 전략을 바꿨다. ‘외침’보다 국회의 권한, 상임위원장의 힘으로 여야 합의안을 정부에 건의할 생각이다.12월9일, 인터뷰에 앞서 그는 한나라당의 새해 예산안 날치기 통과와 관련해 “청와대의 효율성 중심의 국정 운영 드라이브에 여당이 역할을 못했고, 민심의 역풍에 대해 고민이 부족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안희태남경필 위원장은 “정의로운 전쟁도 추악한 평화보다 못하다”라고 말했다.

한반도에 전운이 드리워졌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것인가.
크게 보면 지금 상황은 남북관계이면서 동시에 중·미 관계 문제다. 두 가지가 연동되어 있다. 중·미 ‘파워 시프트’ 단계인데 권력이동 과정에서는 항상 사단이 나게 되어 있다. 미국의 힘은 하향세이고 중국의 힘은 상승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 방향과 거꾸로이다. 거기에서 괴리가 생기고 구조적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걸 근본적으로 바꿔줄 필요가 있다. 경제에서 우리의 중국 의존도는 미국을 제쳤다. 그런데 안보 의존도는 반대로 가면서 엇박자가 나오는 것이다. 이걸 바로잡아주는 게 급선무다.

앞으로 위기가 관리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더 불안한 것 같다.
제일 큰 문제다. (분단 리스크를) 관리하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햇볕정책의 한계를 인식한 대응 전략은 있는데, 한발 나아가 남북관계가 어떤 역사적 흐름으로 가야 하는지 긴 안목과 철학이 부재하다보니, 그때그때 대응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상황이 더 꼬이게 되는 것이다.

‘고립을 통한 붕괴’가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전제인 것으로 보인다.
쉽게 비유하면 이렇다. 학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삥 뜯는’ 불량배가 있다고 치자. 부모나 선생 입장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몽둥이로 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못된 놈이니 더 이상 돈도 줄 수 없고 맞서서 붙자는 식이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것 같다.

‘비핵·개방 3000’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한계를 뚜렷이 드러냈다고 본다. 근본적으로 분단 리스크를 관리하기에는 부족한 정책이다.

왜 안 바뀌나. 대통령이 문제인가. 주변 참모가 문제인가.
둘 다 아닐까.

대북 외교 라인의 교체도 필요한가.
그동안 많이 촉구하기는 했다.

왜 안 받아들여졌나.
내 생각이 잘못됐다고 보든가, 주장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든가. 둘 중 하나 아니겠나(웃음). 외통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 3분의 1 정도가 비핵·개방 3000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 상태까지 온 거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더 건의하겠지만 바뀔지 미지수다.

포기했나.
기다리기보다 국회에서라도 합의를 끌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산하에 남북 관계 발전과 통일 비용을 다루는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소위원장은 내가 맡고 한나라당에서는 유기준·홍정욱·김효재 의원, 민주당에서는 김동철·정동영·박주선 의원이 참여한다. 햇볕정책에 대한 보수의 반대가 있다. 보수층이 지지하지 않는 대북정책은 효용성 면에서 굉장히 떨어진다. 보수층이 동의하면서 비핵·개방 3000을 뛰어넘는 정책이 무엇일까.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제3의 대북 전략을 만들어 정부에 촉구하는 방식을 고민 중이다.

되겠나?
현재 북한 내부에 큰 변수(김정일 건강 이상설·김정은 권력 세습)가 있다. 그런데 우리 내부에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냉온탕을 오가며 비용만 쓰고 있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진보든 보수든 앞으로 북한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에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하다. 북한 붕괴론에 반대하고 북한의 연착륙 방식에 대한 합의만 되어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당내 ‘전(前) 정권 책임론’에 대해 비판했다.
햇볕정책의 평화 공존이라는 방향성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북한의 핵 개발을 막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다. 햇볕정책 플러스 알파,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남북 관계가 급진전할 기회는 있었다. 이른바 지난해 10월 ‘임태희-김양건 싱가포르 합의’가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여권 내 강경파의 무리한 요구로 틀어졌다는 게 사실인가.
상당 부분 맞는 것 같다.

이후 어떻게 되었나.
(남북 정상회담 추진은) 통일부가 알아서 하기로 정리된 것 아닌가.

실현 가능성은 남아 있나.
높다고 보지 않는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핵심 인물인가.
그들 외에는 없지 않나? 대통령이 신임하니 장관도 오래 하는 것이고…. 북한을 어떤 대상으로 보고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점에서 나를 비롯해 그들과 생각이 다른 여당 의원들은 답답해하지만 어떡하겠는가.

현인택 통일부 장관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왜 통일부를 없애야 하는지 증명해주신 분이라는 얘기가 농담처럼 떠돈다.

이명박 대통령은 왜 현 장관을 신임하나.
생각이 맞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나.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북한이 그간 우리가 군사훈련을 끝내거나 끝낼 무렵에 도발을 감행해왔기 때문에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는 시점을 걱정했는데 우리 쪽에서 다시 해상 사격훈련을 재개했다. 12월 안에 긴장 국면이 더 이어질지, 소강상태로 떨어질지 결판이 날 거다. 안정 국면으로 이어진다면 외교안보 라인의 전체적인 인사 개편이 필요하다.

그런 주장이 여당 내 대세인가.
기류는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 긴장 국면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는 거다. 조만간 정리가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터져나올 것이다.

보수 내에서 확전·전면전 불사론이 나온다.
소수다.

‘합리적 보수’라는 박세일 교수가 〈조선일보〉 칼럼에서 연평도 사태를 통일의 기회로 삼아 목숨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대착오적이다. 과연 북한의 붕괴를 우리가 감당할 수 있나. 또 100만, 200만 우리 국민이 죽을 각오를 한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장 정의로운 전쟁도 가장 추악한 평화보다 못하다.

우리 측의 응징 분위기가 자칫 확전으로 이어질 사태를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있나.
우리는 말로 충분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중국의 노력이 있을 거라고 본다.

여론은 어떻다고 보나.
북한의 도발을 완벽하게 막아내면서도 확전으로 가서는 안 되는 정교한 선이 있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을 때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보수층에게 상당한 분노가 일고 국론 분열로 이어지는 일이다. 북한은 그 점을 노릴 것이다.

안보는 보수의 핵심 가치다. 그런데 안보 무능을 보였다.
치명적이다. 지금 정부는 국민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채권 발행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어떤 채권인가.
국내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한·미 FTA도 그렇다. 안보 정국에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는 일을 삼가고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니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국민이 준 큰 수표를 잘못 쓰면 안 된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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