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 인사들이 북한 고농축 우라늄 시설을 ‘햇볕정책 탓’으로 돌리려 하자, 참여정부에서 북핵 협상 실무를 담당했던 박선원 박사가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12월6일 〈시사IN〉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 초기에 북한의 미사용 핵연료봉 제거 기회를 놓친 것과 관련, 당시 협상 과정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과거에 비해 훨씬 어려워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간 단계로 남한이 핵 보유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예고했다.

미사용 핵연료봉 문제가 왜 등장했나. 참여정부 말기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협상이 급진전한 것은 이미 알려진 대로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전인 6월10일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고, 그 결과를 가지고 정동영 특사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 핵 실험도 이전도 않겠다,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면 핵을 하나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직접 밝혔다. 10·4 정상회담 때는 김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6자회담이 잘됐으면 좋겠다며 한국이 많이 도와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래서 미국 측과 함께 북한의 의지를 검증해보자고 했다.  

ⓒ시사IN 백승기

그래서 냉각탑을 파괴하고 원심분리기용 고강도 알루미늄 샘플과 미사용 핵연료봉을 이전하라고 요구한 건가? 그렇다. 우선 냉각탑 파괴는 미국 힐 차관보가 강력히 주장했고 김계관도 힐의 입지를 강화해주는 게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해 수용한 것 같다. 알루미늄 샘플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HEU) 시설 자체를 그동안 부인해왔기 때문에 그때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사용 핵연료봉은 우리에게 조건이 맞으면 팔겠다고 했다.   미사용 핵연료봉 협상이 왜 실패했나? 우리 임기 내에 할 수 있는 일은 영변 핵연료 생산공장과 핵연료 보관소를 방문해 핵연료봉이 몇 개이고 어떤 상태이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정리해 이명박 정부에 넘겨주는 일까지였다. 이 연료봉을 가져오면 원자력발전에 쓸 수 있어 당시 한국수력원자력에서 구매하고 국제 가격과의 차액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방식까지 마련해 넘겨줬는데 이명박 정부가 비싸다고 안 산 것 같다.

북한이 얼마를 요구했나?

국제 시세의 두 배가량을 요구했다. 자기들이 투자한 것도 있고 우리가 가져다 쓸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한 것 같다. 이명박 정부에게 얼마를 요구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연료봉 개수가 4000~6000개로, 이것을 5MW 원자로에 넣고 가동하면 플루토늄 8~12kg, 즉 핵무기 2~3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핵무기의 근원인 미사용 연료를 어떻게든 구매해서 북한 외부로 반출시켰어야 했다. 천억원대를 요구한 것도 아니고 몇 백억원 수준이었을 텐데, 안 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시 협상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진상을 밝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 역사와 안보에 죄를 지은 사람들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시설을 공개한 것을 과거 정부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다. 참여정부에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9·19 공동성명, 2·13, 10·3 합의 그리고 10·4 정상회담까지 숨 가쁘게 해왔던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했고, 여기에 핵연료봉까지 가져왔으면 플루토늄 핵 문제는 완전히 끊어낼 수 있었다. 그 다음 영변에 감시요원을 계속 남겨두면서 HEU 문제로 나갔어야 하는데, 플루토늄도 해결하지 못하고 HEU는 더욱 악화시켜버린 게 이 정부 아닌가. 북한과 협상할 때 북한의 의도나 목적에 매달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도 분석에 매몰될 일이 아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핵을 가지고 싶어하고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쓰러진 후 핵에 대한 집착이 더욱 커졌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 이 집착을 끊어낼 것인가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압박을 가해 붕괴를 유도하는 쪽으로 몰고 가 오히려 북한의 핵 집착을 더욱 강화시켰다. HEU 문제만 하더라도 북한이 지난해 6월 경수로를 자체 건설하기 위해 우라늄 농축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걸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Reuter=Newsis2008년 6월27일, 외신 기자들이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를 취재하고 있다. 북한은 힐 차관보의 입지를 강화해주려고 냉각탑을 폭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가 문제다. 중국이 다이빙궈를 통해 6자회담 개최를 제안한 것을 어떻게 보나. 다이빙궈를 4~5번 봤는데 그가 웃을 때 좋아서 웃는다고 봐서는 안 된다. 원래 인상이 웃는 상 일 뿐이다. 웃음 뒤에 있는 냉소를 봐야 한다. 중국이 지금 이명박 정부에 대해 인내의 한계에 온 것 같다. 뭔가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 6자회담을 제안한 것도 결국 (남한이 중국에) 6자회담 하자고 부탁하러 올 거다, 나는 할 일 다 했다는 뜻 같다.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 미국도 급할 수밖에 없지 않나. 지난 8월 미국의 과거 정부에서 일한 앨런 롬버그 씨와 얘기를 나눴는데 그때 이미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들고 나올 거라며 빨리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걱정했다. 천안함 문제로 대화를 너무 지연시키면 위험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솔직히 우라늄 개발을 이렇게 빨리 공개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의 말이 맞았다. 고농축 우라늄은 플루토늄에 비해 훨씬 위험하다. 어디서든 쉽게 만들 수 있고 숨기기도 쉽고, 핵탄두 소형화도 어렵지 않고, 파키스탄 칸 박사 사례에서 보듯이 핵 확산의 주된 방식이다. 지금 북한이 6개 정도 탄두를 가지고 있다는 게 미국 정보당국 판단인데 지난번 보여준 P2 타입 원심분리기 시설이 두 군데 있다고 가정하고 1년만 가동하면 공격 가능한 수준이 된다.

협상은 가능한가. 이미 늦었다는 생각도 든다. 북한은 이제 협상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6자회담에 그냥 나가서 평화협정을 얘기하려는 것이고 비핵화는 뒷전이다. 그러나 목표를 낮게 잡더라도 대화의 실마리는 잡아야 한다. 원래부터 어려운 협상이었고 이명박 정부 들어 훨씬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협상이 안 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김태영 장관이 미군 전술핵 재배치를 언급했는데…. 전술핵은 들여와봐야 소용없다. 괌에 있는 전략핵과 뭐가 다른가. 우리의 카드가 되지도 못할뿐더러 북한의 핵무기 집착만 키운다. 차라리 우리도 핵 보유하겠다고 주장해야 한다. 영원히 갖자는 게 아니라 북한의 핵 포기를 끌어내기 위해 중간 단계로 핵을 보유하자는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핵물질 확보 등이 불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일본도 핵우산에 대한 접근권 강화뿐 아니라 핵무장의 기초인 핵연료주기를 완성하지 않았는가? 일본 수준으로 갈 수도 있고 독자적으로 할 수도 있다. 미국 측에도 여러 번 물었다. 지금 중국·러시아·북한까지 핵무기를 보유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일본을 위협하는 상황인데 미국의 견해가 뭐냐고.

미국의 답이 있었나? 아직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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