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1. 11월27일. 대학생 김지영씨(23)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순간 울컥했다. 남춘천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며 지켜본 KBS 뉴스에서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북한 도발사가 나왔다. 햇볕정책을 배우고 자란 김씨는 스스로를 평화통일주의자라고 여겼지만 그때만은 달랐다. 김신조 사건에서부터 연평도 포격까지 훑어보고 나니, 이번에는 우리도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주변 사람들과 전쟁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며 확전 반대로 다시 의견이 돌아섰지만, 그는 방송의 힘이 무섭다고 느꼈다.

상황 2.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시작된 11월28일. 각 방송사는 ‘북 도발 정밀 응징하는 첨단무기들’ ‘10분 내 평양 정밀 타격 가능, 떠다니는 군사기지’ 따위 뉴스를 연달아 내보냈다. KBS는 이스라엘의 강경책도 소개했다. “팔레스타인의 산발적 로켓 공격에 이스라엘은 즉각 대대적 공습으로 답했다. …자국민의 생명을 건드리는 건 도발이 아니라 전쟁이다”라는 기자의 설명도 곁들였다. 이 방송을 지켜본 김태훈씨(29·직장인)는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전쟁이 별게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뉴시스연평도 포격이 일어난 11월23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텔레비전 뉴스 속보를 보고 있다.
언론의 연평도 포격 관련 보도가 강경론 위주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 진단보다는 한국군의 전력 분석과 최첨단 무기 소개 등 호전적 내용을 알리는 데 치중했다는 말이다.

11월23일~12월2일 KBS 1TV 〈9시 뉴스〉의 연평도 관련 보도를 살펴보면, 255건 가운데 12건만이 전문가 분석 및 향후 대책을 담았다. 11월24일에는 “북한의 해안포에 대한 즉각적이고 확실한 대응 무기는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밖에 없는데, 확전 우려 때문에 전투기 반격을 망설이다 상황이 끝났다”라며 확전에 무게를 싣는 듯한 보도를 했다. 12월1일에는 “이참에 서해 5도를 보복 응징의 전초기지로 활용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라는 말도 전했다.

속보 경쟁이 붙은 다른 방송사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MBC는 11월29일 ‘북 해안포 잡는다… 방어? 이제는 공격!’이라는 리포트를 전파에 실었다. YTN과 MBN은 연평도 상황과 군사적 긴장감을 24시간 내내 방송했다. 한 케이블 방송사 기자는 “대형 사건이 나면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뉴스를 보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보도 전문 채널은 시청률이 올라가고, 회사 입장에서는 호재라 계속 중계를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닐슨미디어 조사에 따르면, YTN은 연평도 포격이 있던 11월 넷째 주 전체 케이블 채널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전주 6위에서 다섯 계단이나 상승한 것. MBN도 13위에서 5위로 뛰어올랐다.

똑같은 연평도 포격 사진이지만, 신문마다 명암과 채도가 달라 위협을 과장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언론 ‘훅’ 갔다”

반면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내용은 찾기 힘들었다. 11월29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한자리에 모여 “6자회담을 활용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의견을 모았지만, 방송 3사 보도에서는 이 소식을 찾을 수 없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조·중·동)의 보도 태도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각 신문은 연평도 포격 다음 날(11월24일) 1면에 연평도 사진을 실었다. 그런데 같은 앵글의 사진인데 명도와 채도는 저마다 달랐다. 원본 사진과 3사의 1면 사진을 같이 놓고 보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한국사진기자협회 소속의 한 기자는 “경우에 따라 보정 작업을 할 수는 있지만, 이번 건은 보도 윤리에 어긋나는 수준이다. 사진 앞부분은 더 밝게, 뒷부분은 더 어둡게 하면서 연평도의 위험을 과장했다”라고 말했다.

조·중·동은 11월26일자 지면에서 북한이 연평도 포격 당시 열압력탄을 사용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열압력탄은 갱도나 동굴, 건물을 파괴하기 위해 개발된 특수 폭탄으로 매우 큰 인명 피해가 생길 수 있어서 민간인에게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이틀 뒤 오보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북한군이 열압력탄을 사용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오피니언 면은 더 과감하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11월29일자 칼럼에서 확전에 벌벌 떠는 건 패배주의라며 “(정부는) 만의 하나 전면전이 일어나도 국민이 견뎌주면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라고 썼다.

이 같은 언론의 보도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경론 중심의 뉴스가 전쟁 분위기를 확대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연평도 관련 언론 보도를 모니터링해온 유민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활동가는 “조·중·동은 사실상 전쟁 불사를 외치고, 방송사는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응을 무비판적으로 전한다”라고 말했다. 12월3일 오전, 민언련은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연평도 포격을 보도한 언론의 태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봉수 교수(세명대 저널리즘스쿨)는 “한국 언론은 안보 담론에 매몰되어 평화 담론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미디어 평론가 민임동기씨는 방송의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조·중·동의 의제 설정 능력을 견제하던 방송은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몸살을 앓았고, 이번 연평도 포격 보도를 통해 ‘훅’ 갔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조·중·동과 방송이 결합하니 한쪽의 의견만 과대 대표된다”라고 말했다.

언론계 안에서도 자성이 일고 있다. 보수적인 논조를 펴온 한 신문사 기자는 “(자사 지면에) 강경 대응에 반대하는 소리도 나올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KBS의 한 기자는 “연평도 상황을 컴퓨터 게임하듯 보도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기자가 상당수다”라고 말했다. KBS 보도위원회는 12월9일 연평도 포격 보도 전반에 대한 평가를 벌일 예정이다. 보도위원회는 공정성에 문제가 있거나 자율성이 침해되었다고 여겨지는 뉴스에 대해 논의하는 KBS의 공식 기구이다.

정일용 전 한국기자협회장은 언론의 사회적 구실을 강조한다. “언론인들은 1995년 8월15일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한국기자협회·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가 맺은 ‘평화통일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보도·제작 준칙’을 다시 찾아봐야 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남·북 간 무력 사태 발생 시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조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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