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씨가 진단하는 한국 사회의 불안 강도는 임계치를 넘어섰다. 지표가 입증한다. OECD 국가들 중에 나쁜 건 일등, 좋은 건 꼴찌다. 가장 많이 자살하고, 가장 많이 이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생명체로서 본능적인 요구조차 거부하는 지경이다.
심리학에서 불안은 만성화된 공포다.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조스를 만났을 때 느끼는 생명의 위협감이 공포라면, 다시 조스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는 게 불안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불안은 과거의 공포 체험이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위협 신호만으로도 활성화될 수 있다. 한국인의 경우 외환위기 때 체험한 생존 공포가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위협 신호를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이기심, 고독·무력감·의존심·억압·자기혐오·쾌락·도피·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게 김태형씨의 지적이다.
여기에 더해 잠재된 불안이 터졌다. ‘분단 트라우마’다. 연평도 사태는 과거 연평도 교전, 북의 미사일·핵 실험과 같은 ‘북풍’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당시에는 순간 화는 나지만 사태가 악화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핵심은 통제력이다. 상처가 들어와도 통제력이 있으면 외상이 안 된다. 아이가 부모한테 맞아도 자신의 힘이 더 세서 막아낼 수 있다거나, 가출해서 갈 곳이 있다면 상처가 안 된다. 외환위기도 그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라기보다 그런 사태를 정부가, 조직이, 개인이 전혀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무력감이 불안으로 이어졌다. 통제력은 자기 운명을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연평도 사태는 ‘남북 관계가 통제·관리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런 점에서 불안은 장기화될 수 있다.”
햇볕정책이 불안 심리 해소에 기여
여론은 이중적이다. 몇몇 여론조사에서 보면, 모순된 두 갈래가 나타난다. 강경한 군사적 대응을 하지 못한 정부를 질타하면서도 사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제한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동시에 나온다.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은 되지 않도록’이라는 모순 어법이 여론을 관통하는 셈이다.
“당연하다. 일단 화가 나지 않겠나. 민간인까지 사망했다. 특히 한국인은 공동체 의식이 강한데 ‘우리’가 공격당했다는 인식이 있다. 따라서 공격자에 대한 강경론이 힘을 받겠지만 분노는 오래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게 사태를 악화시킬지 알게 된다. 강경 노선의 현 정부가 당장은 지지받을지 몰라도, 국민의 분노 감정에 기대어 정책을 추진하면 분노의 화살은 무섭게 정부로 향할 것이다. 사람들은 통제력이 상실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현 정부가 당장은 욕을 먹더라도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국민은 통제력을 잃어버린 정권을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그는 “국민의 정신건강과 불안심리 해소에는 햇볕정책이 좋았다”라고 말한다. ‘치유의 기회’였단다. “과거 정신과를 찾는 피해망상 환자의 대부분은 레드 콤플렉스와 관련되어 있었다. 간첩이 쫓아온다든가 안기부가 감시한다는 따위의 망상이 많았다. 그런데 지난 10년 햇볕정책, 포용정책을 거치면서 그런 환자들이 거의 사라졌다. 일반인 사이에서는 ‘라면 사재기’가 사라지지 않았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구나, 평화로울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형성된 것이다. 서울공항에 도착한 DJ의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이 사라졌다”라는 일성, 남북 정상이 포옹하고 휴전선을 걸어서 넘어가는 장면은 국민의 오랜 안보 불안을 완화·치유하는 정서적 체험(카타르시스)이었다.”
그가 가장 염려하는 건 미디어의 자극이다. “말로 듣는 것과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미디어가 마치 때를 만난 것처럼 감정을 선동하고 있는데, 설사 시간이 흘러 언론이 제공한 정보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다 해도 적대 감정은 앙금으로 남게 된다. 세뇌 효과가 그래서 무서운 거다.”
외환위기 상흔으로 ‘루저’ 공포에 떨고 있던 한국인, 이래저래 마음이 쑥대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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